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나의 20살에게, 편지 한 통 쓰고 싶은 곳

<아무튼 술집>, 김혜경(제철소)

by 귤껍질


신촌에 서른 즈음에 라는 술집이 있다. 김광석의 노래 제목이랑 같은 간판이 오랜 세월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다. 사장님이 오픈을 잘 안 하시는 건지, 나의 운명인 건지 찾아가면 두어 번에 한 번은 닫혀 있다. 닫힌 문을 보면, 괜히 이 가게가 금세 내 추억 속 가게로만 남고 사라져 버릴 것 같은 묘한 기분이 든다.


아무튼, 이 가게에 스무 살 초반에 무척 많이 갔다. 오래된 노래를 엘피판으로 틀어주고, 마찬가지로 오래된 홀에 신촌의 대학생과 추억의 술집을 찾아온 사람들이 섞여서 앉아 있다. 언제 달았는지 모를 천장의 별 모양의 장식, 오래된 나무식탁, 좁은 테이블석이 있는 풍경이 눈에 생생하다. 여기서 메인 메뉴인 폭탄주를 한치와 함께, 먹태와 함께 먹었다.




최근에 정말 서른 즈음의 나이가 되어서, 다시 찾았다. 옛날 앉았던 그 자리, 왠지 그때부터 있었을 것 같은 낙서를 구경했다. 익숙하게 기억하는 술과 안주 맛을 기대하며 기다렸다. 그리고 약간 시간여행을 하는 기분으로 옛날 우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지나간 시간에는 낭만이라는 필터가 씌워진다. 서툴게 남발한 실수들, 방향을 잡지 못해 사방으로 튀어 다녔던 바쁘지만 실속 없는 시간들이 모두 그리운 이야기들이 되었다. (물론 지금도 똑같지만 말이다. 그래서 오히려, 지금의 나를 위안해 보기도 한다. 조금 더 미래의 내가 지금의 정신없는 시간을 예쁘게 기억해 줄 거라고 말이다.)




시간으로 인테리어 한 듯한 공간이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삶의 한때를 보낸 장소들이. 신촌의 술집과 카페들은 스무 살 초반,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도 모르고 흘려보낸 인생의 변곡점 같은 한 때가 담겨있는 곳들이라 더 마음에 남는다.


이번 아무튼 시리즈는 추억이 머문 공간이 많이 떠올랐다. 아직 완독을 하지는 못했는데, 좋아했던 장소들이 그리울 때 다시 펴보려 한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주어진 삶을 살아내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