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살아있음을
날 향해 조명이 비치는 걸 알아차렸을 때 눈물이 났다. 오디션을 준비하며 레슨을 받고 있던 어느 날이었다. 선생님이 잠시 자리를 비우셨고 나는 연습실에 홀로 남아 있었다. 아무도 없는 연습실은 이상하리만치 적막한 분위기 속으로 사람을 빠져들게 한다. 고요하고 아득한 분위기에 젖어들고 있을 무렵, 문득 강렬한 하얀 조명이 나를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무대에 있는 것 같은 현장감을 살리기 위해 선생님께서 켜놓으신 조명이었다.
선생님과 함께 있을 때는 몰랐는데 혼자 덩그러니 있게 되자 조명의 존재가 갑자기 크게 다가왔다. 마치 예전부터 나를 지켜봐 온 누군가의 존재를 모르다가 어느 순간 알아차린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그 조우가 너무나 낯설고 강렬해서 그저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렇게 강한 빛이 오로지 나만 비추는 일이 전에도 있었던가? 눈물은 환희의 눈물도, 슬픔의 눈물도 아니었다. 무언가 울컥하고 가슴속에서 올라온 울음이었는데, 그 '울컥'의 의미를 당시에는 알지 못했다. 낯선 존재가 가져다준 울음의 이유를 미처 알아낼 겨를도 없이 선생님이 돌아오시기 전에 눈물을 닦고는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
시간이 지나도 그날은 두고두고 생각났다. 조명과 독대했던 그 순간 나는 무엇을 느끼고 생각했을까. 나에게도 환한 빛이 쏟아지는 날이 있다는 것에 감동했던 걸까. 살면서 내가 받은 빛이라고는 온화한 자연이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내뿜는 햇빛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골고루 퍼지는 햇살은 따스하지만 누구 한 명을 집중적으로 비추지는 않는다. 우리 모두는 그렇기에 자연 앞에서 동등하며, 겸손하게 살아있는 기쁨을 누린다. 하지만 살다 보면 가끔 따스함보다는 강렬함을 원하게 마련이다. 모두와 같아지기보다는 나다움을 뽐내고 싶어 지기 마련이다. 내 안에 깊숙이 감추어져 있던 그런 갈망이 스탠드 조명의 불빛을 받아 깨어난 것이었을 수도.
어릴 적부터 깜깜한 걸 무서워했다. 밤이 오는 게 싫었다. 밤이 되면 불을 끄고 잠자리에 들라는 부모님의 소리가 들렸다. 자고 싶지 않아서 안간힘을 썼던 나는 자는 척하면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책을 보곤 했다. 잠은 죽어있는 거니까 그 생명력 상실에 무의식적인 거부감을 느꼈던 걸지도 모른다. 인생의 어두운 면을 굳이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것일 수도 있다. 그렇게 잠들기 직전까지 나는 상상력을 깨우며 살아있음을 누렸다.
인생은 살아가면서 죽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차피 끝이 있는 것이기에 아무리 아등바등 살아봤자 종국에는 어둠 속에 묻힌다. 그래서 나는 깨어있는 시간을 늘려 살아있음을 연장하고자 했다. 그냥 살아있는 게 아니라 팔딱팔딱 살아있는 생동감과 생명력을 느끼고 싶었다. 그런 내게 세상은 생각보다 어두웠다. 나는 환한 빛 속이 아닌 어둠 속에 있을 때가 훨씬 많았다. 준비하던 시험에 번번이 떨어졌을 때, 내 마음이 무얼 원하는지 알 수 없어 괴로울 때, 매번 사랑에 서툴러서 매번 실패할 때 나는 밤 속에 있는 것 같았다. 그 어둠이 무서워서 벌벌 떨었다. 그런 내게 조명이 비친 것이다. 그것도 나만을 위해서.
무대에 서고자 한 것도, 오로지 날 향해 비추는 강렬한 빛을 받고 싶었던 조심스러웠지만 강한 욕망에 기인했다. 조심스러웠던 건 내가 그래도 될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모두가 똑같아져야 마음이 편한 세상 속에서 홀로 튀어나와 주인공이 된다는 건 안 되는 일처럼 생각되었다. 강하다는 건 그래서 8년여를 참고 참은 마음이 기어코 분출되었다는 것을 뜻했다. 세상이 눌렀기에 나도 덩달아 눌러버렸던 그 욕망은 더 밀도가 높아져 있었다. 결국은 폭발할 수밖에 없었던 그 욕망으로 뮤지컬을 시작했다.
그러나 뮤지컬을 하면서 깨달은 건, 빛을 받고 받지 않고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연습을 지도해주신 선생님 중 한 분이 우리의 연습 모양새를 지켜보시다가 말씀하신 적이 있다.
"여러분, 다른 사람이 대사하고 노래할 때에도 여러분은 가만히 있으면 안 돼요. 그 순간에도 연기하고 있어야 합니다!"
왜 빛과 사람들의 시선이 내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향해 있을 때는 연기할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내가 빛을 받지 못해도 나는 여전히 무대 위의 일원으로 서 있고 살아 숨 쉬고 있는데, 그리고 나의 존재는 무언가를 행하고 있을 때야 비로소 빛이든 어둠 속에서든 살아나는 것인데. 그 말씀을 듣고나서부터는 무대 전면에 나서서 대사 하거나 노래하지 않아도 뒤에서 열심히 연기했다. 대사 없이 동작이나 표정 등으로만 연기해야 해서 캐릭터를 표현하는 게 더 어려웠지만, 끊임없이 행동을 한다는 게 생생하게 느껴졌다. 옆에 있는 다른 배우들과도 계속 행동을 주고받다 보니 유대감이 깊어지는 것 같았다.
이런 일이 있은 후에 뮤지컬을 보러 갔다. 평소에 보고 싶었던 뮤지컬이기도 했고, 프로 배우들의 무대를 보는 게 연습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마타하리>라는, 제1차 세계대전 동안 스파이로 활동한 매혹적인 무희 마타하리의 이야기를 담은 뮤지컬이었다. 20세기 초 파리의 *물랭 루주(Moulin Rouge)에서 활동한 무희와 그녀와 관계된 프랑스와 독일의 상류층 세계를 표현했기에 의상이나 무대 세팅이 화려했다. 마타하리를 중점으로 펼쳐지는 극인 만큼 조명은 그녀에게 많이 비쳤다. 그런데 내 눈에는 이제 어둠 속 사람들이 보였다. 주연뿐만 아니라 조연과 앙상블로 서는 배우들이 눈에 들어왔다. 조명이 주인공을 비추고 있을 때 어둠 속에서 묵묵히 삶을 연기하는 그들의 모습이 얼마나 멋졌는지! 소박함과 묵묵함이라는 게 이렇게 멋진 거였나? 그렇게 어둠 속에서 제 역할을 다 하고 나면 다음에는 다른 배우들과 함께 무대 앞쪽으로 나와 빛을 받는 순간이 온다. 배우로서도 캐릭터로서도 많이 그려왔을 그 순간을 기어코 맞이하는 것을 보니 덩달아 나도 감동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는 빛이 나를 비추지 않아도 괜찮다. 여전히 반은 어둠 속에 반은 빛 속에 있는 느낌이지만 오히려 삶의 명암을 함께 느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다. 밝은 빛으로 대변되는 행복과 즐거움, 기쁨만을 추구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 시간 동안은 아이러니하게도 더 슬프고 불행했다. 지금의 힘듦을 부정하는 것은 삶을 부정하는 것이기에, 인생을 인정하지 않은 대가로 나는 반쪽짜리 인생을 살았다. 지금도 여전히 과거의 슬픈 기억 때문에 아파하고 현재의 해결되지 않는 일을 생각하며 종종 운다. 그렇지만 지금은 울어도 다시 웃을 일이 생긴다는 걸 알게 되었다. 해맑게 웃다가도 다시 슬프게 우는 일이 생기리라는 것을 받아들였다. 빛과 어둠 모두를 포용하며 살아가니 조금 더 단단해진 것 같다. 삶의 고저 속에서 인생이 살아있다고 느낀다. 그러니 이제는 빛이 나를 비추지 않아도 괜찮다. 나는 빛 속에서도 어둠 속에서도 언제든 살아있다. 그것만으로도 나는 인생의 배우로서 내 몫을 다 한 것이다.
*물랭 루주(Moulin Rouge)
1889년에 만들어진 파리 몽마르트르에 있는 카바레. '빨간 풍차'라는 뜻의 이름은 건물 옥상에 있는 빨간 풍차 장식 때문에 붙여졌다. 물랭 루주는 프랑스 근대 유흥 문화의 상징으로 여겨지며, 지금까지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관광 명소가 되었다. (위키백과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