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산들산들 May 21. 2020

친구와 직장동료는 다르다.

내 편인 듯 내 편 아닌 내 편 같은 너

[사진출처: tvN 드라마 ‘미생’]


친구, 직장동료라는 두 가지 단어가 있다. 하지만 이 두 가지를 합친 직장 친구라는 단어는 어쩐지 입에 착 달라붙질 않는다. 우린 직장동료와 누구보다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고 친한 사이라면 퇴근 후 함께 술을 마시기도 하는데 왜 직장 친구라는 단어는 잘 사용하지 않는 걸까?

 


'동기사랑 나라사랑'에서 숙명의 라이벌로


처음 입사했을 때는 동기가 너무 소중하고 대학교 친구들보다 더 가깝게 느껴졌다. 철저한 상하관계인 회사에서 동등한 관계인 동기와의 만남은 잠시나마 학생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하고 업무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게 해 주었다.


하지만 차츰 사회생활에 눈을 뜨기 시작하면서 동기들이 친구가 아닌 라이벌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선배들은 사소한 일로도 나와 동기들을 비교 하기 일쑤였다. 한 번은 팀 회식이 끝난 후 오락실을 가게 되었는데 선배들은 나와 동기가 이니셜 D라는 레이싱 게임으로 대결하도록 만들었다.


"야 사회생활은 봐주고 이런 거 없어. 밟을 수 있을 때 확실히 밟아줘야 한다."


고작 한 판에 1,000원짜리 게임이었지만 이상하리만큼 승부욕이 불타올랐다. 결국 나와 동기는 홍대 한복판에서 '포드 VS 페라리' 영화를 찍었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다른 부서 팀장님들은 우리 부서에 와서 팀장님에게 “야 둘 중에 누가 더 일을 잘하냐?"라고 물었다. 마치 황희 정승이 농부에게 물었던 "누렁소와 검은소 중 어떤 소가 일을 더 잘하오?"가 생각나는 순간이었다. 다행히 팀장님은 "에이 뭘 그런 걸 물어. 둘 다 일 잘하지."라며 센스 있게 넘기셨지만 아마 나중에 담배 피우러 가면서 누가 더 일을 잘하는지 말씀해 주셨겠지. 나는 검은소였을까 누렁소였을까?



냉혹한 승부의 세계


철없던 시절이 지나고 나와 동기들은 대부분 대리가 되었다. 승진하는 과정에서 동기들끼리 치열하게 싸우기도 했고 그 과정에서 승진이 밀려 마음의 상처를 받은 사람도 있었다. 이제 우리 모두는 더 이상 동기가 친구가 아닌 경쟁자라는 걸 인식하고 있었다.


하루는 일로 문제가 생겨 팀장님에게 혼나고 자리로 돌아오면서 앞자리에 앉아 있던 직장동료의 표정을 보게 되었다. 나름 친한 동료이고 내 혼나는 모습을 보면서 안타까운 표정을 지을 줄 알았지만 놀랍게도 그는 안도의 표정을 지으며 입가에 살며시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왜 그는 그런 표정을 지었던 걸까? 본인이 나보다 더 우월하다는 생각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이 사건으로 본인이 팀장님에게 더 인정받는다는 생각 때문이었을까? 이 사건 이후로 그 동료와는 마음의 문을 닫아 버렸다.


어느덧 10년 차가 되었고 동기들 간의 격차는 점점 벌어졌다. 워커홀릭으로 소문났던 한 동기는 신입 때부터 능력자로 인정받아 해외 핵심부서에서 경력을 쌓았고 초고속 승진을 하여 경영자가 되어 돌아왔다. 오랜만에 사무실에서 마주친 날 나도 모르게 손을 들어 인사를 했지만 바로 손을 내리고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내 본능은 손을 들었지만 내 이성은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직장동료는 친구가 아니다.


서로 사이가 좋은 두 명의 동기가 있었다. 농구 동아리에 가입해 주말마다 함께 운동을 하기도 하고 여름에는 함께 여행을 가기도 했다. 누가 봐도 격의 없는 친구사이처럼 보였지만 언제부터인가 둘이 함께 있는 모습이 보이지 않아 다른 동기들에게 살짝 물어보니 최근 사이가 틀어졌다는 얘기를 들었다. 함께 일하면서 몇 번 부딪혔었고 마음의 상처가 쌓여 한 번에 폭발한 듯 보였다.


결국 직장동료는 친구가 아니다. 친구처럼 마냥 웃고 떠들 수 있는 관계가 아닌 회사라는 냉혹한 조직 내에서 어느 정도는 서로 필요에 의해 만나는 '전략적 동반자 관계'인셈이다. 직장동료가 필요한 이유는 50%는 감정교류, 50%는 서로 필요에 의해서이고, 상대방에 대한 기대감은 친구의 50% 정도가 딱 적당하다. 지금은 사이가 틀어진 동기들이 만약 적당한 기대감으로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지냈다며 지금도 좋은 관계로 남아 있지 않았을까?


예전에는 동기들과 퇴근 후에 모임을  갖기도 하고 고민이 있을 때면 회사 옥상에서 함께 커피를 마시며 고민을 털어놓기도 했었다. 아쉽게도 그 동기들은 대부분 회사를 떠났고 이제 나 혼자 남았다. 얼마 전 일을 하다 스트레스받는 일이 있어 바람 쐬러 혼자 옥상에 올라갔다. 옛날 생각이 나 이직한 동기에게 카톡으로 옥상 사진을 보냈다.


: 잘 지내지? 혼자 옥상 올라오니까 옛날에 같이 커피 마시던 거 생각나네.

동기 A: 그립네~ 10년 동안 옥상은 변하지 않고 그대로구나. 우리만 변해가는구나.


동기 A는 소중한 직장동료였다. 우린 주말에 연락을 하거나 여행을 같이 가진 않았지만 서로 도움을 주며 의지하고 지냈다. 서로에 대해 안 좋은 소문이 돌 때면 나서서 대변해 주기도 하였고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조언을 해주기도 했다. 상대방이 잘하는 게 있다면 그 능력을 인정해 주고 승진할 때면 진심으로 축하해 주었다. 우린 '너를 밟고 내가 일어서리라'는 경쟁 관계가 아닌 함께 성장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내가 만약 동기 A를 친구와 똑같이 생각하고 조금이라도 섭섭한 일이 있으면 기분 나쁜 티를 내고, 나보다 조금이라도 앞서 갔을 때 질투했었다면 우린 지금도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을까? 결국 친구와 직장동료의 다름을 인정하였던 게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신입 교육을 받을 때 경영자분들이 와서 꼭 했던 얘기가 있다. "저는 여러분들이 너무 부럽습니다. 저도 신입사원으로 돌아가고 싶어요." 그 당시에는 '높으신 분께서 우리 같은 말단 사원이 뭐가 부럽다는 걸까?’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10년이 지난 지금 그분들의 뜻을 이해하게 되었다. 옆 자리에 있는 동기들과 격의 없이 지내는 모습을 보면서 아직 사회의 때가 묻지 않는 순수했던 때로 돌아가고 싶다는 의미가 아니었을까? 직장 내의 경쟁은 점점 치열해지고 회사가 삭막하게 느껴지는 요즘, 그 시절의 나와 동기들이 그립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이에 따라 변하는 친구 관계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