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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귤껍질 Jul 26. 2024

삶과 함께 변화하는 집

엄마의 집짓기


“나만 문 내는 방향을 반대로 해야 한다고 했어, 손님이 들어오는 방향과 반대로 문을 내야 프라이빗한 공간이 되잖아. 결국 내 말대로 했지.”




몇 달간 ‘엄마의 집짓기’ 관련 글을 많이 올리지 못했다. 집 짓기가 끝이 보이니, 글의 방향성을 고민하겠다는 핑계로 쉬었다. 그런데 집 짓기는 끝난 것이 아니었고, 크고 작은 변화들이 계속되고 있었다. 부모님이 부지런히 움직이는 만큼 공간은 계속 변화하고 있다. 그 여정을 계속 써 내려가 보려고 한다.


5월에 신축에서 지인의 브라이덜샤워를 진행한 뒤, 꼭 주말이면 한 두 개씩 생기는 약속 때문에 오랜 시간 천안에 내려가지 못했다. 그러다가 요즘에는 거의 매 주말마다 천안행 기차를 타고 있다. 집밥이 그립기도 하고, 마음이 편한 공간이라서 자꾸 가게 된다.

브라이덜 샤워를 하며 나도 한 장 찰칵!

천안집은 비가 오는 날도 해가 쨍한 날도 안락한 쉴 곳이 되어 준다. 그 안에서 가장 편한 옷을 입고 자고 먹고를 반복하며 게으름을 피운다. 마당에서 잘 익은 토마토 몇 개 따고, 엄마가 시키는 조경과 농사일을 조금 거들고 샤워를 한다.


그다음 순서로 로션을 바르는 게 세상 귀찮다. 얼굴이 땡기지 않으면 로션은 생략하기로 한다. 서울에서는 피부 관리를 한다며 5겹이나 바르는데, 천안에서는 왠지 마음이 느긋해진다.


여차하면 잠옷으로 입고 잘 수 있는 가장 편한 옷을 입고 티비를 보면서 아이스크림을 먹는다. 그렇게 서울을 벗어나 마냥 쉬는 시간이 좋다.


부엌에서 보이는 뷰

어쩌다 들린 딸은 대부분의 시간을 손님같이 쉬지만, 부모님은 해가 뜨기 시작하면 가장 더운 낮 시간을 제외하고 온종일 일을 한다. 시키는 사람도 말리는 사람도 없이, 스스로 좋아서 하는 일이다.


한 주 전에는 구축 뒤, 작고 오래된 창고를 뜯어내고 새로운 창고를 짓는 공사를 했다. 7월 무더위의 초입에서, 아빠는 구축 뾰족집이 만드는 그늘 속에 숨어서 한나절 동안 창고 지붕을 걷어냈다.

지붕을 뜯어내고 있은 아빠
허리를 숙여야 들어갈 수 있는 작은 창고

그런 아빠를 구경하는데, 엄마가 일거리를 쥐어줬다. 물이 잘 빠지게 화단에 작은 돌들을 깔라는 미션이었다. 끝나니 이번에는 씨앗을 따라고 했다. 나름 부지런히 손을 움직였지만, 결국 끝내지 못하고 다시 누우러 갔다.


정원에 뿌린 자갈들

그런데 한두 시간 정도 흘렀을까? 아빠가 지붕과 남아있던 기둥까지 모두 걷어냈다며 구경하러 오라는 거다. 창고가 아무리 작아도 그렇게 뚝딱 해체되는 것이었다니, 신기해서 쪼르르 달려가니 잔해물이 조금 흩어져 있을 뿐 수년간 자리 잡고 있던 창고 자리가 텅 비어 있었다.

지붕과 벽을 띁어낸 흔적
철골만 남은 모습




다음 주 토요일 아침에 또 천안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약속 줄이기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주말을 계속 비워두니, 천안집 가는 게 일상이 되고 있었다.

엄마표 김밥

엄마표 김밥을 먹고 나니, 부모님이 새 창고 구경을 가자고 했다. 앗 그런데, 지난주에는 창고가 있었던 자리에 거대한 목공실이 들어서 있었다.


이전 창고는 허리를 잔뜩 숙여야 들어갈 수 있었다. 안에는 농사용 호미와 테라스에 두기 애매한 잡동사니가 있었다. 새로운 목공실은 아빠가 허리를 곧게 펴고 서도 천장에 닿지 않았다. 작업 책상 두어 개를 두어도 충분할 만큼 넓었다. 목공실 문을 열과 나오면 작은 테라스가 있고, 테라스 앞 좁은 길은 정원으로 이어졌다. 신축의 작업실은 엄마의 공간이었다면, 이 목공실은 아빠의 공간이 될 거였다.

목공실 뒷문
목공실 내부
우리를 보는 호!

"목공실 앞으로 나무를 몇 개 더 심을 거야, 사생활이 보호되도록. 그리고 여기 이 나무가 죽었는데 뽑아내고 이 자리에 문을 내려고, 초록색 문을. 그럼 마을 주민들이나 친구들이 들어와서 테라스까지 바로 갈 수 있는 거지."라며 엄마는 상상하고 있는 내용을 말해줬다. 상상한 것을 어떻게든 구현해 내는 엄마이고, 2층짜리 갤러리를 지어낸 두 분이니 목공실 만드는 것쯤은 뚝딱 해낼 것 같았다.

목공실에서 정원으로 이어지는 길
정원의 모습

문을 낼 때 일부러 구축 입구와 반대로 냈다는 엄마의 말이 재미있었다. 다들 문 방향을 구축과 같게 해야 한다고 했다고 한다. 실제로 이전의 창고도 구축에서 나와서 쉽게 열고 닫을 수 있도록 문 방향이 같았다. 그런데 앞으로 구축을 빌려주거나 할 건데 그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단다. 아빠의 공간에 손님들이 기웃거리면 서로 불편하지 않겠냐고 했다. 언제나처럼 분명한 이유를 가지고 부리는 고집을 꺾을 수 있는 사람은 없었고, 결국 문은 길가 쪽으로 났다.


구축, 신축에서 끝난 줄 알았던 엄마아빠의 프로젝트는 목공실, 그리고 신축으로 옮겨간 새로운 저온 창고 짓기, 도자기를 구울 가마실 만들기로 이어지며 계속되고 있었다. 그냥 그 모습을 보다 보니 이 변화들에 대해 계속 쓰고 싶어졌다. 나중에 이 여정을 책으로 내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꾸준히 써 볼 작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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