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산들산들 Sep 21. 2020

오랜만의 연락을 ‘읽씹’ 한 이유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되고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될까?

[이미지 출처: unsplash@gilleslambert]


30대 후반이 되면서 주변 사람들과 연락의 빈도가 확 줄었다. 20대에는 축구선수 호날두가 해트트릭 했다는 시답잖은 일로도 카톡을 주고받던 나와 친구들은 이제 특별한 일이 있어야 연락을 주고받는 사이가 되었다. 그리고 이 특별한 일이란 건 결국 좋은 일과 나쁜 일 두 가지로 나눠진다.


신기하게 나에게 나쁜 일이 있을 때만 연락하는 지인이 있다. 분명 승진이나 내 좋은 소식도 전해 들었을 텐데 그때는 연락이 없다가 나쁜 일이 있을 때만 연락을 해서 본인이 궁금한 내용을 물어보는 상황이 반복되었다. 처음 한 두 번은 우연이라고 생각했지만 여러 차례 반복되자 확신으로 바뀌었다.


연락의 의미


코로나 19로 인해 회사 사정이 점점 안 좋아졌고, 얼마 전 주 1회 무급휴직을 하기로 결정이 되었다. 무급휴직에 대한 기사가 났고 기사를 통해 이 소식을 들은 지인들이 연락을 해왔다. 내 생활과 직결된 아주 예민한 문제였지만 그 사람들에게 그런 건 별로 중요하지 않아 보였다. 그들은 친절하게 뉴스 기사까지 캡처해서 보내면서 “헐 대박! 이제 월급 못 받는 거예요?" 라며 카톡을 보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나에 대한 배려는 전혀 없었고 그저 본인들의 호기심을 채우기 위한 연락으로 보였다. 특히나 OB (기존에 이 회사에 다니다가 퇴사한 사람)들이 많이 연락을 해왔다. 아마도 안 좋은 회사 사정을 보고 '그래 내가 퇴사하길 잘했지.'라고 본인의 선택이 옳았음을 확인받으려는 것 같았다.


정말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될까?


적어도 내겐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되고,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된다.'는 말은 적용되지 않았다. 그들의 연락의 목적은 나를 위로하기 위함이 아니었기 때문에 내 슬픔 역시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나를 진정으로 아끼고 생각해 주는 사람들과 나누는 것이 중요했고,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 나의 슬픔은 그저 가십거리에 불과했다. 결국 나는 몇몇 지인들의 연락에 '읽씹'을 했다. 일일이 대처하기도 귀찮았고 그 사람들과 말다툼을 벌이며 감정을 소모하기도 싫었다.


아무런 회신이 없는 숫자 1이 사라진 카톡을 보고 그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나를 쿨하지 못한 사람이거나 연락을 씹는 예의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을까 아니면 본인의 행동이 무례하다고 늦게나마 깨달았을까? 부디 후자이길 바라본다.



이전 10화 만나면 기 빨리는 관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