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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형욱 Mar 26. 2024

일월의 끝

 때를 놓친 캐롤과 쌓인 눈, 카운트다운, 파티가 끝난 뒤 남은 술들, 꺼진 조명, 코끝을 때리는 추위로 올해가, 일월이 시작되었다. 이제 시작이 끝났다. 나는 수없이 많은 일월을 끝내보았다. 일월을 끝낼 때는 생각보다 춥다는 것과 보름달이 뜨는 일이 잦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것을 배우는 동안 많은 시작을 겪었고 시작보다 많은 끝을 지나갔다. 


 시작은 사람을 들뜨게 한다. 나도 시작만으로 움직일 수 있던 때가 있었다. 반짝이는 모든 것들에 달려가던 때가 있었다. 단순히 빛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다 부수어져 버리던 때가 있었다. 이제는 다짐이 아니고는 움직이기 어렵다. 시작하는 것은 끝내는 것보다 무서워졌다. 이제는 시작이 나를 들뜨게 하지 않는다. 그렇게 나이를 먹는 동안 많은 다짐들이 나를 지나갔다. 그 중에는 미처 갖지 못한 다짐들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다짐들이 더 많다. 그래서 늘 남의 다짐들을 훔치게 된다. 

 

 들뜨지 않았음에도 이번 달의 나는 끼니를 거르지 않았다. 해가 뜨면 일어났다. 해가 지면 달이 떴다. 달이 지면 잠을 잤다. 안다는 말보다 모른다는 말을 많이 했다. 가끔 골몰했고 자주 멍했다. 바라는 일보다 그리워하는 일이 잦았다. 여행을 했고 술을 마셨고 가만 앉아 햇볕과 바다를 보았고 밤을 보았다. 이렇게 다짐 없이도 벌이는 일들이 있었다.

 

 일월은 추웠다. 볕은 밝았고 어둠은 짙었다. 자연스러웠다는 말이다. 그 와중 잦은 일들은 내게 처음으로 오늘의 날씨를 알려준 사람이나 마지막으로 나의 온도를 궁금해했던 사람을 떠올리는 일이었다. 다짐 없이 움직이는 사람이 하는 일은 대개 그러하다. 자연스러운 일이다.

 

 일월이 끝났다. 나는 수없이 많은 끝을 겪었다. 무엇인가를 끝낼 때는 생각보다 춥다는 것과 보름달이 뜨는 일이 잦다는 것을 안다. 그것을 배우는 동안 끝이라는 건 내게 없지 않을까 하는 의심이 생겼다. 다짐을 할 줄 아는 사람에게나 끝이 있는 것. 그러므로 다짐한다. 모든 다짐들을 이월로 이월하겠다. 해가 지면 달이 뜨듯이. 달이 지면 해가 뜨듯이.

 

 그러니 모든걸 용서하세요. 나를 지나간 일월의 다짐들이여. 모든 시작들이여. 그리고 끝이라는 건 없지 않을까. 내 것이 아닌 모든 다짐을 버리게 하소서. 나의 一月, 나의 日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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