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보통의 직장인

출근 부정기

by 수인

뒤돌아서려는 내 옷자락을 잡아 끈 꿈이라는 녀석 덕분에 나는 한 자치구의 미술관에서 *코디네이터로 일할 수 있게 되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구청의 문화체육과 소속으로 주로 미술일을 했지만, 미술이 아닌 문화예술 전반에 관련된 일도 함께 했다. 같이 일하는 사람들도 그래서 배경이 아주 다양했다. 나처럼 미술을 하는 사람, 디자인하는 사람, 문예창작과 출신의 사람, 그리고 음악 하는 사람까지. 2-30대로 구성된 다양하지만 비슷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문화예술이라는 큰 그림을 그려 나가는 게 재밌고 즐거웠다. 전시가 없어 텅 빈 미술관에서 노래를 틀어 놓고 다 같이 페인트 칠을 하는가 하면 (중간중간에 물론 노래도 불렀다.), 작가님의 전시 철수를 함께 도우면서 철수 후 남은 잔여물로 귀여운 작품(?)을 만들기도 했다.


이렇게 자유로운 분위기와 선임 큐레이터 분이 코디네이터인 나에게 전시의 많은 부분을 위임한 덕분에 일을 할 때 높은 자율성을 가질 수 있었다. 단점이라면 큰 기획전시를 거의 하지 않았기 때문에 전시기획의 구체적인 부분까지 체계적으로 알기 힘들다는 것이었지만, 전시기획의 큰 틀은 익힐 수 있었고 내가 판단하고 주체적으로 행할 수 있는 부분이 많았다는 것이 굉장히 큰 장점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뭔가가 늘 목말랐다. 미술일을 하고 있지만 온전히 미술일만 하는 것도 아니고, 무언가 미술계의 중심부에서 소외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왕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거, 미술계의 중심부에 들어가서 제대로 일을 배우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일을 하면서 준학예사 자격증을 얻기 위해 공부를 병행했고, 외부 기관에서 수업을 듣는 등 자기 계발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이렇게 1년 4개월여를 첫 번째 미술관에서 보내고 나는 미술계의 두 번째 커리어를 시작하게 되었다. 원래 살았던 곳 근처에 있어서 자주 방문하곤 했던, 그리고 내가 가고 싶다고 속으로 몇 번이고 되뇌었던 곳에 운 좋게도 들어가게 되었고 마침내 나는 그토록 원하던 중심부에 들어가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출근 부정기


첫 직장을 다닐 때 나는 병든 병아리 같았다. 특히 출근할 때의 모양새를 보면 더욱 그러했는데 그 모습을 묘사해 본다면 한 두어 걸음 걷다가 하늘 한 번 쳐다보고, 또 두어 걸음 걷다가 하늘 한번 쳐다보곤 했다. 나는 이런 내 모습이 모이 한번 쪼아 먹고 하늘 한번 쳐다보고, 또 물 한 모금 마시고 하늘 한번 쳐다보는 병아리 같다고 생각했다. 다만 샛노랗게 생기 도는 예쁜 병아리가 아닌 어딘가 병색이 짙은 파리한 병아리라는 게 달랐지만. 이렇게 나는 빨리 걸으면 15분이면 도착할 수 있는 회사를 엉거주춤 대며 최대한 늦게 갔다. 그리고 10시간에서 12시간가량 회사에서 혼을 쏙 빼고 집에 갈 때면 이제는 힘이 없어서 또 느릿느릿 집을 향해 걸어가는 것이었다.


두 번째 회사인 로펌을 다닐 때는 눈썹이 휘날리도록 뛰어다녔다. 회사를 다니기 싫었던 건 첫 번째 회사와 매한가지였는데, 그런 싫음이 나타난 양상은 달랐다. 나는 어느 순간부터 지각 직전에 회사에 들어가곤 했고 때론 지각도 했다. 아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회사에서 지각을 하는 탑 3인지 5 인지에 들어서 사유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그러고는 이런 걸로 상위권에 들지 말라는 핀잔을 들었다. 나는 원래 꽤나 모범적인 사람이다. 학교 가는 것을 좋아하는 학생이었고, 정말 아파서 쓰러질 것 같지 않은 이상 수업을 빼먹거나 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이놈의 회사는 도통 가고 싶지가 않은 것이다. 뭐 하나 나답게 지낼 수 없는 곳에서 최소 8시간에서 10시간을 갇혀 있을 생각을 하면 아침에 일어나기가 싫었다. 아침에는 눈을 뜨고 싶지 않았고 저녁에는 자고 싶지 않았다. 밤에 잠을 자면 아침이 올 테고, 아침이 오면 나는 회사에 가야 하니까. 밤을 늘여 각종 생각과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 있었고, 아침을 줄여 회사에 늦지 않기 위해 달음박질을 했다. 끈덕지게 달라붙어 있는 현실을 떼어내지 못했기에 하루의 시간을 바꿔버리는 것으로 도피했다.


우여곡절 끝에 꿈이라고 여겨지는 일을 찾아 또다시 출근을 하고 있는 요즈음은, 출근길의 양상이 뚜렷하게 정해진 건 아니다. 굳이 말하자면 두 번째 회사를 다닐 때와 비슷한 모양새이긴 한데 다행히 지각을 해서 사유서를 쓸 정도는 아니다. 빠른 걸음과 뜀박질의 중간에 서서 정각에 맞추어 들어가는 편이다. 그러고는 오후 네 시 정도부터 시계를 보며 퇴근을 기다리고 누구보다도 주말이 오기를 고대한다.


이렇게 나는 또다시 보통의 직장인이 되어가고 있다. 덕업 일치를 이루게 되면 일이 너무 재미있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출근이 기다려지는 나날들이 펼쳐질 줄 알았다. 그런 시간이 있긴 했지만 입사 초반으로 매우 짧았다. 그리고 지금은 불금에 유튜브로 고양이 영상 찾아보며 치킨 먹을 생각하는 몹시도 일반적인 직장인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런 내 모습이 씁쓸하다고 묻는다면 아주 조금 그렇다고 대답하겠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이상과 현실이 너무 다른 것에 몹시도 절망하고 미술계를 떠나고 싶다는 생각까지도 했지만 지금은 아니다. 일이 그저 일이 되어버린 것을 받아들이기로 했으며, 이상에서 내려와 현실에 부딪히며 이 땅에 발 디디고 살아가고 있다. 꿈이 일상이 되어버린 이 상황을 덤덤하게 받아들이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되기까지 나는 숱한 고난의 시간을 거쳐야만 했다.


이전에는 현실에서 발을 둥둥 띄운 채 하늘만 바라봤다면 이제는 여전히 하늘을 향해 고개는 들었지만, 현실이라는 땅에 발을 굳게 디디기로 했다. 생텍쥐베리 <어린 왕자>



*코디네이터: 학예업무를 보조 및 지원하는 사람으로, 기관에 따라 어시스턴트 큐레이터 혹은 학예연구원으로 불리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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