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툰 인생 속 열연을 펼치는 우리들
당장 다시 마티가 되고 싶지는 않다 하더라도 뮤지컬은 계속하고 싶었다. <그리스>라는 뮤지컬 속 '마티'라는 캐릭터를 통해 나의 새로운 모습을 봤다면, 다른 뮤지컬의 다른 캐릭터 속에 숨겨진 내가 또 있을 것 같았다. 뮤지컬은 삶을 품고 있기에 여러 극 속에서 펼쳐지는 다양한 삶이 궁금하기도 했다. 한 번 무대에 직접 뛰어들어 보니 삶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느낌이 들었다. 무대를 준비하면서 시간과 노력을 열정적으로 쏟아부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제는 내 삶 또한 하나의 무대라는 생각에 무대 바깥의 삶에 임하는 자세가 달라졌다. 그 원동력이 된 뮤지컬 무대를 또 준비하고 싶어졌다.
조금 더 나은 모습으로 무대에 오르고 싶었다. 그러려면 배우고 채워야겠다고 생각했다. 가장 급한 건 보컬이었지만, 예의 꾸물거리고 주저하는 성격이 다시 나타났다. 아직도 노래하는 데 두려움이 남아 있다 보니 당장 보컬 수업 듣는 게 머뭇거려졌다. 대신 이상하게 연기 욕심이 생겼다. 공연을 보러 온 친구들 왈, 내가 잘하는 건 연기, 안무, 노래 순이었다. 그나마 잘하는 연기를 더 잘하고 싶어진 것일 수도 있고, 연기의 깊이를 알고 싶어진 것일 수도 있다. 이리저리 수업을 찾아보다가 모 연기학원의 특강을 듣게 되었다.
연기 수업에 온 사람들은 다양했다. 막 진료를 마치고 온 의사도 있었고 여의도에서 직장을 다니는 사람도 있었다. 항공사에 다니다가 그만두고 필라테스 강사를 준비하는 사람도 있었으며, 디자인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아이스 브레이킹 시간에 각자 자신을 소개하며 서로 신기해했다. '연기'라는 공통된 목적이 아닌 이상 사적인 자리에서 만날 이유가 별로 없는 사람들이었다. 게다가 각자의 영역에서 잘 살고 있는 사람들이 굳이 연기를 배우고 싶어서 이 자리에 모였다는 게 서로에 대한 궁금증을 자아내는 것 같았다.
각자의 배경이 다른 만큼 연기를 배우고 싶은 이유도 다양했다. 어떤 사람은 못다 이룬 뮤지컬 배우의 꿈을 잊지 못해 수업을 듣게 되었다고 했다. 취미로 뮤지컬을 관람하다가 연기가 궁금해져서 온 사람도 있었다. 이유는 달랐지만 무언가를 채우기 위해 연기를 배우고자 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 채우고자 하는 것은 어쩌면 살면서 잃어버린 자신이 아닐까 싶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본 사람들은 연기를 정말 잘했다. 나는 그 사실이 놀라웠다. 나도 물론 원치 않는 가면을 쓰고 살아갔지만, 다른 사람들처럼 그렇게 연기를 잘하지는 못했다. 어쩜 그렇게 자신을 숨기고 사회에서 요구하는 역할을 기가 막히게 수행하며 살아가는 걸까. 어디서 그런 연기를 배운 걸까, 타고난 생존본능인 걸까. 나는 그렇지 못해서 이렇게 매번 튕겨져 나가고 도태되는 걸까. 다들 인생의 배우로서 제값을 하고 살아가는데, 나 혼자 살아가는 이곳이 무대라는 것을 잊고 꿋꿋이 내가 되고자 했기에 배우 자격을 박탈당한 건가. 그렇게 무대 아래로 굴러 떨어진 걸까. 나를 탓하는 시간이 늘어갔다.
그런데 그 사람들 또한 잃어버린 자신의 조각을 찾고 싶었던 것 같다. 너무도 훌륭히 연기를 해내어 정작 자신을 잃어버린 사람들은 역설적이게도 자신을 찾기 위해 연기를 배우고자 했다. 나를 표현하고 싶어서, 내 안의 응어리진 것을 풀고 싶어서 그렇게 연기를 잘함에도 굳이 '연기'를 배우고자 했다. 나로 살지 못해 연기를 하고, 또 나로 살기 위해 연기를 하고 싶어 한다. 그러니까 삶은 너무도 연기인 것이다. 인생은 너무도 무대 위에 있었고, 우리는 너무도 연기하는 배우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간혹 일상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에게 감탄할 때가 있다. 주어진 삶을 누구보다 묵묵히 살아내고 있는 사람들이다. 한 모금 마시자마자 눈이 동그래질 만큼 맛있는 커피를 근사하게 제공해 놓고는 아무런 생색도 내지 않는 동네 카페 주인, 고객이 원하는 헤어스타일을 해주지 못하면 내내 신경 쓰여 노력한다는 단골 미용실 선생님, 자신이 직접 만든 특별 메뉴를 수줍게 자랑하는 음식점 사장님 등, 삶의 무대에서 조용하지만 은근한 빛을 발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이들 또한 자신의 역할에 충실한 연기를 하며 살아가는 것일 테지만, 나는 그 담담한 연기에서 소박한 감동을 받곤 한다. 화려하진 않아도 자신의 삶에 자긍심을 가지고 있는 그 모습을 보면 이상하게 마음이 차오른다. 그럴 때면 마음속으로 조용히 응원을 보낸다. 간혹 어렵게 용기 내어 "커피 정말 맛있어요! 저 커피 맛 잘 모르는데 제가 먹은 것 중 제일 맛있어요!"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렇게 나만의 방식으로 자신만의 무대에서 열연을 펼치는 사람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처음 살아보는 삶이기에 늘 서투르고 어색했다. 남들은 저리 연기를 잘하는데 나만 못하는가 싶어 눈물 흘릴 때도 많았다. 하지만 조금 부족해도, 아직 미완이어도 지금까지 내 삶을 충실히 살아왔다는 점에서 그만 슬퍼하고 아파해도 될 것 같다. 인생이라는 정해진 각본 속에서 배우로 그저 연기를 한 것이든, 나도 극작가이자 연출로 참여해서 내 인생을 함께 만들어 온 것이든 나는 울고 웃고 넘어졌다가 다시 일어나기도 하며 온몸과 마음을 다해 연기했다. 또 그렇게 살아왔다. 그동안 내 삶을 미워했던 건 오히려 나와 삶을 너무 사랑해서였음을 이제는 안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 다듬어가며 연기가 느는 것처럼, 나도 인생을 살아가는 방식을 수정해가며 살아가면 되는 것이다. 나는 배우이다. 우리 모두는 배우이다. 원치 않게 이 세상에 던져졌지만 용기 있게 꿋꿋하게 연기하며 살아가는 배우이다. 설령 내가 발하는 빛을 나는 보지는 못하더라도 그 빛을 알아채고 바라봐 주는 관객이 있는 행복한 배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