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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인 Oct 17. 2022

아임서연

우린 모두 이상하고 보석 같지

내가 마티를 받아들이자 사람들도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나와 5개월이 채 안 되는 시간 동안 같이 울고 웃은 우리 그리스팀, 이 사람들은 나를 그냥 '나'라는 사람으로 이해했다. 나의 타고난 모습이나 성격을 인정하고 받아들였다. 어쩌면 내가 잘 몰랐을 뿐 처음부터 그렇게 날 대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내 모습을 잘 꾸며내지 못한다.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람들을 대하는 편이다. 그런데 그런 모습이 사람들은 불편했던 모양이다. 타인들은 내 모습 중 일부 혹은 전체를 오해하기 바빴다. 그 오해란 대략 이런 것들이었다. "넌 너무 도도해. 차가워. 다가가기 어려워. 너 잘났어? 공주병이네. 아, 된장녀인가?"


낯을 가리고 수줍어하는 것은 도도하거나 오만하게 비쳤다. 누구의 편도 들지 않고 중립적인 태도를 유지하려고 하는 모습은 자신들의 편을 들지 않는 것처럼 여겨져서 따돌림을 당하기도 했다. 패션에 관심이 많아서 내가 원하는 대로 꾸미고 다니는 모습은 공주병처럼 여겨졌고, 남자들은 이런 모습을 보고 된장녀라고 하기도 했다. 나는 잘 모르겠지만 여성스럽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데 손동작이나 제스처, 목소리나 말투 등을 보고 듣고는 재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게다가 나는 섬세하고 예민한 성격이라 사람들의 눈치를 많이 봤다. 보고 싶지 않아도 타인들의 표정이 보였다. 자꾸만 행간을 읽어 내려갔다. 사람들 사이에서 떠도는 공기가 느껴졌다. 다른 사람들의 감정 흡수도 잘했고 그래서 불필요하게 타인의 부정적인 감정을 떠안기도 했다. 


나에 대한 사람들의 오해가 쌓여갈수록, 타인에게 동화되느라 나를 잃어갈수록 나는 움츠러들었다. 나도 모르게 나를 숨겼다. 내 모습을 다른 모양새로 바꾸기도 했다. 예민한 성격은 "그럴 수도 있지." 하는 배려로 바꿨다. 자주 감동하고 슬퍼하는 모습은 남들의 어떤 말에도 잘 웃어주는 것으로 가렸다. 예술적인 감수성은 굳이 보여주지 않거나 내 개인 공간인 sns 상에서만 추상적으로 드러냈다. 온라인은 오프라인처럼 대면하는 게 아니니까 한 번 더 걸러서 나를 보여주는 게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이렇게라도 나를 풀어놓지 않으면 정말 질식해 버릴 것만 같았다.


그런데 뮤지컬 연습실에만 오면 자꾸만 내가 자연스러워졌다. 그러려고 한 건 아니었지만 다시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이 드러났다. 가령 나는 좀 엉뚱하고 허둥대는 면이 있는데 한 번은 연습 중간 쉬는 시간에 편의점을 갈 때 핸드폰을 챙겨간다면서 다른 동료의 핸드폰을 가지고 나가는 일이 있었다. 편의점 가는 길의 절반을 가면서도 몰랐다. 갑자기 손에 쥔 핸드폰에서 전화벨이 울려서 보니 내 핸드폰이 아닌 동료의 핸드폰이었다. 깜짝 놀란 나는 그 길로 뒤를 돌아 도도도 달려 나가 동료에게 핸드폰을 돌려주었다. 연습 초기라 말 한번 제대로 못 해본 사이였는데 이런 작은 해프닝으로 벽이 조금은 무너진 느낌이었다.


또 나는 발랄하고 유쾌한 면이 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억지로 뿜어대는 밝음이 아닌, 정말 기분이 좋을 때 나오는 그런 밝음이 있다. 사실 평소에는 좀 진지하고 어두운 면이 없지 않아 있지만 정말 친하거나 좋아하는 사람들과 있으면 말도 많아지고 자연스럽게 깔깔대며 웃는다. 뮤지컬 사람들 앞에서는 이런 내 모습이 나왔다. 활기차고 신나는 그리스의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춰서 엔도르핀이 마구마구 솟아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한들 함께 하는 사람들이 서먹하거나 불편했다면 춤추고 노래하는 게 어쩌면 의무감처럼 느껴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뮤지컬 사람들은 참 솔직하고 편견이 없었다. 내가 예쁘게 입고 오면 예쁘다고 칭찬해 주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여성적이고 조심스러운 면모를 (공주병이 아닌) 공주 같다고 해주었다. 힘든 일이 있었던 걸 숨기지 못하고 울었을 때는 당황은 했겠지만 함께 공감하고 위로해 주었다. 내가 챙겨주고 잘해주면 나를 호구로 보고 이용하는 게 아니라 그걸 진심으로 고마워했다. 적고 보니 어쩌면 당연한 반응이자 마음씨일지도 모르겠지만 세상에는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정말 많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은 자신 안의 결핍을 어쩌지 못해 누군가의 사심 없는 진심을 굳이 뒤틀어서 보고 그 마음에 생채기를 낸다. 그리스팀 동료들은 달랐다. 왜곡된 렌즈를 끼지 않고 맨눈 그대로 나를 들여다 봐주었다. 내 생각보다 나를 더 잘 알아봐 주어서 깜짝 놀란 적도 있다. 내가 웃음이 많건 눈물이 많건 예쁘고 귀여운 걸 좋아해서 호들갑을 떨건 솔직하건 말건 그냥 그 모습을 예쁘게 바라봐 주었다. 꽃이 백날 예쁘게 피어 있어 봐야 보는 사람 하나 없다면 그 예쁨이 의미가 있을까 싶다. 내 마음속 꽃은 바라봐 주는 이 없이 힘을 잃고 고개를 떨구고 있었는데, 이 사람들 덕분에 다시 물을 머금고 피어나는 것만 같았다.


공연이 끝난 후 뮤지컬 동료 중 한 명에게 이야기한 적이 있다. 나는 그리스팀 사람들을 만나면 근심 걱정이 사라지는 것 같다고. 어느샌가 이 사람들 앞에서 자연스러워졌고, 어느 순간 나를 툭 내려놓고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보여줬다고. 아무런 의도도 없고 계산도 하지 않은 행동이었는데, 이걸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받아줘서 너무 좋았고 고마웠다고. 동료는 이야기했다.


"그냥 그런가 보다 하는 거지~ 우린 다 조금씩 특이하고 그런데 뭐." 


이 말이 정말 편안했다. 내가 좋아하는 *노랫말 가사처럼 우린 모두 이상하고 보석 같은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런 툭 튀어나온 이상함과 특별함을 깎아내리지 않고 자기 모습대로 솟아있을 수 있게 해 준 사람들은 더 특별하고 찬란하게 빛나는 보석들이다. 혹시 우리가 사회생활을 하면서 만났더라면 달랐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춤추고 노래하고 연기하는, *순수하고 어설프고 아주 신나는 작업을 통해 마음을 여는 상황이 아니었다면 우리도 다른 인간관계와 마찬가지로 경직된 채 가면을 쓰고 대하는 사이였을까. 겪어보지 않은 일은 상상에 맡길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적어도 뮤지컬 팀원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다움을 지키고 다른 사람의 장점을 보는 사람들이라는 믿음이 있다. 그렇기에 나는 상상하는 일은 접어두고 현재 내 곁에 있는 동료들에게 무작정 더 고마워하고 표현하리라고 마음먹었다. 이 사람들 덕분에 나는 순도 100퍼센트의 마티일 뿐만 아니라 순도 100퍼센트의 서연도 될 수 있었다.








*오 마이걸(OH MY GIRL)의 'Dun Dun Dance'이다. 이 노래 중 '우린 모두 이상해 조금씩은'이라는 가사와 '보석 같은 아이야'라는 가사를 좋아한다. 세상에 정상은 없다. 사실 세상 자체가 조금 삐딱하기에 우린 모두 조금씩 기울어져야 바로 설 수 있게 된다. 그러니 이상한 자신을 탓하지 말고 그 이상함을 특별함으로 빛내면 좋겠다. 그게 이 지구상에 불시착한 외계인 같은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이 아닐까.


* 줄리아 카메론 저자(글)  | 정영수 번역,  <아티스트 웨이 The Artist's Way>에 나오는 구절이다. 취미생활을 이렇게 표현했는데 보자마자 마음에 꽂혀버렸다. 내게 뮤지컬이 딱 이랬다. 순수하고 어설프고 아주 신나는 작업. 그래서 두고두고 하고 싶은 작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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