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에게 어떤 기억으로 남아 있는 걸까?
[사진출처: unsplash]
훈련소에서 49일 동안 함께 지냈던 동기 성철이는 퇴소하는 날 나에게 손편지를 건네줬다.
‘어렵게 만나 쉽게 헤어지는 게 싫어 편지를 쓴다. 자대 가서 잘 적응하고 꼭 연락하자.’
하루 24시간 내내 함께 밥 먹고 훈련받고 자면서 많은 정이 들었던 우리는 눈물을 흘리며 집전화번호, 이메일 주소, 심지어 부모님 핸드폰 번호(예전에는 휴가 나오면 부모님 핸드폰을 사용하곤 했다.)까지 교환하고 꼭 연락하자는 약속을 하며 헤어졌다. 하지만 우리가 연락을 주고받는 일은 없었다.
이렇게 친했던 사람과 갑자기 멀어지는 일이 자주 있었다. 중국에서 유학할 때 1년 동안 한국인 룸메이트형과 함께 지냈는데, 룸메이트형은 나보다 3살이 많았지만 외향적이고 유쾌한 성격의 형 덕분에 즐겁게 지낼 수 있었다. 밤새 해바라기씨를 안주 삼아 맥주를 마시며 서로의 연애 얘기를 하기도 했고, 시험 기간에는 음악을 들으며 공부하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는 귀국 후 급격히 멀어졌다. 내가 몇 번 먼저 연락을 했지만 형은 취업에 대한 압박 때문인지 마음의 여유가 없고 연락 하기 불편한 듯했다. 함께 지낸 시간과 추억이 많았던 만큼 섭섭함도 크게 느껴졌고 그렇게 나와 룸메이트형은 연락이 끊겼다.
예전에는 이런 인간관계에 회의감을 느꼈다. '함께한 추억과 시간이 있는데, 어떻게 서로 살기 바쁘다고 연락을 딱 끊을 수가 있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많은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면서 깨닫게 된 점은 함께 지내는 동안 즐거웠고, 좋은 추억으로 남아 있다면 괜찮다는 것이다.
배려심 많고 나를 챙겨 주는 훈련소 동기 성철이 때문에 힘든 훈련기간을 이겨 낼 수 있었고, 유머러스한 룸메이트형 덕분에 즐거운 유학생활을 할 수 있었던 것처럼 두 사람은 내게 소중한 존재로 남아 있다. 계속해서 새로운 사람과 관계 맺음을 하는 현대사회에서 모든 지인과 연락을 유지하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현재 우리가 연락을 주고받는지도 중요하겠지만 더 중요한 건 서로에게 어떤 기억으로 남아있는지가 아닐까?
중국 유학을 마치고 8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후, 부산에서 우연히 룸메이트 형을 만났다. 저녁을 먹고 해운대 해변을 따라 걷고 있었는데 어둑해진 밤에 잠깐 스쳐 지나가면서도 우린 서로를 한 번에 알아봤다. 각자 일행이 있어 긴 얘기는 못 나누고, 5분 남짓한 짧은 시간 동안 서로의 근황 정도만 나누었던 걸로 기억한다. 다행히 형은 취업에 성공해서 잘 지내고 있었고 여전히 유쾌하고 자신감 넘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우린 '언제 한 번 밥 먹자.’라는 상투적인 인사는 하지 않았다. 둘 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수많은 만남과 헤어짐을 경험했기 때문일까? 우린 쿨하게 악수하며 작별 인사를 하고 각자 가던 길을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