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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세이가주 Sep 14. 2022

흰머리가 신경 쓰일 뿐인데

사춘기대 갱년기

머리카락이 우수수 빠진다. 탄력 있고 탐스럽던 내 머리카락은 이제 빛을 잃었다. 염색한 지 아직 한 달이 되지 않았는데도 앞 머리 정수리에 하얀 머리가 삐죽 나오기 시작했다. 이마 위로 머리숱이 더 없어 보인다. 아침에 친구를 만나러 나가는 길, 아무리 화장을 하고 머리를 해도 예쁜 티가 나지 않는다. 휑한 앞머리에 친구가 추천해준 흑채를 살며시 뿌리고 광채 스틱을 이마에 바른 후 한숨을 푹 쉬며 집을 나선다.


이곳 캘리포니아의 햇빛이 사람을 잡는다. 어디 사막 한가운데 서 있는 느낌이다. 모자를 쓰고 선글라스로 얼굴을 가려도 얼굴에는 점점 잡티가 올라오고 머리카락은 점점 메말라간다. 그래서 머리카락이 우스스 더 빠지는 걸까.


오늘은 내 생일이다. 생일이 가까워져 오니 기분이 더 다운이다. 왜 그럴까. 이제 한 살 한 살 나이 먹는 것이 두려워서일까. 아들이 피아노 레슨을 받을 동안 혼자 차 안에서 에어컨을 크게 틀어놓고 유튜브로 갱년기 증상에 대해 검색한다. 몸이 피곤하고 신경이 예민해지는 건 당연지사고 머리카락이 빠지는 것, 열이 오르락내리락 거리는 것도 갱년기 증상이란다. 이 더위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뭔가 감정이 복잡해지고 불안해지고 하루에도 열두 번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건 내가 이 나이가 되어서인가보다. 괜히 가만히 있는 남편에게 짜증을 한 바가지 쏟고 나서 혼자 더 우울해져 모두가 잠든 밤 책상 앞에 앉았다. 나의 이 기분은 뭐랄까.분노의 하이에나다.


사춘기 딸과 갱년기 엄마가 만났다. 우리 둘은 치열하게 싸우고 울고 방문을 두드리고 다시 화해하고 미안하다 말하고 다시 웃고 그리고 또 싸운다. 네가 잘못한 것도 같고 내가 잘못한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다. 이게 계속 반복한다는 것, 앞으로도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게 중요하다. 30대 후반에 낳아 둘째를 40대 초반에 낳고 10년 넘게 육아하며 살았더니 어느새 50대가 코 앞이다. 나에게 남은 건 저질 체력과 푸석한 피부와 휑한 머리, 그리고 감정이 널뛰는 그렇고 저런 초라한 아줌마일 뿐이다. 나보단 가족을 먼저 더 챙기고 나를 맨 뒤로 뒀는데 후회막급이다. 눈 밑에 다크서클이 오늘따라 왜 이리 진해 보이는지. 오랜만에 각질 스크럽을 꺼내 얼굴에 비비고 비타민 팩도 붙여 본다. 자고 나면 좀 탱탱해 보일라나.


혼자 방에 앉아 읽던 책들을 뒤적거리고 공책에 끄적거리면서 마음을 가다듬어본다. 계획은 매일 바뀌지만 이렇게 해야 할 일, 하고 싶은 일들을 적어보면 마음이 차분해지며 다시 힘이 솟는다. 나이는 들어가지만 아직 하고 싶은 일들이 너무 많다. 창 밖은 이제 어수룩해지고 선선한 바람도 들어온다. 그러면 내면에선 여기 이렇게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된다고 속으로 소리치며 당장 밖으로 나가 힘차게 걷기라도 하라고 아우성이다.

아직 올해가 4달이나 남았어! 올초에 세웠던 계획들을 지금 다시 시작해야 할 때야 하면서 어느새 마음은 에너지로 가득 차오른다. 너무 쉽게 의욕으로 충만해지고 또 너무 쉽게 사그라드는 나이지만 또 새로운 계획들로 마음이 누그러진다. 몸과 마음을 그저 편안하게 하는 것만이 최선은 아니다. 새로운 도전, 새로운 계획들이 오히려 나이를 잊게 만든다.내일은 밖으로 나가 맛있는 브런치를 먹고 읽고 싶었던 책도 주문하고 산책도 하는 거야.

흰머리야 뭐 염색하면 되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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