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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스텔라 Jul 03. 2024

프로혼밥러의 식탁

이 글을 읽기 전, 유머게시판에서 가져온 이 이미지부터 보고 넘어가자.

글을 읽는 독자님들은 어디까지 해봤고, 어디까지 가능하실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모든 레벨이 가능하고, 실제로도 다 해봤다. 사실 나는 밥에 진심이기 때문에 끼니를 대충 때우는 것을 용납하지 못한다. 밥을 먹을 물리적 시간이 없을 때를 제외하면 혼자라고 식사를 안 하거나 먹고 싶은 음식을 안 먹지 않는다.


고등학생 때까지는 사실상 혼자 먹을 기회가 거의 없다. 여고생은 일단 2인 1조가 기본이기 때문에(심지어 화장실도 혼자 안 간다), 집이나 학교 외의 장소에서 무언가를 혼자 먹을 일이 거의 없다. 심지어 나는 학원도 안 다녔으니 더더욱 그랬다.


그래서 나의 혼밥의 시작은 대학에 들어가서부터다.

사촌언니, 오빠가 대학교는 매일 안 가도 된다, 가급적이면 4일만 가라고만 알려줬지 동선을 고려해서 시간표를 짜야한다는 말까지는 해주지 않았다. 전공 필수랑 듣고 싶은 교양들을 마구잡이로 골라 5일분의 학점을 4일분의 시간표에 몰아넣었더니 이동 시간이 부족했다. 밥을 먹을 시간이 없으니 어쩔 수 없이 편의점에서 삼각김밥이나 컵라면으로 대충 때웠다.(Lv.1 complete) 혼자 먹는 거라 주위 시선을 신경 쓰기엔 나는 먹는 것을 너무나 좋아했고, 수업은 1교시부터 9교시까지 꽉 채워져 있었기 때문에 허기를 참기가 어려웠다. 갑자기 수업이 조금 일찍 끝나거나 휴강이라도 되면 학생식당, 패스트푸드, 분식집을 포함한 학교 근처 식당(Lv.2~4 complete)을 가기도 했다. ‘아싸’라면 ‘아싸’였겠지만 혼자 먹을 수밖에 없던 구차한 이유는 내가 친구들과는 다른 길을 갔기 때문이다. 아무도 신청하지 않는 과를 ‘그냥 해보고 싶어서’란 이유로 복수전공을 했기 때문에 내 시간표는 여러 단과대를 넘나들며 만들어졌다. 아무튼 그 덕분에 대학에서는 학위 2개와 혼밥 레벨 4까지 완성하였다.


Lv.5는 살기 위해 먹어야 했던 신입사원 시절에 완료했다. 조기출근과 야근과 출장을 밥 먹는 것보다 더 자주 했기 때문에 시간이 나면 혼자건 둘이건, 어떤 음식이건 상관없이 뭐라도 먹었어야 했다. 한번 끼니를 놓치면 출근해서 12시간 이상을 못 먹은 적도 솔찮게 있었다. 이렇게 단식과 폭식을 번갈아가며 하는 바람에 건강도 많이 상했다.


Lv.6 ‘유명’ 맛집의 경우 사람이 많기 때문에 혼자 온 사람은 식당에서 안 받아줘서 퇴짜 맞아본 경험이 있다. 나는 밥이 먹고 싶은 거지 눈칫밥이 먹고 싶은 건 아니기 때문에 ‘혼밥’을 할 때 눈치 챙기는 건 어쩔 수 없이 필수다. 실제로 엄청나게 유명한 맛집이 아니었고 혼밥이 가능한 걸 확인하고 주문했는데도 불구하고, 식사 도중 혼자 온 다른 사람과 강제 합석을 당한 경우도 있었다. 그냥 ‘일반’ 맛집은 1인 식사도 가능하고(1인은 안 받는 식당이 생각보다 많다) 너무 혼잡한 시간만 아니고서야 당연히 먹을 수 있다.


Lv.7도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뷔페형 패밀리 레스토랑이 아니고서는 Bar 자리를 보유한 곳이 많다. 거기서 혼자 먹으면 서버들이 더 잘 챙겨주고, 서비스나 할인 쿠폰도 종종 준다. 나는 ‘파워 E형’이라 서버랑 얘기하면서 먹는 것을 전혀 꺼리지 않는다. 오히려 그때 얻은 맛있게 먹는 팁이나 할인쿠폰을 다른 날에 써먹을 수 있어서 유용한 경험이었다.


Lv.8 회는 남이 사주는 것도 잘 먹지 않는 메뉴라 내 돈 내고서는 절대 먹지 않으므로 패스하고, 고깃집은 혼자도 식사 가능한 곳이면 오히려 더 좋다. 가족이나 절친과 가지 않는 이상 누구는 굽고, 누구는 먹느냐의 논쟁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는데 혼자 여유롭게 내 페이스대로 구워 가면서 먹으면 좋다. 나는 바삭한 식감을 선호해서 고기도 바짝 익혀 먹는 것을 좋아하는데 다른 사람들과 가면 내가 바삭하게 구우려고 기다리던 것을 “다 익었네?” 하면서 홀랑 집어 먹는 경우가 생긴다. 혼자 먹으면 그럴 일이 없다. 다만 아쉬운 점은 고기 먹고 후식으로 냉면까지 먹기는 좀 벅차다는 점!


이게 왜 만렙인지 모르겠지만 술집도 그다지 어렵지 않다. 술을 혼자 먹으면 아픈 사랑에 실패한 비련의 여주인공 같이 볼 것 같지만 전혀 아니다. 포장마차 같은 곳은 혼자 먹는 사람이 많고, 일반 술집도 종종 있다. 역시나 Bar자리로 운영하는 술집은 오히려 혼자 오는 사람들이 더 많다. 혼자 술 마실 때 불편한 점은 자작해야 한다는 사실뿐! 이것은 생맥주나 하이볼 같이 잔으로 나오는 술을 마시면 해결할 수 있다.


번외로 나의 이십여 년 혼밥 역사 중에 가장 힘들었던 혼밥 장소는 다름 아닌 결혼식장이다. 결혼식에는 보통 차려입고 가고, 좋은 가방을 들고 가는데 대부분의 결혼식장은 둥근 테이블로 배치된 뷔페식이 많다. 내 자리라고 표시하기 위해 가방을 테이블에 올려놓고 가자니 비싼 가방을 분실하거나 음식이 묻을까 염려되고, 가방을 들고 음식을 담기에는 손의 자유를 제한하여 불편하다. 사정상 딱 두 번 결혼식장에 혼자 간 적이 있는데 두 번 다 혼밥 하기 너무나 힘들었다. 아마 저 이미지를 만든 사람이 MZ세대 거나 결혼식을 많이 경험해보지 못해서 빠진 게 아닐까 싶다. 참고로 장례식장은 괜찮다. 혼자 온 사람은 상주가 더 잘 챙겨준다.



글을 쓰면서 생각해 보니 혼밥의 가능 여부는 ‘식탐’의 차이인 것 같다. 식탐이 혼자라는 뻘쭘함 정도는 가볍게 뛰어넘을 수 있다면 언제, 어디서, 무엇을 먹든 다 가능한 게 아니겠는가! 그래서 내가 항상 다이어트에 실패하고, 혼밥 마스터가 된 게 분명하다. 이상 7월부터는 정말로 다이어트를 하려고 결심한 ‘프로혼밥러’ 스텔라의 혼밥 기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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