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의 의미

by 수인

“00 씨, 회사에서 그렇게 눈 뜨고 쳐다보지 말아요.”

로펌에 들어가기 전에 일했던 첫 직장에서 선배가 나를 보며 한 말이다. 대체 내가 눈을 어떻게 떴단 말인가.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어서 회사 동기에게 이야기했더니 동기는 나 대신 시원하게 욕을 해주었다. “본인이나 눈 그렇게 뜨고 다니지 말라고 해.”


그때는 몰랐다. 살아간다는 것, 특히 사회에서는 내 시선조차 내가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을. 세월이 한참 흐른 지금 생각해 보건대 내가 아마도 <슈렉>에 나오는 고양이 같은 눈빛으로 쳐다봤던 것 같다. (물론 내가 귀엽다는 게 아니다. 그냥 그 당시만 해도 나는 순진했던 사회적 아기여서 그랬다는 것이다. 지금은 종종 ‘건들기만 해 봐!’ 하는 눈빛을 장착 중이니 내가 순진하고 영롱한 눈망울을 가졌다는 말이 아니라는 것을 이해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사회가 이렇게 무섭다.)


아마도 이런 모습이었을까, 모든 게 처음이라 서툴고 혼란스러웠던 나의 시선과 눈빛은 - 영화 <슈렉> 중


어디 그뿐이랴. 나는 내 시선도 통제하지 못했기에 당연히 남의 시선도 통제하지 못했다. 로펌에 근무하던 어느 날, 그날도 야근을 하기 위해 저녁식사를 하러 구내식당으로 내려갔다. 한쪽에 마련된 엘리베이터에 한 남자 변호사가 비스듬히 기대어 서 있었는데, 그는 나를 발견하고는 그 자세를 유지한 채 아래 위로 천천히 훑어보았다. 불쾌감에 휩싸였다. 마치 진열장 속에 놓인 물건을 탐색하는 듯한 그 눈빛과 태도에 서둘러 자리를 떴다. 나는 그 시선에 대항할 힘이 없었고, 자리를 피하는 것 밖에는 내가 할 수 있는 것도 없었다. 사회생활을 한다는 것은 이렇게 남의 시선을 오롯이 감내해야 하는 일이었던 것이다. 굳이 받을 필요가 없는 시선까지도.


나와 타인의 시선을 어쩌지 못했을 때 나는 종종 하늘을 보며 걸었다. 그럴 때면 막막함에 눈물이 차올랐고, 그 안에서 일말의 희망 섞인 구원을 바랐다. 땅을 보고 걸을 때는 좌절감에 고개를 들 수 없을 때였다. 날 누르는 강력한 힘에 고개는 푹 꺾였고, 일렁이는 마음속에서 길을 잃었다.


그즈음 나는 회사 근처에 있는 미술관과 소규모 갤러리들을 탐방하기 시작했다. 주말에 블록버스터 전시나 미술관의 기획 전시를 보러 다니기도 했지만, 나는 주중에도 점심시간에 약속을 잡지 않고 호젓한 골목길을 따라 전시장 다니는 것을 좋아했다. 일을 하면서 유난히 사람들에게 시달리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점심시간만이라도 혼자 보내면서 지친 내 마음에 휴식을 주고 싶었다.


평일 오후, 아무도 없는 전시장에서 나는 그림과 마주했다. 나와 작품만이 마주하는 순간, 그 틈에는 나와 작품 외에는 아무것도 들어올 수 없었다. 그 밀도 높은 순간이 아이러니하게도 내 숨통을 틔워주었다. 나를 바라보는 그림 속의 시선들은 불편하지 않았다. 어떨 때는 시선이 없었고 나의 시선만 존재했다. 그런 시선의 자유로움 속에서 어떤 해방감 같은 것을 느꼈다. 타인의 시선에 주눅 들지 않는 나의 시선. 언제나 하늘 혹은 땅만 바라보고 걸었던, 간혹 앞을 바라보고 걸을 땐 뚫어져라 앞을 쳐다보며 어떤 결의 같은 걸 다짐했던 의지에 불타는 시선이 아닌 자유롭게 거니는 그 시선 말이다.


시선의 자유로움 속에서 나는 외부로 향했던 시선을 비로소 내부로 돌릴 수 있는 준비를 하게 되었다. 그 이후로도 꽤 오랫동안 진정한 내부 시선을 가지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그 출발선상에는 놓이게 되었다. 작은 골목길에서 시작한 그림 여행은 해외로 이어져, 단순히 보고 싶은 작품이 런던의 한 미술관에 있다는 사실 하나에 불쑥 홀로 해외여행을 떠났다. 그리고 우연인 듯 필연인 듯 이어진 이 길을 따라 나를 찾기 위한 접점의 여행을 시작했다.


틈이 없는 그 순간, 오히려 숨통이 트였다. - 2015년 대림미술관의 <헨릭 빕스코브- 패션과 예술, 경계를 하무는 아티스트> 전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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