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잔의 산처럼 고요해지고 싶었어

나를 찾아 떠났던 나 홀로 런던 그림 여행

by 수인
세잔의 산처럼 고요해지고 싶었어

2015년 5월 석가탄신일

나는 인천공항 안에 있는 카페에 앉아 페이스북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짐짓 쿨한 척 "첫 나 홀로 해외여행! 잘 다녀올게요!" 이렇게 포스팅을 올렸으나 사실 난 겁을 잔뜩 집어먹고 있었다.


어릴 때부터 겁이 많았던 나는 혼자서는 국내여행 한 번 해본 적이 없었다. 어쩌다 늦은 밤에 혼자 집에 있게 되면 그조차도 무서워했다. 그런 내가 홀로 이역만리 해외여행이라니. 그것도 비행기로 편도 10시간이 걸리는 런던으로 가다니. 제정신이라면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 당시 나는 확실히 제정신이 아니긴 했다. 4년 차에 접어든 회사 생활은 도무지 나와 맞지 않았고, 사람들이 이리저리 나를 찾아댄 탓에 번아웃이 심하게 와 있었다. 이런 상태에서 내 도피처는 그림과 미술관이었다. 나는 주말이건 회사 점심시간이건 틈만 나면 미술관엘 다녔고 미술 관련 책을 보기도 했다. 그때 우연히 집어 든 책이 전원경 작가의 <런던 미술관 산책>이었다. 책을 읽으며 라파엘전파의 작품에 매료되었고, 갑자기 이 화파의 그림을 보러 런던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책은 하나의 작은 불씨였는지도 모르겠다. 어디든 떠나고 싶은 마음을 어쩌지 못해 절절매고 있을 때, 하지만 그 '어디'를 정하지 못해 헤매고 있을 때 운명처럼 내 앞에 나타나 '그 어디'를 정해준 역할을 그 책이 해준 것일지도 모르겠다. 어찌 되었건 나는 이 책을 운명의 나침반으로 삼아 런던으로 떠났다.


비행시간 내내 웅크려 있던 나는 두려움 반 설렘 반으로 히드로 공항에 내렸다. 나에게 런던은 어떤 모습일까? 내 궁금함은 이내 초록빛 기쁨으로 바뀌었다. 5월의 눈부신 햇살 아래 세상이 초록빛으로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숙소로 가는 차 안에서 처음 보는 런던의 광경을 눈에 담고 또 담았다. 그렇게 초록빛으로 다가온 런던에서 나는 두고두고 기억될 두 가지 경험을 했다. 하나는 세잔의 작품을 본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꿈 찾아 런던에 온 사람을 만난 것이었다.


런던에 도착해서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했다. 웨스트엔드에서 뮤지컬을 보고 콜롬비아 로드 플라워 마켓에 가서 마치 현지인처럼 평화로운 주말을 만끽했다. 테이트 브리튼, 내셔널 갤러리, 코톨드 갤러리에서 그림을 보며 멍 때리는 소기의 여행 목적도 달성했다. 나는 라파엘전파의 작품을 보러 간 것이었고 테이트 브리튼에서 드디어 그 그림들을 봤지만 그보다 더 내 마음에 남는 작품이 있었으니, 바로 폴 세잔의 <커다란 소나무와 생트 빅투아르 산>이었다. 평일 비 오는 오후였기 때문이었는지 미술관 안에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나는 덕분에 한적한 분위기 속에서 이 그림 앞에 앉아 멍하니 그림만 20여 분 정도 바라볼 수 있는 행운을 누렸다. 그토록 고요하고 그토록 안정적인 느낌은 전에 느낄 수 없는 것이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하늘이 흐려졌다가 맑아졌다가 변덕을 부리는 바깥 날씨가 무색하게 세잔의 산은 홀로 고요하게 서 있었다. 전방을 가로지르는 커다란 소나무도 그 고요함을 방해하지 못했다. 면면이 분할된 색들과 불안정해 보이는 구도 속에서 오히려 생트 빅투아르 산의 안정적인 위용이 더 돋보였다. 그때 나는 알았을까, 흔들리던 내 진자의 추를 잡아 세우기 위해 내가 미술계에 들어서게 될 것이라는 것을.


폴 세잔, <커다란 소나무와 생트 빅투아르 산 Montagne Sainte-Victoire with Large Pine>, 1885~1887년, 캔버스에 유채, 코톨드 미술관 소장


나도 모르는 사이, 나는 접점을 향해 가고 있었다


이렇게 혼자 런던 이곳저곳을 쏘다니다가 해가 어둑어둑해지면 숙소로 돌아갔다. 나는 중심부에서는 다소 멀리 있는 한 한인 민박에 머물렀는데 그곳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밤이면 식탁에 모여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고, 나는 주로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시간을 보냈다. 그중 한 사람의 이야기가 굉장히 흥미로웠다. 전직 승무원이었다는 그 사람은 원래 플로리스트가 되고 싶었는데 부모님이 반대하셔서 어쩔 수 없이 착실히 회사를 다니며 돈을 모았다고 했다. 그리고 꿈을 이루기 위해 과감하게 퇴사를 하고 런던에 와서 꽃을 배우고 있다고 했다. 런던 길거리에서 꽃을 무료로 나눠주는 행사도 열었다고 했는데 나는 그 열정이 참 부러웠고 그 사람이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아무런 열정도 의미도 없이 회사를 다니는 바람에 원래 꿈이 무엇이었는지,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지도 못하는 상태가 되어버린 나에게 꿈 찾아 퇴사하고 런던에 와 있다는 이야기는 거의 판타지처럼 들렸다. 나도 언젠가 내 일을 찾아 이렇게 열정적으로 살고 싶다는 생각을 조금은 했던 것 같다. 그러나 내가 그런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할 수 없었다.


나를 찾고 싶어서 떠났던 첫 나 홀로 여행에서 결국 나는 나를 찾지 못했다. 내가 느낀 것이라고는 하늘과 템스 강을 바라본 채 워털루 브리지를 거닐며 '아, 이러려고 돈 버는구나' 하며 처음으로 내가 돈을 왜 버는지 깨달았다는 것, 세잔의 산처럼 고요해지길 바랐다는 것, 그리고 꿈을 좇아 사는 사람은 참 멋있구나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첫 여행을 시작으로 나는 그림을 보러 혼자 해외여행 가는 게 더 이상 무섭지 않아 졌다. 보고 싶은 게 있으면 시간을 내서, 노력을 들여서 혼자라도 가는 게 당연해졌고 그러면서 미술도 점점 내 인생의 일부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렇게 혼자 그림여행을 했던 것은 비전공자로서 미술계에 들어오는 데 아주 큰 역할을 했다. 미술계 일은 페이나 근무 여건 등 제반 조건을 따졌을 때 열정 없이는 지속하기가 힘든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스펙이나 경력도 물론 중요하지만 이 사람이 미술계 일꾼으로서 충분히 열정을 다 할 수 있는가도 고려 요건이 된다. 물론 이건 지극히 개인적인 내 생각일 수도 있다. 하지만 두 군데의 미술관에서 나를 직접 뽑으신 상사 분들이 나에게 공통적으로 했던 말도 내가 열정이 있어서 일을 잘 해낼 것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이었으니 아주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그로부터 1년 반 후 나는 나와의 접점을 찾기 위해 퇴사를 하고, 또 그로부터 1년이 지난 후에 미술과의 새로운 접점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 길을 찾고 싶다는 단순하고도 강렬한 열망은 그렇게 나도 모르는 사이 우연의 형태로 접점을 마련해 두고 있었다. 나는 눈을 감고 더듬더듬 길을 걷고 있었지만 내 마음속 등불은 나와의 접점을 향해 다양한 형태로 나를 안내하고 있었다. 진자는 계속 흔들리고 있었지만 내 마음속 불빛만큼은 그 흔들림을 비추어 내면서 나를 천천히 이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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