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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인 Oct 28. 2022

다시, 무대 아래의 삶

아픔을 견뎌야 해

나는 무대에 서면 아픈 걸 잊는다. 


이따금 행사 MC로 무대에 선다. 한때 꿈을 꾸었던 아나운서는 되지 못했지만, 대신 행사를 진행하는 사회자가 되어 무대에 오른다. 이루지 못한 꿈을 우회적으로나마 이룬 삶은 생각보다 괜찮다. 어쩌면 카메라 앞에 서기보다는 무대라는 현장 속에서 사람들과 호흡하는 게 더 나에게 맞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무대에 오르면 사람들이 보인다. 처음 사회를 보았을 때는 심하게 긴장을 한 나머지 행사가 끝나고 주저앉아 버렸다. 속으로는 덜덜 떨면서 겉으로는 태연한 척했는데, 그 떨림이 쌓이고 쌓여 무대가 끝난 후 한 번에 날 주저앉혔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는 괜찮아졌다. 진행을 하면서 태연히 사람들의 눈동자를 들여다본다. 평소에는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 에너지가 뺏기는 내향형의 사람인데, 무대 위에서만큼은 사람들의 에너지를 흡수하는 외향형이 된다.


무대에 오르면 아픈 것도 잊는다. 회사를 다니면서 부업처럼 하곤 했던 일이라 피로 누적으로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가 가끔 있었다. 무대에 서야 하는데 몸살기 때문에 힘들곤 했다. 무사히 행사를 진행할 수 있을까? 걱정되는 마음에 약을 삼키고 커피도 마셔가면서 몸을 각성시켰다. 의지로 몸과 마음을 다잡고 단상 앞에 서곤 했다. 그런데 정말 신기한 일은 그렇게 아프고 힘들다가도 무대에 오르면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 아픈 걸 잊은 건지 그 순간만큼은 정말 아프지 않았던 건지 알 수는 없다. 더 신기한 건 이렇게 무사히 무대를 마치고 내려오면 나는 이내 시름시름 다시 아프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함께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마지막 멘트를 하고 나면 사람들은 뿔뿔이 흩어진다. 행사 중임을 나타냈던 현수막이 내려오고, 오디오와 조명이 꺼진다. 그럼 이제 나도 내려가야 하는 시간이 된다. 그렇게 무대 아래로 나 있는 계단을 차곡차곡 내려온다. 그 순간부터 이상하게 마음이 공허하다. 조금 전까지의 당당하고 여유로운 나는 온데간데 없어지고 다시 찾아온 몸살에 몸을 떠는 자그마한 여자가 있을 뿐이다.


무대를 내려왔을 때의 공허함을 알기에 뮤지컬 무대가 끝나는 것도 걱정이 되었다. 공연일 몇 주 전부터 반드시 찾아올 공허함을 예상하며 이를 어떻게 처리해야 하나 고심했다. 그도 그럴 것이 4월 말부터 5개월 조금 안 되는 시간 동안 매주 토요일은 뮤지컬 연습에 반납했다. 친구도 만나지 않고, 직장인에게 너무도 소중한 쉬는 날까지 포기하면서까지 연습에 매진했다. 좋은 사람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며 행복한 땀방울을 흘렸다. 그런데 공연이 끝남과 동시에 한 번도 이런 시간이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끝나버릴까 봐 두려웠다. 충만함으로 채워졌던 시간이 한순간에 뻥 뚫린 공허함으로 변할까 봐 걱정이 되었다. 무대 위의 나는, 그리고 우리는 환한 조명 아래에 웃고 춤추고 노래하면서 서로를 확인하고 존재를 뽐내겠지만, 이 무대를 내려오는 순간 아픔을 잊고 살아있었던 그 모든 순간들이 다시 아픔으로 다가올까 봐 너무 겁이 났다.


나만 이런 생각을 한 건 아니었다. 공연이 가까워지면서 우리는 뮤지컬이 끝나면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해 서로의 계획을 물어보았다. 끝나면 마음이 공허할 것이라는 데도 의견을 같이 했다. 취미로 무려 뮤지컬을 하는 사람들인 만큼 이미 공연 끝나고의 계획이 촘촘하게 짜여있었다. 누구는 중단했던 등산을 다시 한다고 했고, 누구는 보컬 레슨을 받을 거라고 했다. 또 누구는 미뤄뒀던 자격증 공부를 한다고 했다. 그리고 나는 잠시 중단했던 발레를 다시 하고 시간이 된다면 방송댄스도 배울 터였다. 어쩌면 나를 비롯해 열심히 사는 이들도 자신 안의 허전함을 채우기 위해 여러 장치를 마련해 둔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여름밤의 악몽이라고 여겨질 만큼 힘들고 아프게 회사를 나왔을 때, 나는 무대가 있어서 악몽 같은 현실을 견뎠다. 비록 아직 무대 아래에 있었지만 오를 수 있는 무대가 있기에 아픈 것을 견딜 수 있었다. 그리고 결국 무대에 섰을 때 나는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 공연 전 날 제대로 잠을 못 자서 컨디션이 좋지 않았지만 무대 위에서 아프지 않았다. 새 신발을 신고 무대에 올랐지만 무대 위에서는 아프지 않았다. 내 차례가 끝나서 커튼 뒤로 들어가면 그제야 발이 아파져서 바닥에 앉아 신발을 벗고 발을 주물렀다. 그러다가 다음 차례에 무대에 다시 나가면 거짓말처럼 또 발이 아프지 않았다.


공연이 끝나고 우려했던 일이 일어났다. 마음의 공허함이 몸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원래도 조금 있었던 불면증이 심해졌다. 말 그대로 한숨도 자지 못한 날들도 있었다.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니 심장이 두근거렸다. 두통도 심해졌고 머리가 뿌연 상태로 하루를 멍하니 보내기도 했다. 소화도 되지 않았다. 공연이 끝나고 이틀째 되는 날 아침에 일어나서 먹은 것을 다 토해냈다. 현실 속에서 아파야 했던 모든 게 이제야 아프기 시작한 것 같았다. 그럼에도 나는 원래 계획대로 발레를 다시 시작했고 다음 뮤지컬도 신청을 해두었다. 앞으로도 이런 일들이 반복될까? 무대에 오르기 위해서 아픈 걸 참고, 무대에서는 한 번도 아프지 않았던 사람처럼 공연하고 무대 아래에서는 현실에 아픈 삶이 반복되는 걸까? 현실을 잊고 싶고, 동시에 현실을 잘 살고 싶어서 무대에 올랐던 건데 이렇게 사는 게 건강한 걸까.


생의 생생함을 느끼던 무대를 그리워하는 향수병인 걸지도 모르겠다. 무대 아래의 삶 또한 또 다른 나의 무대인 걸 알지만 이를 아직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한 것일 수도 있겠다. 그래서 그냥 아픔을 받아들이면서 무대 아래의 무대에서 살아가는 법을 익히고 있다. 내 인생의 무대에 나답게 오르는 법을 생각하고 연습하고 있다. 그동안 방치했던 몸과 마음의 건강도 챙기려고 노력 중이다. 어쩌면, 아주 어쩌면 내 삶도 무대에 올릴 수 있다면 나는 덜 아플지도 모르겠다. 내가 생각하는 무대의 주인공이 된다면, 그 누구와도 비교하지 않고 오로지 나만의 인생을 살아내며 무대에 오를 수 있다면, 나는 어쩌면 지금보다 잘 자고 우는 날이 적어지며 용기 있게 사랑도 할 수 있는 날들이 많아지지 않을까. 다시 한번 무대 아래의 삶을 견뎌야 하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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