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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인 Oct 28. 2022

나는 다시 마티가 되고 싶을까?

한 번 뿐이기에 가볍고 찬란한 인생

아빠는 이야기하셨다. 삶은 무대이고 우리는 그 위에서 연기하는 배우일 뿐이라고. 극에 오를 때마다 조금씩 세부 내용은 바뀔 수 있겠지만 큰 흐름은 이미 정해져 있다고. 그래서 우리는 짜인 각본에 따라서 움직일 수밖에 없다고. 처음 이 이야기를 듣고 나는 조금 혼란스러웠다. 미리 정해진 극본에 따라서만 움직인다면 우리의 자유의지는 어떻게 되는 걸까? 내 인생을 진정 바꾸어 나갈 수는 없는 걸까?


요새 들어 자꾸 지난날들을 돌아보게 된다. 그저 정신없이 달려왔는데 내 삶에는 궤적이 생겼다. 어릴 때는 바라지 않았던 커리어가 생기고 예상치 못한 사람들을 만났으며 사랑은 실패로 얼룩졌다. 대학생 때만 해도 인생이 직선으로 쭉 뻗어나갈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실은 내가 걸어온 길은 구비 진 길이었다. 설마 이 모든 게 준비된 대본이었다면, 내 인생이라는 극은 앞으로도 이렇게 펼쳐지는 건가 아찔했다.


'한 번은 중요치 않다.'


밀란 쿤데라는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이렇게 이야기한다. 인생은 영원히 반복되는 것이 아니기에 '찬란하게 가볍다'라고. 우리는 '한 번도 리허설을 하지 않고 무대에 오른 배우'이며, 인생은 '첫 번째 리허설 그 자체'라고 말한다. 그러니까 어떤 삶이었든 우리는 가치 판단을 할 수 없다. 그리고 그만큼 무용하다.......


나는 다시 마티가 되고 싶을까? 무대에서 내려온 뒤에 생각했다. 분명 완벽하지 않은 연기와 노래, 춤이었다. 나중에 공연 영상을 보니 실수한 게 더 잘 보였다. 안무할 때 조금 더 동작도 크게 하고 표정도 풍부하게 할 수 있었다. 타이밍을 놓쳐서 살짝 늦게 대사를 한 게 아쉽기도 했다. 얼마나 아쉬움이 남았던지 무대에서 실수한 부분을 완벽하게 해내는 꿈도 꾸었다. 마티에 온 열정을 쏟아부었기에, 나는 나름대로 마티 자체가 되었기에 미련 없다고 생각했는데 슬그머니 다시 욕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만약 내가 다시 한번 <그리스> 속 마티가 된다면 이번에 올린 두 번의 무대보다는 확실히 더 좋은 모습이 나올 것이다. 이미 첫 번째 공연보다 두 번째 공연의 모습 속 내가 더 매끄럽고 자연스러웠다. 하지만 보다 완벽한 배역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연습한 후 한 번 더 마티가 된다면 취미 뮤지컬의 즐거움과 가벼움이 반감될까? 밀란 쿤데라에 따르면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반복하는 무대는 실수로 범벅이 된 단 한 번의 무대보다 무거워야 한다. 그러니까 다시 한번 마티가 되면 나는 무대에 오르는 자유로움과 해방감을 놓치게 될 것인지 궁금해졌다.


지금까지 살아온 삶이 억울하다고 생각한 적이 많았다. 내 안에는 타인이 너무 많았다. 그들에게 휘둘리느라 나는 정작 내 안의 빛을 보지 못했다. 날 때부터 내게 주어진 재능과 소명을 알지 못했다. 사실, 알고 있었지만 타인의 인생을 흉내 내느라 제대로 꺼내어 쓰지 못했다. 남들답게 살아야 사회의 일원이 되는 것 같았고, 그렇게 나를 버려가며 세상에 속하기 위해 애썼다. 그러나 결과는 남들에게 섞이지도, 내 속에 온전히 속하지도 못하는 삶이었다. 계속 스케치만 하는 인생 같았다. 4B 연필로 이리저리 그어봤는데 결국 완성된 모양 하나 없는 어지러운 스케치북이 바로 내 인생인 것만 같았다.


하지만 어차피 한 번으로 끝날 인생이라면, 우리 모두 한 번도 리허설을 거치지 않고 무대 위에 내동댕이쳐진 것이라면, 무대 위 그림이 스케치이든 완성된 수채화 혹은 유화이든 상관없다. 반복되지 않을 것이기에 모든 것은 처음부터 똑같고, 또 무의미하다. 아빠가 이야기하신 게 운명에 굴복하는 인간의 나약함을 이야기하는 것인가 싶어 반발하고 싶었지만, 혹시 삶의 무용함을 말씀하시고자 한 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리고 무용함이 나쁜 것은 아니다. 무용하기에 여러 도전을 할 수 있고 실패 또한 무용하게 여길 수 있다. 유용함이라는 무거움을 배제하기에 우리는 조금 더 자유로울 수 있다. 그렇게 삶을 여행하듯 살아갈 수 있다.


그러니까 나는 다시 마티가 되고 싶은가? 아직은 아니다. 마티가 그리워질 때쯤 한 번 더 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하지만, 당분간은 무대 위의 가벼움과 찬란함을 안겨준 고마운 존재로만 기억하고 싶다. 그리고 한 번은 중요치 않다. 마티로 사는 인생은 반복할 수 있어도 서연으로 사는 인생은 이 세상에 단 한 번뿐이다. 굽이굽이 살아온 인생이든 고속도로처럼 쭉 뻗어서 거침없이 달려온 인생이든 단 한 번으로 끝나는 인생이라면 어차피 그 중량은 매우 가볍다. 그렇기에 실수로 점철된 인생이라 하더라도 내 인생은 실패한 게 아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시간은 완벽한 인생을 위한 연습이 아니었다. 삶은 한 번 뿐이기에 불완전하고 미완성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자체로 삶이었고 그 자체로 무대 위에 올라있었다. 앞으로도 나는 실수하며 불안정하게 살아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게 인생을 살아가는 나라는 배우의 숙명이다. 앞으로도 많이 실수하고 많이 아프겠지만 삶 자체가 아름다운 이유이다. 내가 살아가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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