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일을 찾는 법_어망 던지기

by 수인

첫 회사에서는 일과 시간에 좋은 문구나 명언을 단체 쪽지로 보내주곤 했다. 보통은 업무가 바빠 그저 눈길 한번 쓱- 주고 넘기곤 했지만 그날은 예외였다.


“내가 계속할 수 있었던 유일한 이유는 내가 하는 일을 사랑했기 때문이라 확신합니다. 여러분도 사랑하는 일을 찾으셔야 합니다.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찾아야 하듯 일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 스티브 잡스


그때까지만 해도 일에 관해 딱히 생각을 해본 적은 없었다. 나는 회사원이 되고 싶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공부하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에 막연히 대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도 공부를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학구적인 스타일이었던 내가 사회 속으로 들어가 일을 한다는 게 사실 상상이 잘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러저러한 연유로 취업시장에 뛰어들게 되었고, 아무런 준비도 없이 덜컥 한 회사에 들어갔다.


아직 학생 티를 다 벗지도 않은 내가 소위 말해 십몇 년씩 회사 짬밥을 먹은 사람들과 같이 일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내 전공이나 적성과는 전혀 상관없는 업무가 주어졌고, 몇 개월 만에 갑자기 상급부서에 가서 가혹하리만치 많은 일을 떠맡았다. 옆자리 사수는 지킬 앤 하이드 실사판이었고, 선배라는 직위를 이용해 찝쩍대서 사람을 아주 곤란하게 만드는 사람도 있었다. 관리자로서 내가 관리해야 하는 사람들 중에는 내가 이제 갓 사회에 진입한 신입이라는 것과 여자라는 것을 우습게 보기도 했다. 이 모든 게 단계별로 차근차근 일어났으면 그나마 적응하기 덜 어려웠겠지만 알다시피 이리저리 섞여서 한꺼번에 내게 들이닥쳤다. 나는 도대체 이 상황에 어떻게 적응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고, 이런 무력함은 일에 대한 분노와 자괴감으로 이어졌다.


그런 내게 ‘사랑하는 일을 찾아야 한다’는 메시지는 너무도 신선했다. 아니, ‘사랑하는 일’이 이 세상에 존재할 것이라고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말이 주는 울림은 묵직하게 내 마음속으로 스며들었고, 이로부터 몇 년이 흐른 후 나도 ‘사랑하는 일’을 찾기 위한 길에 오르게 되었다.


내가 사랑하는 일을 찾는 방법은 크고 넓은 어망을 가능성의 푸른 바다 위에 촤르륵 펼쳐 놓는 것이었다. 그 푸른 바닷속에는 갖가지 나의 조각들이 흩어져 가라앉아 있었다. 열 살 무렵부터 이십 대 중반까지 오랜 시간 열망했던 ‘아나운서’라는 꿈, 어릴 때 가졌던 미술에 대한 관심, 타인의 성장을 돕는 일을 하고 싶다는 열망까지. 때로는 나조차도 알지 못했던 열정과 바람들이 들어 있었다. 나는 이를 어떻게 건져 올려야 할지 알 수 없어서 내가 할 수 있는 한 있는 힘껏, 멀리 꿈을 낚기 위한 그물을 던져보기로 했다. 그렇게 하나하나 나의 조각들을 건져 올리다 보면 가장 반짝반짝 빛나는 나의 꿈을 발견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더 이상 남들처럼 그저 일하는 것에 그치지 않겠다고 두 번째 회사를 뛰쳐나온 후 나는 4개월여의 휴식시간을 가졌다. 그 기간 동안에는 여행도 다녀오고 느지막이 브런치를 먹고 정처 없이 걸어 다니는 여유로운 생활을 만끽했다. 그러나 그 이상의 여유로움을 마냥 누릴 수는 없었다. 나에게는 좇아야 할 꿈이 있었으니까. 수면 아래에 숨겨져 있어 나조차도 막연하게 밖에 알 수 없는 꿈이었지만 지금 건져내지 않으면 영영 발견되지 않는 보물선이 될 게 뻔했다. 아무도 발견하지 않고 알아봐 주지 않아 빛을 바란 낡은 보물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내 보물의 조각을 건져 올려 반질반질하게 닦은 후 세상에 내놓고 싶었다. 그렇게 나는 꿈을 향해 나를 던져보기로 했다. 그리고 그 첫 시작은 가장 오랫동안 마음속에 품었던 나의 꿈, 아나운서를 다시 준비하는 것이었다.






keyword
이전 08화자발적 백수의 이상한 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