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나 아브라모비치를 아시나요?
‘*마리나 아브라모비치’
나는 속으로 이렇게 말했다. 새로운 미술관으로 이직하고 나서 얼마 되지 않은 날, 한 큐레이터 분은 내가 뻔히 있는 앞에서 이렇게 이야기했다.
“아니, 내가 해보고 싶은 전시가 있는데, 그 누구야 마리나… 있잖아. 누군지 알지? 여기서 나와 너밖에 모르잖아.”
‘저도 알아요, 그리고 그 작가 풀네임은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예요.’
하지만 이 말을 끝끝내 하지 않았다. 대놓고 어시스턴트이자 비전공자인 나는 작가들을 많이 모를 것이라는 뉘앙스를 풍기는 이 말에 분노보다는 당황스러움이 밀려왔다. 아무리 내가 비전공자라지만 나도 미술을 좋아하고 관심 있어서 미술계에 들어왔다. 전공자나 경력이 오래된 분들에 비해서는 모르는 게 많아도 까막눈은 아니다. 그런데 왜 아예 모르는 사람 취급을 하는 걸까? 나를 그저 미술관의 허드렛일을 거들러 온 사람 정도로 취급하는 걸까?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해 그 길로 친하게 지내는 동생에게 이 이야기를 전했다. “내가 마리나 아브라모비치를 모를 거라는 말을 면전에서 하더라고.” “어, 언니 저 그 작가 알아요! 예전에 *뉴욕 현대미술관(The Museum of Modern Art, MoMA)에 갔을 때 그 작가 퍼포먼스 봤는데~!”
첫 번째 직장에 퇴사하겠노라고 말을 한 이후 나는 상무님께 불려 갔다. 상무님을 몇 번 뵌 적은 없었지만 내가 기억하기로는 부하직원들 앞에서 짐짓 젠체하거나 모나게 굴지 않으셨던 분이었다. 상무님은 나를 보며 대뜸 자신의 지난날을 이야기하셨다. 자신도 몇 번이고 회사를 그만두고 다른 길을 가려고 했지만 아버지께서 붙잡으셨다고. 한 우물을 파라는 그 말씀에 버텼고 끝끝내 여기까지 올라왔노라고. 나는 멀뚱멀뚱 상무님을 바라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게 대체 내게 무슨 의미란 말인가. 나는 지금 하고 있는 이 일이 내 인생에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다. 내 가슴이 두근두근 뛰지도 않고 딱히 이 일을 잘하지도 않으며 적성에 맞지도 않다. 회사일은 그 어떤 체계도 없이 주먹구구식으로 돌아간다. 회사의 성과와 내 개인의 성장 사이에 어떤 연관관계가 있는지도 모르겠고 보람도 없다. 그런데 내가 무엇 때문에 버티고 버텨서 높은 자리에까지 올라가야 할까. 그리고 그게 가능이나 할까, 유리천장이라는 게 존재하는데. 여린 마음 탓에 눈물은 그렁그렁 차올라 있었지만 끝끝내 내 의견을 굽히지 않았고, 두 번의 반려 끝에 기어코 퇴사 결재를 받았다.
하고 싶은 일이 많고 대부분의 일에서 보통 이상의 능력을 보이는 나 같은 사람은 자주 혼란에 빠진다. 어느 하나를 특출 나게 잘하거나 어느 하나에 깊이 빠지면 그 길을 걸어가면 된다. 그러나 나는 관심 분야가 너무 다양했고, 그중 하나에 뛰어난 재능을 가진 것은 아니었지만 고루 평균 이상을 하는 편이었다. 그러니까 어느 길을 걸어야 하는지 도통 알 수 없었다. 그리고 하필 학창 시절에 공부를 잘했버렸다. 물론 이런 말을 하면 고까운 시선으로 보는 사람이 있을 걸 안다. 하지만 나는 정말로 내가 ‘하필’ 공부를 잘했다고 생각했다. 한때는 저주라고까지 생각했다. 공부를 잘해버린 탓에 나는 사회가 공부 잘하는 아이에게 억지로 뒤집어 씌우는 프레임에 갇혔으니까. 공부 잘하는 모범생이라면 으레 걸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길을 나도 모르게 강요받고 그 길을 걷다 걷다 오히려 길을 잃어버렸으니까.
이랬던 내가 드디어 꿈이라고 여겨지는 길을 찾고, 들어오고 싶었던 미술관에 들어오니 얼마나 신났겠는가. 갈지자로 걸어온 지난 십여 년의 길이 보상이라도 받는 듯 느껴졌고 나는 열정이 충만했다. ‘드디어 내가 온 열정과 관심을 쏟을 분야가 생겼어!’ 이 시절에는 하루하루 출근하는 게 즐거웠다. 출근하는 길의 하늘만 바라봐도 절로 웃음이 지어졌다.
나는 어시스턴트 큐레이터로 입사해서 학예 업무를 지원하는 일을 맡았다. 학예업무란 전시기획과 진행, 소장품의 보관과 관리, 작품 연구 등 전시 및 소장품과 관련된 업무의 전반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조금 더 쉽게 설명을 하자면 학예업무 지원이란 전시기획과 연구를 담당하는 큐레이터의 업무를 도와주는 일을 하는 것이다. 이렇게 보조 역할을 하면서 전시가 어떻게 기획되는지 어깨너머로 배우고 경력을 쌓는 것이라고 보면 된다. 나는 조금 더 체계 잡힌 미술관에서 배우고 익히고 싶었던 학예 업무를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에 설렜다. 그러나 입사한 지 한 달도 되지 않았을 때 인사 발령이 나서 홍보 담당이 공석이 되었다. 다른 행정 인력도 빠진 상태라 아무리 봐도 나밖에는 그 업무를 할 사람이 없었다. 애초에 내 업무 범위는 아니었지만 코로나로 전시가 원활하게 돌아가고 있지 않은 상황이라 그동안 이 업무를 맡아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홍보까지 할 수 있는 학예인력이 된다면 나에게도 정말 좋은 일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홍보도 맡아달라는 회사의 제의에 흔쾌히 응했다.
처음에는 재미있게 일했다. 홍보든 학예 업무든 다 미술관과 관련된 일이었고, 내가 좋아하는 미술관과 전시에 관해서 널리 알리고 싶었다. 아이디어도 퐁퐁 솟아올랐으며 이를 적극적으로 개진하기도 했다. 예전에 막연하게나마 해보고 싶었던 일 중 하나였기에 홍보가 주 업무는 아니었지만 주 업무처럼 책임감을 가지고 일했다. 그러나 가만히 보아하니 일이 이상하게 돌아갔다. 아무리 코로나로 미술관 개폐가 반복되어 학예업무가 줄어들었다고 하더라도 나는 어시스턴트 큐레이터로서의 일이 먼저인데, 당연하다는 듯이 홍보 업무가 잔뜩 주어졌다. 특히 전시 오픈이 코앞인 상태에서는 큐레이터와 함께 전시 오픈에 주력을 다해야 했지만 홍보 업무를 하느라 자꾸 이쪽 일이 펑크가 났다. 내가 일을 제대로 도와주지 못하자 큐레이터는 혼자 아등바등 업무를 해내느라 힘들어했다. 나는 그게 미안해서 어떻게든 힘닿는 데까지 도와주려고 했으나 한 번에 다섯 명이 나를 찾을 때는 나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게다가 자신의 일을 나에게 떠넘기려는 상사들도 있었고, 전임 홍보 담당자는 내가 일을 잘 몰라서 연락하면 귀찮다는 듯이 차갑게 대했다. 결국 나는 제대로 된 학예 업무도 홍보도 처음이고 이 회사도 처음이었는데 알음알음 떠듬떠듬 일을 해나갈 수밖에 없었다. 어시스턴트라는 자리는 온갖 잡일은 다 떠안고 제대로 된 대우는 받지 못하는 자리인 듯 보였다.
요컨대 나는 ‘무지의 열정’이라는 함정에 빠진 것이었다. 전문성이 강조되는 새로운 분야에서 그 분야를 전공하지 않거나 경력이 많지 않은 사람은 ‘무지’하게 여겨진다. 그리고 이런 무지는 종종 그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우습게 여겨진다. 실은 우습지 않더라도 우습게 여겨야만 한다. 그래야 자신이 가지고 있는 전문성이 보다 반짝반짝 빛나게 되니까. 나는 그래서 미술 애호가라면 알법한 작가도 모를 것이라는 무시를 당했다. 무지한 사람이 열정만 가졌을 때는 더욱 우스워졌다. 애초에 별의별 잡일은 다해야 하는 자리인 데다가 이 분야에 대해서 아는 건 없는데 열의가 충만하다! 얼마나 일을 당연하다는 듯이 넘기고, 어떻게든 그 일을 해내어도 당연하게 생각하기 딱 좋겠는가. 책임감은 무엇 때문에 또 강해서 하지 않아도 될 야근을 해가며 전시 준비를 했지만 돌아오는 말은 "그래서, 네가 야근을 얼마나 했다고 그런 말을 하니?"였다. 아직 아무것도 모르지만 열정이 충만한 신입사원이라면 겪는 일들을 나는 자발적으로 중고 신입이 된 탓에 사랑하는 미술계에서 또 겪어야만 했다. (그리고 제일 피부에 와닿게 경험했다.)
나는 비로소 첫 번째 직장에서 퇴사할 때 상무님이 하신 말씀을 이해할 수 있었다. 물론 상무님은 들어온 지 일 년도 되지 않은 신입사원이 퇴사할 경우 자신의 고과에 영향을 미칠 것을 고려하여 그런 말씀을 하셨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보니 다른 의미도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 길을 쭉 가지 않은 사람은 그 대가로 새로운 분야에 들어설 때마다 초보자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초보자가 된다는 것은 사회에서 빈번히 일어나는 무시와 부당한 대우를 감수해야 한다는 것을 뜻했다. 상무님은 나보다 훨씬 사회경험과 인생 경험이 많은 분이니까 나보다 몇 수 앞서서 이런 일을 생각하셨을지도 모르겠다.
피어올랐던 열정은 서서히 꺼져가기 시작했다. 나는 여전히 내가 속한 미술관이 좋았고 미술이 좋았으며 이 일이 좋았다. 그러나 내가 다쳐가면서까지 하고 싶지는 않았다. 무기력만 사람을 잠식하는 게 아니라 과한 열정 또한 사람을 잠식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종종 예술가를 부나방에 비유하곤 한다. 종국에는 타 죽을 것을 알지 못한 채 어쩔 수 없이 나를 잡아끄는 그 불빛에 대책 없이 끌려들어 가게 되는, 그래서 무지의 열정에 의해 타 죽게 되는 부나방. 나도 무지의 열정을 가진 탓에 소진되어 갔다. 열정은 사그라들었고 나도 사그라졌다.
*마리나 아브라모비치(Marina Abramovic) - 네이버 지식백과 참고
: 유고슬라비아 출신의 퍼포먼스 예술가. 세르비아의 그리스도 정교회 대주교로 살해당한 할아버지, 2차 세계대전 때 파르티잔이었던 부모님은 작품에 영향을 미쳐 대부분 고통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표현하였다. 대표적인 작품에는 <Rest Energy> (1980), <The Lovers> (1988), <The Artist is Present> (2010) 등이 있다.
*2010년 뉴욕 현대미술관에서 열린 퍼포먼스 <The Artist is Present>를 말한다. 이 퍼포먼스에서 아브라모비치는 전시장에 앉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꼼짝도 않은 채 자신 앞에 앉은 관람객을 바라보았다. 미술관이 오픈하는 시간 동안 먹지도, 화장실도 가지 않고 앞에 있는 사람을 바라보는 이 전시는 3개월 동안 계속되었으며 여기에 참여한 수많은 사람들은 알 수 없는 감정에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고 한다. 특히 퍼포먼스 중에 20여 년 전에 헤어진 전 연인 울라이를 만난 것이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