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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자 Dec 18. 2023

행복의 완성은 결국, 돈이다

지난 일욜일에는 예정에 없던 현대프리미엄아울렛을 다녀왔다. 두 번째였다. 바다가 보고 싶다던 쁨이는 만년 입는 나의 롱패딩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한사코 아울렛으로만 가자고 했다. 지난달에 거기서 코트 한 벌을 사줬었는데 집에 와서 확인해 보니 인터넷과 가격까지 같아서 매우 흡족해했다. 그러고 보니 며칠 뒤면 우리 쁨이 생일이고 또 며칠 뒤에는 크리스마스다. 바다를 못 보여주는 게 아쉽기는 했지만, 잘 됐다 싶었다.


"오늘은 엄마 패딩 사러 온 거야. 내 거 아니다~ 다른 생각 하지 마라~"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바쁘게 돌아가는 나의 눈을 쁨이는 단박에 돌려세웠다. 연말이라 그랬는지, 주말이라 그랬던지 처음 때보다는 사람도 많고 여기저기서 행사도 많이 해 상당히 북적거렸다. 1층 거기를 이벤트 플라자라고 하는지 행사장이라고 하는지는 모르겠는데, 그냥은 지나칠 수 없게끔 마침 딱 필요했던 머플러와 장갑 매대가 정 중앙에 자리 잡고 있었다. 목도리가 없는 건 아니지만 깁스한 것마냥 칭칭 두르는 불편함 때문에 심플하게 착용할 수 있는 머플러도 하나 있었으면 했다. 장갑도 없는 건 아니지만 손가락 길이에 맞는 게 없어서 하나 사야지 했던 참이었다. 없지 않아서 미뤄만 오던 것들이었는데 가는 날이 장날이었다. 우리 쁨이도 기다란 목도리만 있고 장갑도 몇 년 된 것들만 있으니 온 김에 하나씩 사기로 했다.


“엄마! 이거 어때? 이거는? 이거는? 이거는!”

“음… 이것도 그것도 저것도 저것도 다 괜찮긴 한데 엄마는 이게 훨씬 귀엽고 예쁜 거 같은데? 쁨이 생각은 어때? 순위를 정해 보자."

“그래? 나는 이거 이거 예쁜데. 이거는 여기 털이 예쁘고 이거는 여기(손목에) 이 체인이 예쁜데."

“우리 쁨이 마음에 드는 걸로 사야지. 마음에 드는 걸로 해.”

“어떡하지? 뭘로 사지! 엄마 엄마 다시 봐봐! 이거? 이거? 이거? 이거?”

“엄마는 (끝까지) 이거!”

“흠... 그래? 나도 사실 이게 제일 어울리는 것 같긴 한데… 어떡하지? 뭘로 살까? 흠…"

“쁨이 마음에 드는 걸로 편하게 천천히 골라.”

“음… 그냥 이걸로 할래!"

“왜? 쁨이 마음에 드는 걸로 사."

“이게 제일 잘 어울리는 것 같아!"

“그래? 그럼 그걸로 하자. 사실 아까 그것들은 권사님 장갑 같았어."

“뭐어~!”


우리는 깔깔깔깔 신나게 웃으며 패딩을 사기 위해 걷고 걷고 끊임없이 걸었다. 눈에 보이는 매장은 다 들어갔던 것 같은데 마음에 쏙 드는 패딩은 만나지지 않았다. 디자인이 마음에 들면 팔 기장이 짧고 팔 기장이 됐다 싶으면 디자인들이 별로였다. 둘 다 키가 크고 팔다리가 길어서 옷 한벌씩 사려면 발품을 많이 파는 편이라 체력 충전은 필수다. 휴... 카페에서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다시 봐도 머플러와 장갑은 참 잘 샀다며.


"엄마! 전투적으로 골라 봐. 나는 오늘 여기서 꼭 사 갈 거니까 얼렁뚱땅 넘어갈 생각 하지 마라~ 그리고 엄마가 지금 은근슬쩍 그냥 넘어가려는 것 같은데 어버이날 선물도 지금까지 안 골랐거든. 그러니까 오늘 꼭 사. 알겠지! 왜 맨날 내 것만 사냐고. 엄마 것도 사라고. 쫌! 어!"


솔직히 외투 가격이 한 두 푼 하는 것도 아니고 용돈 못 준지도 한참 되어서 안 사고 싶었다. 그런데도 사긴 사야 했다. 패딩은 하나뿐이고 나머지는 코트류인데 지금은 정장 코디가 필요치 않는 직업군이라서 캐주얼하게 막 걸칠 수 있는 패딩이 하나 정도는 더 있어야 세탁하며 돌려 입을 수 있을 테니까. 눈에 불을 켜고 일어났다. 갔던 매장 또 가고. 갔던 매장 또 가고. 가고 가고 또 가고. 계속 그렇게 돌아다니다가 사이즈부터 가격에 디자인까지 안성맞춤인 패딩 하나를 드디어 골라 잡았다. 때마침 라스트 찬스로 추가 할인까지 진행 중이었다. Lucky.


"쁨! 고마워. 잘 입을게!"


쁨이는 되게 좋아했다. 나도 많이 좋았다. 우리 쁨이와 같이 입을 수 있는 패딩이다. 다음으로는 우리 쁨이 생일, 크리스마스 선물을 보기 위해 돌아다녔다. 몇 번을 가야 동선이 익숙할까. 돌고 돌다 보니 주얼리 코너가 나왔다. 지난달에 갖고 싶은 선물이 뭐냐고 물으니 금이랑 이불이래서 알아보고 있었는데 온 김에 사가는 것도 괜찮겠다 싶었다. 코너를 뺑그르르 다 돌았다. '왜 이렇게 비싸. 동네 금방이랑 가격 차이가 너무 나는 거 같은데... 며칠 새 금값이 또 올랐나?' 쁨이는 신이 났고 나는 좀 긴장했다. 손이 아닌 눈이 덜덜 떨렸다.


"엄마 이거 어때?"

점원 : 이것도 디자인이 같아서 이렇게 사이드로 하나 더 끼워주면 훨씬 예뻐요. (계산기를 두드리더니) 이게 원래 팔십 얼만데 지금 행사 중이어서 사십 얼마 정도예요.

"(이렇게 생긴 게 사십 얼마?) 두 개 중량이 몇 인가요?"

점원 : (여기는) 중량 판매하는 매장이 아니라서요.

"우와! 예쁘다! 엄마 어때?"

"오~ (정말) 예쁘긴 하다. 그게 제일 마음에 들어?"

"응!"

"(예산 초과긴 한데) 그래, 그걸로 하자. 주문할게요."

점원 : 아 그런데 이게 단종된 디자인이라서 매장에는 하나밖에 없고...(컴퓨터로 확인해 보더니) 전국에 지금 5개 남았는데 전부 (이렇게) 매장용이라서 주문은 안 되세요.

"(처음부터 말했어야지. 뭐야 이 여자) 쁨이는 이게 지금 마음에 드는 거지?"

"응! 그냥 가져가면 안 돼?"

"그래... 주세요."


중량 판매도 아니고 주문 매장인데 사람들 손 탄 디피용을 제 값 주고 산다는 게 썩 내키진 않았지만, 혼자서 몇 군데 돌아다녀 본 곳 중에선 가장 마음에 들었기에 갖고 싶다는 거 기분 좋게 사들려 오고 싶었다. 세척 후 손가락에 바로 끼고 나왔다. 침구 예산을 줄이기로 했다.


"배 안 고파?"

"응 안 고파! 하나도 안 고파! 아웅 너무 예뻐! 엄마 고마워!"


신이 났다. 손가락을 보고 보고 계속 본다. 그렇게나 좋은가 보다. 종일 귤, 핫바, 음료 외에는 먹은 게 없는데 배가 안 고프댄다. 어릴 때 선물 받으면 안 먹어도 배 부르고 어지간한 건 너그럽게 용서되고 그렇든데 우리 쁨이도 그런가 보다. 내 주변인들도 돈 쓴 날은 안 먹어도 안 고프다더라. 먹어도 무슨 맛인지 모르겠다던데. 나도 그렇다. 쁨이가 좋아하니 나도 좋다. 쁨이가 행복하다 말하니 나는 더할나위 없이 행복하다. 이날을 위해 졸라맨 시간들이 참 뿌듯했다.


행복은 돈으로 살 수 없다고들 하든데 내 삶의 행복은 대체적으로 돈이 있어야지만 비로소 완성되더라. 7년 전 실직 후 2년 전까지 피고름 나는 생고를 겪으며 처절하게 깨달았다. 사랑만으로는 의식주를 결코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을. 마음 하나만으로는 어울리고 설 자리가 그리 많지 않다는 현실을. 결국 이놈의 사회에서는 그놈의 돈이라는 것이 대부분을 결정짓고 완성시키는 결정타라는 것을.


비단 나뿐일까. 형제지간도 돈 있는 형제끼리 더 자주 만나고 우애가 좋다. 친구도 돈이 없으면 마음 편히 만나지지 않는다. 마음은 표현해야 안다 듯 사랑도 부족한 물질 앞에선 언제나 목이 마르고 가슴 아픈 이별을 맞기도 한다. 건강도 지키려면 돈이 있어야 하고 가정의 평화도 결국 그 돈에 의해 좌지우지되더라. 비즈니스도 돈이 있어야지만 화끈하게 맺고 거침없이 파기할 수 있다.


물론 생과 동시에 이미 정해진 죽음은 건강을 아무리 지킨다 한들 절대 피할 수 없는 수순이다. 실체 없는 마음 또한 돈으로는 결코 움켜쥘 수 없다. 다 가져도 가질 수 없는 게 보이지 않는 사람 마음이니까. 풍족하면서도 외롭다 말하고 허하다 느끼는 이들은 그런 이유 때문이겠지. 풍요 속의 빈곤 같은.


"엄마! 이거 생일 선물이랑 크리스마스 선물로 하자. 돈 너무 썼다!"


어차피 침구는 사야 한다. 이사 올 때 다 버려버려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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