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산들산들 May 03. 2020

만나면 기 빨리는 관계

내 인생의 흡혈귀 퇴치하기

[사진출처: unsplash@alex_andrews]


몇몇 친구를 만나고 나면 이상하게 몹시 피곤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지하철에서도 꾸벅꾸벅 졸고 하루 종일 기력도 없었다. 처음 한 두 번은 ‘오늘 내 컨디션이 안 좋아서 그런 건가?’, ‘아까 주변이 너무 시끄러워서 그런 건가?’라고 생각했지만 만날 때마다 똑같은 증상이 반복되었다. 그리고 어느 날 깨달았다 이게 바로 기 빨리는 관계라는 걸. 내 기를 빨아먹는 흡혈귀 같은 사람들에게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특징 1. 본인 이야기만 한다.


대학교 친구 A는 만나면 늘 본인 이야기만 했다. 얼마나 열심히 얘기하는지 본인의 근황뿐만 아니라 부서 사람들의 차종과 사는 곳까지 내가 줄줄이 꿰고 있을 정도였다. 나는 우리 부서 사람들에게도 별로 관심이 없는데 왜 친구 부서 사람들의 개인사까지 듣고 있어야 하는 걸까?


친구 A가 나를 만나는 건 본인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필요했던 것 같다. 나와 친구의 공통 관심사나 주제가 아닌 그저 본인이 하고 싶은 이야기만 하는 관계 말이다. 만나면 대부분의 시간 동안  친구 A의 이야기를 듣는 나를 발견했다.


내가 항상 굿 리스너가 된 이유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친구 A가 말하는 걸 좋아한다는 것, 두 번째는 내 근황에 별 관심이 없다는 것. 한참을 본인 얘기를 하다 가끔 “넌 별일 없지?”라고 예의상 물어보기는 했지만 내가 얘기를 하려고 하면 금세 지루해하는 표정이었다.


특징 2. 부정적인 이야기만 한다.


친구 B는 늘 부정적인 이야기만 했다. 항상 세상을 삐뚤어진 시선으로 바라봤다. 20대 중반의 꽃다운 나이 일 때도 “옛날이 좋았는데 이제 사는 게 재미가 없네.”, “PC방 가서 시간이나 때우자.”, “세상은 불공평해.” 등등 비관적인 어조로 얘기했다. 그 친구를 만나면 웃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얻어 가기보단 나도 침울해지고 기분이 좋지 않았다. 어느 순간부터 자연스럽게 연락을 피하게 되었다.


오랜만에 연락이 와서 서로의 근황에 대해 얘기를 했고 나는 대학원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내가 예전부터 가고 싶어 했던 대학원이었고 공부에 대한 욕심도 많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당연히 축하를 해줄 거라 믿었지만 그 친구의 반응은 뜻밖이었다. “돈 많이 들겠네. 학비 감당할 방법은 있고?”


내 인생에 가장 큰 성취감을 맛 본 순간에 그 친구는 찬물을 확 끼얹었다.



기 빨리는 사람들과의 관계 정리 


사회 초년생 시절 이 일이 과연 나와 맞는 건지 고민에 빠진 적이 있었다. 친구 A에게 진지하게 물어봤지만 친구 A는 제대로 듣지도 않고 진지함이 1도 없는 얼굴로 “야 다 똑같아. 그냥 지금 회사 계속 다녀.”라는 답변을 했다.


나는 예전에 친구가 전공을 바꾸는 걸 심각하게 고민할 때 인맥을 동원해 다른 과 정보를 알아봐 주기도 하였고, 썸녀와 진전이 없을 때는 밤에 전화로 연애 상담을 해주기도 하였다. 연애상담, 진로상담을 해줬던 수많은 시간들이 갑자기 덧없게 느껴졌다. 결국 그날의 만남은 찝찝하게 끝이 났고 이런 만남이 1~2번 반복된 후 연락이 끊겼다.


나에게 “대학원 학비 어떻게 감당하려고?”라고 말한 친구 B에게 돌직구를 날렸다. “그렇게 부정적인 얘기만 하면 누가 너랑 친구 하고 싶어 할까?” 결국 이게 친구 B와의 마지막 대화였다.


친구란 서로 배려하고 힘이 되어주며 긍정의 힘을 얻을 때 계속해서 관계를 이어 나갈 수 있다. 친구라는 프레임에 가두어 놓은 채 내 감정은 고려하지 않는 이기적인 사람과는 계속 관계를 이어나가기 힘들었다.


가끔 ‘그 친구들과 계속 연락했으면 어땠을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고 그 친구들과 관계를 이어갔다면 내 에너지를 계속 갉아먹었을 거라는 것을. 인간관계에 있어서 항상 최선의 방법을 찾고자 하지만 그건 쉽지 않은  일이다. 그 친구들과 계속 연락을 이어 갔다면 언젠간 서로에게 더 큰 상처를 주고 더 안 좋게 헤어지지 않았을까 하고 스스로를 위로해본다.

이전 09화 꼭 모든 사람과 잘 지내야 할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