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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자 Jun 07. 2023

나만의 오마 라우하 찾기

[챕터] 어쩌면 당신의 생각

우리에게는 매일의 오마 라우하(oma_rauha)가 있습니다. 너무 평범해서 미처 알아채지 못할 수도 있고 너무 힘들고 지친 나머지 양에 차지 않아 모른 척 할 수도 있어요. 괜찮아요. 그럴 수 있어요. 그렇다고 있던 순간들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 오지 않을 건 더더욱 아니니까요. 다만, 남에게서가 아닌 당신에게 있는 당신만의 오마 라우하를 빨리 발견하길 바랄 뿐이에요.




카드 대금 청구서를 받을 때마다 이제는 정말 그만 써야지, 안 사야지 하는데도 카페만 들어갔다 하면 지름신이 강림하고, 평소에는 아무렇지 않다가도 카페에 글만 쓰고 나면 기분이 상한다는 이가 있다.


"카페를 끊어요."

"그럼 무슨 재미로 살아요?"

"누굴 위한 재민데요?"

"당연, 저죠."

"그런데 왜 기분이 상해요?"

"나한테만 댓글이 안 달리니깐요."

"그럼 글을 쓰지 말아버려요."


오래전 "왜 나한테는 좋아요도 안 누르고 댓글도 안 다냐"며 일면식도 없는 이들이 대다수인 SNS 마당에 화를 냈던 친구도 생각나고, 나도 고민녀와 비슷한 경험이 있어서 웃음이 났다.


손가락을 꼽아보니 햇수로 7년 전쯤인 것 같다. 월급쟁이에서 프리랜서 강사로 전향하며 공방을 오픈했던 시기가.


당시 가입했던 홈 카페 커뮤니티가 있었는데 글에 따라 댓글 수가 천지 차이일 정도로 친목이 두텁게 다져진 카페였다. 좋게 보면 정도 많고 사람 좋은 냄새가 나는 곳일 테지만, 달리 보면 속된 말로 지들끼리만 노는 친목질하는 카페였다. 그러다 보니 회원 간의 친목과시 행위로 소외, 위화감이 든다는 불만 글이 올라온 적이 있었다. 그 글은 안녕했을까. 역시 예상했던 대로다. 동의한다는 이들보다 더 많이 적극적으로 활동하면 될 일이라며 비판하는 이들과 그 비판을 대댓글로 찬동하며 친목을 더욱 강화했던 이들이 대다수였고 해당 글은 원글자와 함께 장렬히 사라졌다.


나 또한 그런 소외감에서 예외는 아니었기에 안다박사들이 출현하는 질문 글 외에는 일상 글은 거의 올리지 않았다. 내 글에 주루룩한 댓글들이 달리기 시작했던 때는 "나 이런 거 샀어요~ / 이 커피 좋아요~ / 구매 동참~" 등의 누가 시키지도 않은 돈이라는 걸 쓰면서부터였던 걸로 기억한다.


커피는 콩 맛이라며 새까만 아메리카노, 에스프레소만 고집했었는데 카페에 들락거리다 보니 밀크폼이 잔뜩 올라간 라떼를 만들고 전문점에서나 맛볼 수 있는 아인슈페너, 아포가토, 카푸치노 같은 것도 손쉽게 만들게 되면서 입맛도 조금은 유연해졌다. 집에서도 이런 레시피가 가능하다는 게 신세계였다. 오늘은 어떤 커피를 어떤 컵에 어떻게 마실지 고민하는 재미까지 더해져 커피맛이 한층 더 업 되는 기분이었다. 그제야 나도 남들에게 다 있다는 소확행이란 녀석을 찾았다 싶었고, 며칠이 지난 글까지 찾아와 안부를 묻는 댓글들을 보며 이게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소통과 친목질로 극명히 나뉜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어쨌거나 그렇게 소통하는 이들이 늘어날수록 커피 마시는 그 시간이 혼자여도 둘인 듯, 여럿인 듯 즐거웠다. 어느 날의 카드 대금과 맞딱뜨리기 전까지는. '미쳤구나' 더 이상 상·하부장에 들어갈 자리가 없어 베란다에 박스채 쌓여있는 저것들은 누굴 위해, 무엇 때문에 사들인 걸까. 정도를 벗어난 이런 씀씀이가 과연 소확행일 수 있을까.


그즈음 세계테마기행이라는 TV 프로그램에서 핀란드인을 보며 신선한 감명을 받았다. 그들은 고립된 자연 속 오두막 같은 소박한 별장에서 불 지펴진 사우나와 맥주 한 캔만 있으면 그 순간 '오마 라우하'의 시간이 된다고 했다.


오마 라우하(oma_rauha): '내 안에 평화, 나만의 행복'이라는 뜻의 핀란드어로 핀란드인들이 소중히 여기는 가치


화려하게 꾸리지 않아도 걸쭉하게 차리지 않아도 온몸의 노곤함이 스르르 녹여진다면 그곳, 그 시간이 진정한 휴식이고 오마 라우하인 것이다. 그러고 보니 내게도 그런 시·공간이 있더라. 이른 새벽 잠잠하던 샐녘 하늘이 조양빛으로 서서히 밝아지는 풍경을 관전하고 있을 때. 두 눈 꼬옥 감고 온몸의 힘을 쫘악 뺀 채로 이마가 뜨거워지기까지 햇살 드는 거실 창 앞에 가만히 드러누워 있을 때. 분주한 일과 중에도 새까만 아메리카노 한 잔만큼은 꼭 챙겨 마실 때. 주방 정리를 끝으로 잠자리에 들기 전 오늘은 별이 몇 갠가, 달은 어디에 있나 찾아보며 고요한 밤하늘을 만끽하고 있을 때 "아 좋다"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무엇보다 우리 쁨이의 쉼 없는 재잘거림과 웃음소리는 나를 다시금 굳세게 하고 행복한 내일을 만드는 원동력이 된다.


커뮤니티를 끊고 나서 깨달았다. 내가 돈을 주고 샀던 건 상품이기 전에 댓글이었다는 것을. 소통이라 말하고 소확행이라 일컬었지만, 실상은 남의 것을 따라 하고 남의 행복을 좆고 있었다는 사실을.


이제는 글을 쓰기 위해 돈을 쓰지 않는다. 댓글에 연연할 게시글이 없으니 상할 마음도 없다. 그렇다고 그때의 소비를 후회만 하는 것은 아니다. 경험 없는 배움은 없다고 생각하니까. 사실 그때는 살기 위한 발악이었고 와중에 일탈이었다.


지금은 내 말이 고깝게만 들리겠지만, 그녀도 조만간 그랬으면 좋겠다.




오늘 나의 오마 라우하(oma_rauha)는 커피 한 잔과 함께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이다. 오늘 당신의 오마 라우하(oma_rauha)는 무엇인가요?



" What is your oma_rauh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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