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쓰는 스텔라 Dec 29. 2023

감자예찬

“택배 왔습니다. 무거워서 안쪽에 놔드릴게요.”

“시킨 게 없는 데 뭐가 왔지? 아니, 누가 감자를 한 상자나 보냈어? 보낸 사람이 '꿈틀이(유치하지만 전 남자친구의 별명이다)'? 얘, 니 남자친구가 왜 갑자기 감자를 보냈다니?”



 단언컨대, 가장 최고의 식재료는 감자다. 쪄서도 먹고, 튀겨서도 먹고. 삶아서도, 구워서도, 볶아서도 어떻게 먹어도 맛있는 것이 감자다. 주위 사람들도 나의 감자 사랑을 익히 알고 있기 때문에 크게 다툰 후 남자 친구가 꽃 대신 감자를 화해의 선물로 보낸 적도 있었다. 고작 한 봉지였으면 쉽게 안 넘어갔을 텐데 한 상자를 보낸 현명함 덕분에 기꺼이 그의 죄를 사하여 주었다.

 아이들도 엄마의 취향을 잘 알기에 함께 햄버거를 먹으러 가면 항상 감자튀김은 나에게 양보해 준다. 주방 서랍 한쪽에는 오로지 감자만을 위해 해외에서 공수한 스위스산 감자칼과 매셔까지 있으니 자타공인 ‘감자홀릭’이라 할 수 있다.


 2020년 온 나라가 한창 역병으로 앓고 있을 때, 강원도에서 농민 돕기의 일환으로 파격적인 가격에 감자를 판매했었다. 10kg에 단돈 5천 원! 일명 '포켓팅'이라 불리며 공중파 뉴스에도 나왔고 판매 사이트 서버도 여러 번 마비시켰더랬다. 선착순에 강한 나는 감자에 대한 집념까지 불태워 불과 두 번 만에 승리의 감자를 거머쥘 수 있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감자 10kg가 그렇게나 많을 줄이야. 구매 전 미처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동네 맘카페에 '맛있는 감자 요리를 추천해 주세요! 최고의 레시피를 알려주신 분께는 감자를 선물로 드릴게요.' 글을 올리자마자, 나만큼이나 감자에 진심인 요리 고수들의 댓글이 줄지어 달리기 시작했다.


 찐 감자, 감자전, 감자볶음, 감자조림, 감자튀김, 버터구이 감자, 감자 칩, 감자 국, 감자 샐러드, 감자 수제비, 웨지감자 구이, 감자 고로케처럼 내가 좋아하고 자주 해먹고 흔한 요리들부터 뢰스티, 감자 옹심이, 감자 짜글이, 감자 가니쉬, 아코디언 감자, 회오리 감자, 감자 수프, 감자 뇨끼와 같이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거나 새로운 요리들도 있었다.

그 때 내가 뽑은 1등 레시피 / 착즙기 브랜드명은 살짝 가림

 감자는 미역국에 넣어도 맛있고, 찌개에 넣어도 기가 막힌다. 카레에는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무조건 넣어야 한다. 생선 조림 밑에 깔아주면 메인 재료를 훌륭히 뒷받침해준다. 포테이토 피자는 어느 피자집을 가든 메뉴판에서 ‘Best'를 달고 있다. 거기에 더하여 피자 도우를 밀가루 반죽 대신 감자로 하면 숟가락까지 핥아먹게 만드는 마성의 떠먹는 피자가 된다. 닭볶음탕에도, 찜닭에도 감자가 없으면 서운하다(물론 이 음식들을 먹을 때에도 나의 첫 젓가락질은 감자로 향한다). 아직 시도해보진 못했지만, 심지어 백숙에도 감자를 넣으면 환상적이라는 제보까지 있었으니!

 한식과 양식을 넘나들며 모든 음식과 웬만하면 궁합이 맞는 감자는 ‘착하고 정다운 재료’다. 감자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도 저 수많은 요리 중에 분명 하나쯤은 잘 먹는 게 있을 것이다. 만약 그런데도 감자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면 나에게 감자를 던져도 좋다! 내 기꺼이 온몸으로 감자를 맞아 주리라!



 6월~11월이 제철인 감자에는 아는 사람만 아는 비밀이 있다. 유명한 감자칩의 포장지 문구가 보통 때는 '100% 생감자'인데 딱 요 시기에만 '100% 국산 햇감자' 타이틀을 달고 나온다. 역시 제철 감자의 구수하고 달큰한 맛은 공장의 생산 라인도 바꿀 만큼 대단한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오늘 귀갓길에 다들 감자 한 봉지, 아니면 감자칩이라도 한 봉지(이왕이면 봉지 문구에 유의해서 골라주시길) 사들고 가서 가족과 함께 감자 예찬을 해보는 건 어떠하신지? 어떤 요리를 선택해도 감자는 결코 당신의 입맛을 배신하지 않을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인생 여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