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일욜일에는 예정에 없던 현대프리미엄아울렛을 다녀왔다. 두 번째였다. 바다가 보고 싶다던 쁨이는 만년 입는 나의 롱패딩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한사코 아울렛으로만 가자고 했다. 처음 때 사줬던 코트가 온라인 쇼핑몰과 소재도 같고 가격도 같아서 다음부터는 지역에 없는 상품은 아울렛에서 사기로 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며칠 뒤면 우리 쁨이 생일이고 또 며칠 뒤면 크리스마스다. 바다를 못 보여주는 건 아쉽지만, 잘 됐다 싶었다.
"오늘은 엄마 패딩 사러 온 거야. 내 거 아니다~ 다른 생각 하지 마라~"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바쁘게 돌아가는 나의 눈을 쁨이는 단박에 돌려세웠다. 연말이라 그랬는지, 주말이라 그랬던지 처음 왔을 때보다 사람도 많고 여기저기서 행사도 많이 해 상당히 북적거렸다. 1층 그곳을 이벤트 플라자라고 하는지 행사장이라고 하는지도 모르겠는데, 그냥은 지나칠 수 없게끔 마침 딱 필요했던 머플러와 장갑 매대가 정 중앙에 자리하고 있었다.
장갑과 머플러를 사 들고 패딩을 사기 위해 1층부터 2층까지 걷고 걷고 끊임없이 걸었다. 패딩 하나 사기가 그렇게나 어려웠다니. 디자인이 마음에 들면 팔 기장이 짧고 팔 기장이 됐다 싶으면 디자인들이 별로고 여러모로 마음에 든다 싶으면 가격이 너무 사악했다.
"엄마! 전투적으로 골라 봐. 나는 오늘 여기서 꼭 사 갈 거니까 얼렁뚱땅 넘어갈 생각 하지 마라~ 그리고 엄마가 지금 은근슬쩍 그냥 넘어가려는 것 같은데 어버이날 선물도 지금까지 안 골랐거든. 그러니까 오늘 꼭 사. 알겠지! 왜 맨날 내 것만 사냐고. 엄마 것도 사라고. 쫌! 어!"
카페에서 체력 충전 음료를 마시던 쁨이가 눈을 똥그랗게 뜨고 세상 무습게 말했다. 오구 무스와라. 나도 마음 같아서는 전투적으로 쓸어 담고 싶었다만, 가격만큼 맘에 드는 게 정말 없는데 어떡하냐고 했더니 그럼 집에 안 간다며 정말 안 간다며 곧 삐치기 일보직전이 되었다. 오케이! 그럼 사야지! 당장 사야지! 휴게소 들러 핫바도 먹고 도란도란 이야기하며 평화롭게 집에 가 웃으면서 자려면은 반드시 사야지! 어차피 하나는 더 있어야 세탁하고 돌려 입을 수 있는 거니까 사는 게 맞지! 눈에 불을 켜고 일어났다. 갔던 매장 다시 가고. 갔던 매장 다시 가고. 가고 가고 또 가고. 계속 계속 그렇게 돌아다니다가 합리적인 가격의 패딩 하나를 드디어 골라 잡았다. 때마침 라스트 타임 할인까지 적용돼서 Lucky.
"나는 안 입을 거야. 알겠지!"
"알았어, 알았어~"
같이 입을 요량이었던 내 속내를 곧바로 알아차린 쁨이는 단단히 으름장을 놓았다. 다음은 주얼리 코너로 향했다. 생일,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고 싶은 걸 물으니 금이랑 이불이래서 온 김에 사 주는 것도 좋겠다 싶었다. 주얼리 코너를 두 바퀴 돌았다. 허억... 너무 비싸. 동네 금방 가격을 생각하면 안 되는 거였구나. 덜덜 떠는 사이 쁨이 마음에 쏙 드는 반지가 나타났다.
"엄마 이거 어때?"
점원 : 이것도 디자인이 같아서 이렇게 사이드로 하나 더 끼워주면 훨씬 예뻐요. (계산기를 두드리더니) 이게 원래 팔십 얼만데 지금 행사 중이어서 사십 얼마 정도예요.
"(이렇게 생긴 게 사십 얼마?) 두 개 중량이 몇 인가요?"
점원 : (여기는) 중량 판매하는 매장이 아니라서요.
"우와! 예쁘다! 엄마 어때?"
"오~ (정말) 예쁘긴 하다. 그게 제일 마음에 들어?"
"응!"
"(예산 초과긴 한데) 그래, 그걸로 하자. 주문할게요."
점원 : 아 그런데 이게 단종된 디자인이라서 매장에는 하나밖에 없고...(컴퓨터로 확인해 보더니) 전국에 지금 5개 남았는데 전부 (이렇게) 매장용이라서 주문은 안 되세요.
"(처음부터 말했어야지. 뭐야 이 여자) 쁨이는 이게 지금 마음에 드는 거지…?"
"응! 그냥 가져가면 안 돼?"
"그래... 주세요."
중량 판매도 아니고 주문 매장인데 사람들 손 탄 디피용을 제 값 주고 산다는 게 썩 내키진 않았지만, 동네 금방들 디자인보다는 마음에 들었기에 기분 좋게 사들려 오고 싶었다. 침구 예산을 좀 줄이면 되는 거니까... 점원이 세척 후 건넨 반지를 쁨이는 손가락에 바로 끼었다.
"배 안 고파?"
"응 안 고파! 하나도 안 고파! 아웅 너무 예뻐! 엄마 고마워!"
얼마나 좋으면 손가락을 보고 보고 계속 본다. 종일 귤, 핫바, 음료 외에는 먹은 게 없는데도 배가 하나도 안 고프댄다. 어릴 때 선물 받으면 안 먹어도 배 부르고 어지간한 건 너그럽게 용서되고 그렇든데 우리 쁨이도 그런가 보다. 쁨이가 좋아하니 나도 좋다. 쁨이가 행복하다 말하니 나는 더할나위 없이 행복하다. 이날을 위해 졸라맨 시간들이 참 뿌듯했다. 이런 선물을 얼마 만에 해준 건지 모르겠다.
행복은 돈으로 살 수 없다고들 하든데 내 삶의 행복은 대체적으로 돈이 있어야지만 비로소 완성되더라. 7년 전 실직 후 2년 전까지 피고름 나는 생고를 겪으며 처절하게 깨달았다. 사랑만으로는 의식주를 결코 해결할 수 없고 마음 하나만으로는 어울리고 설 자리가 그리 많지 않다는 사실을. 결국 이놈의 사회에서는 그놈의 돈이라는 것이 대부분을 결정짓고 완성시키는 결정타라는 것을.
비단 나뿐일까. 형제지간도 돈 있는 형제끼리 더 자주 만나고 우애가 좋다고들 한다. 친구도 돈이 없으면 마음 편히 만나지지 않고 사랑도 부족한 물질 앞에선 언제나 목이 말라 가슴 아픈 이별을 맞이하기도 한다. 건강도 지키려면 돈이 있어야 하고 가정의 평화도 결국 그 돈에 의해 좌지우지되며, 비즈니스도 돈이 있어야지만 화끈하게 맺고 거침없이 파기할 수 있다.
물론 생과 함께 이미 정해진 죽음은 절대 피할 수 없는 수순이고 자연의 순리이다. 실체 없는 마음 또한 돈으로도 결코 움켜쥘 수 없다. 풍족하면서도 외롭다 말하고 허하다 느끼는 이들은 그런 이유 때문이겠지. 풍요 속의 빈곤 같은. 다 가져도 가질 수 없는 게 보이지 않는 사람 마음이니까.
"엄마! 이거 생일 선물이랑 크리스마스 선물로 하자. 돈 너무 썼다!"
어차피 침구는 사야 한다. 이사 올 때 다 버려버려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