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은 나 먼저 챙기고 나부터 괜찮아지자. 나 또한 타인처럼 실수할 수 있고 실패할 수 있고 완벽할 수 없는 사람이기에 남에게만큼 나에게도 공평하게 너그러워야 타인에게 베푼 내 심성에 뒤끝이 없고 서운함과 억울함도 없어, 나를 좀 더 평안하게 지켜낼 수 있을 테니까.
브런치 작가가 된 후 어떤 매거진으로 첫 장을 열까 고민하며 글 발행을 미뤄 왔다. 마음 같아서는 노트북에 저장된 무수한 글들을 매거진 없이 그냥 막 뿜어내고 싶었지만, 처음부터 가닥을 제대로 잡아야 의도에 맞는 글을 차곡차곡 발행할 수 있을 것 같다는 판단에서였다.
이제 글은 분류가 됐다. 인간관계에서부터 직장인의 이야기, 사무치게 그리운 우리 엄마 순남이 이야기, 내 생애 유일무이한 단짝 우리 쁨이와의 달콤 살벌한 이야기, 장래희망은 아니었지만 내가 저지른 선택의 대한 엄빠의 무게를 양어깨에 짊어진 편부모의 애환과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 좀 써달라던 어떤 이들의 여러 사연들까지.
사실 매거진 제목은 나중에 바뀔 확률이 높기 때문에 그렇게까지 고민할 거리도 아니었지만, 대충이라는 걸 허용하지 못하는 이놈의 성격은 종종 피곤함을 자주 자처하는 편이다. 두통약과 멀어지려면 반드시 고쳐야 할 성격인 걸 알면서도 잘 안될 때가 있어 미치겠다.
드디어 오늘 새벽 괜찮다 싶은 매거진 가제들이 언제나처럼 수면 중에 떠올랐다. 한 글자, 한 글자 보고 또 보고, 보고 또 보고, 여러 여러 여러 번 보고 확인한 후 설레는 마음으로 첫 매거진을 만들었다. 비몽사몽이었지만 첫 글 발행까지 모든 것이 완벽! 할 뻔'했다.
오 마이 갓. 이게 뭐야? 눈이 네 개나 되면서 매거진 주소를 이렇게 만들어 놨다고? 왜 그르냐, 증말. 어이없다, 어이없엇. 하아...! 언제든 없어져도 이상할 것 하나 없는 주소였지만 첫 매거진인 만큼 의미 부여를 했던 주소였기에 꼼꼼하게 확인하지 못했던 나 자신이 한심해 오전 내내 기분은 나아지지 않았다. 타인의 일이었다면 그럴 땐 잠시 쉬어가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라며 다정하게 위로했을 게 분명하면서.
슬슬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했고 한 알로 끝내기 위해 두통약을 미리 집어 들던 중 "그렇지!" 매거진은 30개까지 만들 수 있다는 팝업창이 번뜩 떠올랐다. 그제야 반나절 지난 다 식은 커피를 속 편히 마셨다.
한 번은 새로 산 검은색 옷에 붙어있던 하얀 태그를 발견하지 못하고 세탁기에 돌려버린 바람에 난리 아닌 난리를 치렀던 적이 있는데 비싼 안경은 폼으로 사끼는 거냐며 버러버럭 내가 내게 타박했다. 또 언젠가는 오랜만에 샀던 값비싼 커피잔을 깨 먹고는 정신머리를 얻다 두고 설거지한 것이냐며 티비에 한 눈 팔았던 나를 울먹이며 타박했다.
올 초엔 오랜 글럼프를 극복하고 A4지 10장 분량의 글을 폭풍적으로 쓰고 난 뒤 저장할까요?라고 묻는 팝업창에서 예를 바라보며 신나게 '아니오'를 눌러버린 탓에 부품이 없어 고칠 수도 없다는 단종된 노트북과 사별까지 할 뻔했다. 아악!! 이런 미친... 이놈의 손모가지... 니 눈 썩었... 야아악!!!!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역시 옛날 게 튼튼하긴 한 것 같다. 고장나고 부서진 게 한 개도 없으니까.
곰곰이 생각해 봤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괜찮다고, 그럴 수 있다고, 신도 아닌 사람이 어떻게 완벽할 수만 있겠느냐며 마음부터 토닥토닥 둥글고 둥글게 세상 따듯하게 챙겨주면서 왜 나 자신에게만은 그렇게도 네모나고 모질게 대하는 걸까.
어제의 일, 지난주의 일, 생각나는 지난날들을 가만히 떠올려 봤다. 나는 사실 모두에게 엄격했더라. 그저 내가 아닌 타인이었기에 대놓고 질책하며 타박할 수 없어서 한두 단 접고 생각하고 한두 발짝 뒤에서 들여다봤을 뿐. 나 자신에게도 용인할 수 없는 것들에는 타인에게도 그 속내는 여지없었다. 그렇지 않고서는 '나 같으면, 나라면...'이라는 다른 생각을 뒤돌아서할 리 없고, 지금까지 박혀있는 응어리도 없을 테니까.
문득 남을 대할 때는 봄바람처럼 부드럽게 대하고 자신을 대할 때는 가을 서리처럼 엄격해야 한다는 춘풍추상(春風秋霜)이라는 사자성어가 떠오른다. 대인춘풍(待人春風) 지기추상(持己秋霜)을 줄인 말로 중국 명나라 말기 때의 문인 홍자성이 쓴 명언집 채근담(菜根譚)에 나오는 말이다. 타인을 대할 때의 역지사지만큼 나를 다스릴 때 자주 되뇌였던 말인데 너무 되뇌었나 보다. 춘풍은 커녕 추풍도 아닌 동풍으로 나를 대했던 듯 싶은 게.
이제는 그러지 말아야겠다. 나 자신도 타인과 똑같은 봄바람으로 대해줘야겠다. 백 퍼센트 공감하는 말은 아니지만, 사랑도 받아본 사람만이 줄 줄 안다는 말처럼 나 자신부터 제대로 보듬어줘야 다른 사람도 온전히 따듯하게 대할 수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