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떡해!!”
나는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버스는 속절없이 떠나가고 있었다. 반사적으로 버스의 번호판을 외웠다.
“아저씨, 저 버스 쫓아가 주세요!”
버스를 잡아야만 했다. 나를 내려두고 제 갈 길 가는 버스에는 내 노트북이 들어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는 취업 준비를 위한 자기소개서를 비롯한 내 자료도 잔뜩 들어있었다.
벌써 네 번째였다 노트북을 잃어버린 것은. 세 번째까지는 운이 좋아서 다시 찾았지만 이번에는 찾을 수 있을지 없을지 알 수 없었다. 카페에 놓고 온 것도 아니고 공중 화장실에 놓고 온 것도 아닌, 버스 뒷좌석에 노트북을 내려놓고 오다니. 이 바보! 아무리 정신없는 재 취준생이라도 할 일이 있고 안 할 일이 있지, 금쪽같은 노트북을 버스에 두고 내리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정신이 나가도 한참 나가 있었다. 하지만 버스는 이미 뒤늦게 올라탄 택시로는 잡을 수 없을 만큼 멀어져 있었다. 나는 버스가 속한 운송회사에 전화를 걸어 차고지를 물었고, 몇 번 버스에 노트북을 놓고 내렸으니 차고지에 버스가 들어오면 노트북 찾아서 보관 부탁드린다고 했다, 내가 지금 거기로 가고 있다고. 택시는 방향을 바꾸어 썰렁한 차고지에 나를 내려놓았다.
밤 11시가 넘은 시간, 덩치 큰 버스 몇 대와 에드워드 호퍼 그림에 나올법한, 아니 그보다는 약한 조명을 켠 채 서 있는 낮은 건물을 앞에 두고 잠시 어리둥절했다. 겨우 정신을 차리고 운송회사 사무실에 들어가서 ㅁㅁ 버스가 들어왔냐고 물었다.
"그 버스 여기에 안 들어오는데, 이 근처에 차고지가 두 군데가 있어요, 그 버스는 여기 아니고 XX 차고지로 들어가요."
막막했다. 나는 이 차고지에도 생전 처음 왔다. 택시가 내려주는 대로 내렸을 뿐이고 여기가 어딘지 알 수 없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려면 어느 길로 나가야 하는지도 몰랐다. 막막함과 두려움과 서러움이 밀려왔다. 대체 이게 뭐람? 그 자리에 서서 큰 소리로 엉엉 울었다. 그 순간 갑자기 오토바이 한 대가 내 앞에 서서 멈췄다.
"여기서 뭐해요? 왜 울고 있어요?"
한 아주머니가 오토바이를 타고 계셨는데 나를 보고 이렇게 물으셨다. 나는 여전히 훌쩍 거리며 대답했다.
"버스에 노트북을 놓고 내려서 그 버스가 들어오는 걸 기다리고 있는데 여기 차고지가 아니래요."
"아, 여기 차고지가 두 군데 있어요~ 다른 한 곳 어딘지 내가 아니까 데려다 줄게요, 타요!"
나는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니었음에도 한 번도 타보지 못한 오토바이를 탄다는 게 겁났다.
"저 근데… 오토바이는 무서운데요…"
"여기 대중교통 타러 나가기도 힘들어요, 시간도 늦었고~ 안전하게 갈 테니까 타요!"
그렇게 나는 생전 처음 보는 아주머니가 모는 오토바이를 타고 다른 차고지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4월의 어느 날 밤, 자정을 향해 가는 시각. 나는 오로지 노트북이 제 자리에 있을까 하는 생각만 하며 낯선 아주머니의 등에 찰싹 붙어 밤길을 달리고 있었다. 선선한 봄바람이 내 뺨과 머리카락을 스쳤지만 봄밤의 상큼한 기운 같은 건 음미할 수 없었다. 10분여를 달렸을까 오토바이는 다른 차고지에 정차했고, 다행히 먼저 들어온 버스 안에 고이 보관되어 있던 내 노트북을 다시 품에 안을 수 있었다. 이렇게 노트북이 소중하고 사랑스러웠던가! 나는 어화둥둥 노트북을 어르고 달래며 안도의 눈물을 흘렸다.
“이름이 뭐예요?”
“네? 조 00”이요.
“아아, 이름… 개명하면 좋겠어요.”
“네? 왜요?”
“지금 이름이 썩 좋진 않아요. 만약 방송을 하고 싶으면 지금 이름도 괜찮지만 그게 아니라면 개명해봐요. 비싼 작명소 갈 필요도 없어요.”
낯선 이에게 자비와 의리가 넘치던 아주머니는 한바탕의 노트북 소동이 끝난 후에도 나를 흔쾌히 집에까지 데려다주셨다. 이제는 오토바이를 타는 스릴에도 제법 익숙해졌지만 붕붕- 바람을 가르는 소리에 아주머니의 소리는 잘 들리지 않았다. 그럼에도 무언가 나에 대해 예견하는 듯한 말이 들리자 나는 귀를 쫑긋 세울 수밖에 없었다.
아주머니의 말씀인즉슨 이랬다. 지금 이름이 나에게 좋은 작용을 하진 않는다. 끝에 무슨 무슨 글자만 피해서 이름을 다시 지어라, 2년 후에 성공한다. 대신 그동안 남자 친구는 없다…(?) 그리고 건강은 관절 조심해라. 마지막으로, 내가 잘 될 사람이라 이런 이야기해 준다고 하셨다. 빙긋이 웃으시면서. 복채를 받고 싶지는 않지만 받지 않으면 안 되는 거라고 500원만 달라시는 아주머니께 당시 지갑에 들어있던 현금의 전부인 10,000원을 드렸다. 이리저리 겅중겅중 갈지자 행보를 보이고 있는 백수에게 희망찬 이야기를 전해주신 것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하는 마음을 담아서.
그리고 실제로 나는 그로부터 2년 정도 지난 후에 문득 개명을 했고, 갑자기 진로를 바꾸어 미술계에 취업했다. 정말 그 2년 동안 연애를 못했으며 관절은 원래 좋지 않다. (지금도 넘어져서 무릎이나 발목을 다치는 게 일이다.) 더 놀라운 사실은 얼마 전에 오랜만에 그 아주머니가 생각나서 연락을 드렸더니 1년 전에 이사 온, 지금 내가 살고 있는 동네의 이웃 주민이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