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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인 Oct 26. 2022

*관객석 그 어딘가

나를 위해 박수 쳐 주는 사람들

대망의 뮤지컬 공연 날, 나는 관객석을 바라보지 않았다. 어둠 속에 있는 저 관객석 그 어딘가에서 나를 응원해 줄 사람들이 와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쳐다보지 않았다. 아는 사람들을 관람객으로 초대했는데, 이들을 보면 공연에 집중하지 못할 것 같았다. 사사로운 감정을 배제한 채 오로지 배우로서만 보이고 싶기도 했다. 


우리의 공연이 올라갈 소극장을 처음 봤을 때는 솔직히 조금 놀랐다. 무대와 관객석 사이에 경계가 없었기 때문이다. 보통 무대는 관객석 보다 위에 올라가 있는데, 이곳은 관객석과 무대 사이에 공간감이 없었다. 배우가 거리 조절을 하지 못하면 관객석으로 들어갈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렇지만 이내 괜찮아졌다. 취미 배우로 오를 첫 무대로서는 적당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오히려 무대가 높았다면 얼마 전까지 관람객이었던 내가 갑자기 배우가 된 게 더 어색하게 느껴졌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꽤나 오랫동안 공연장의 관객석에 앉아 있었다. 뮤지컬을 처음 본 건 고등학교 2학년 때인 열여덟 살 때였다. 대학로의 소극장에서 <사랑은 비를 타고>라는 뮤지컬을 봤는데, 그때는 내가 이렇게까지 뮤지컬을 좋아하게 될 줄은 몰랐다. 그로부터 정확히 10년 후에 나는 세종문화회관에서 <모차르트>라는 뮤지컬을 보고 소위 말하는 뮤지컬 덕후가 되었고, 또 이로부터 정확히 10년 후에는 취미 배우로 <그리스>라는 뮤지컬을 올렸다. 관객석에서 무대에 오르기까지 무려 20년이 걸린 것이었다.


처음 뮤지컬을 본 건 학교 숙제를 하기 위해서였다. 무엇이든 뮤지컬 하나를 보고 감상문을 써오라고 했다. 내게 뮤지컬은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수단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사랑은 비를 타고>라는 제목이 꽤 로맨틱하다고 생각은 했지만 (실상 내용은 남녀 사이의 로맨틱한 사랑 이야기는 아니다.), 뮤지컬이라는 공연예술 장르에 매력을 느끼지는 못했다. 그런 내가 이십 대 후반에 뮤지컬에 빠져든 건 삶이 숙제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차라리 숙제를 하는 삶이 나았다. 그건 선생님이 답이라도 가르쳐 주셨으니까. 그런데 어른이 되어서 살아가는 삶은 도무지 무엇이 답인지 알 수가 없었다. 삶은 숙제 같은데 풀이가 없다, 답도 없다. 이 사실이 당혹스럽고 절망스러웠다. 해답 없는 삶 속에 빠져들어가 빙글빙글 돌다가 그만 나오고 싶어질 때쯤 뮤지컬이 다시 한번 내게 찾아왔다.


내 인생에서 빠져나와 타인의 인생을 들여다본다는 것은 근사한 일이었다.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는 그랬다. 특히 대극장에 올려지는 뮤지컬은 굉장히 화려하다. 의상이며 조명이며 무대 세트며 다 번쩍번쩍했다. 무대 위에 오르는 사람들은 좀 예쁘고 잘생겼는가. 게다가 노래, 춤, 연기 뭐 하나 빠지는 것 없이 다들 잘했다. 스토리 상 아무리 비루해 보이는 인생이라 해도 무대에 올려진 그 순간 무대 아래의 내 인생보다 특별해 보였다. 모든 것이 부풀려지고 극화되는 무대 속에서 펼쳐지는 인생은 매 순간 살아있고 재미나 보였다. 그렇게 화려해 보이는 남의 인생을 눈으로 좇고 귀로 좇는 게 답도 없는 내 인생 속에 들어앉아 있는 것보다 훨씬 낫다고 여겼다. 그렇게 뮤지컬을 쫓아다니는 삶을 살았다.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무대에 올라버린 것이다. 사실 갑자기라기보다는 오랫동안 마음속에 품었던 일이 실현된 것이긴 했다. 타인의 삶을 쫓으면서도 실은 내 삶을 살고 싶었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 속에는 반드시 내 이야기가 들어있었다. <모차르트>에서는 *'황금별'이라는 넘버 속에서 드러난, 모차르트와 모차르트 아버지 사이의 상관관계를 보면서 나와 엄마의 관계를 생각했다. *<김종욱 찾기>에서는 사랑이 무서워 운명에 모든 것을 맡겨버리는 여자 주인공에게서 나와 비슷한 모습을 보았다. 어차피 각본 속에, 글 속에 내 인생이 들어있을 거면 어디 한번 나도 직접 무대로 뛰어들어가고 싶었다. 조금 더 생생하게 살아내기 위해, 그리고 내 인생을 무대 위에 올리는 법을 알기 위해.


그렇게 기어코 무대에 오른 나는, 관객석을 바라보지는 않았지만 어쩐지 마음이 든든했다. 아는 얼굴들을 굳이 바라보지 않아도 그들이 나를 바라보고 있을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표정으로 박수로, 환호성으로 나를 응원하고 지지해 줄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관객석에 앉아 있을 때 아낌없이 보내주었던 응원과 지지를 돌려받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내가 미처 몰랐을 뿐 나를 위해 박수 쳐주는 사람들은 늘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관객석에는 빛이 비치지 않으니까 어둠 속에 가려져서 내가 몰랐던 거지 관객들은 늘 존재하고 있었다. 나는 관객석에 앉아 빛나는 무대 위를 바라보기만 했다고 생각했지만, 실은 누군가도 나를 바라보며 그렇게 응원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나는 때로는 무대 위에서 박수받는 주인공으로, 때로는 무대 아래에서 열심히 박수 쳐주는 관객으로 살고자 한다. 초등학생 때 창피를 당했던 피아노 연주회에서는 일부러 관객석을 보지 않은 게 아니라 수치심에 관객석이 보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누군가는 나를 연민의 눈길로 바라보며 응원하고 있었을 것이라고 이제는 믿는다. 내가 듣지 못했던 것이지 누군가는 내 연주가 끝났을 때 열심히 박수를 쳐주었을 것이다. 그때의 관객들, 그리고 내 첫 뮤지컬 무대에 와준 관객들의 응원과 지지를 잊지 않으며 인생의 주인공으로 살겠다. 그리고 나도 때로는 타인을 위해 아낌없이 박수를 보내주는 열렬한 관객으로 살겠다. 





*관객석 그 어딘가(Somewhere in the Audience)

미국의 시인 및 소설가인 에드거 앨런 포(Edgar Allan Poe)의 생애를 다룬 뮤지컬 <에드거 앨런 포> 속 넘버. 포가 아내인 버지니아를 먼저 떠나보낼 때 부르는 노래이다. 버지니아가 떠남으로써 자신을 바라보던 관객석이 텅 비었다는 것을 알고는, 자신은 그저 아무도 찾지 않는 무대 위의 광대일 뿐이라고 절망하고 슬퍼한다. 삶은 무대이고, 우리는 그저 주어진 시간 동안 연기하는 배우일 뿐이라는 생각을 종종 한다. 아무도 바라보지 않는 배우는 아마 죽은 배우일 것이다. 우리 또한 그렇다. 삶에서 우리를 바라보는 사람이 있기에 힘든 일이 있어도 용기를 얻고 살아간다. 아무도 나를 바라봐주지 않는다고 여긴 시간이 길었다. 그래서 이 노래를 들으면 자주 눈물이 나곤 했다. 앞으로의 내 삶 속 관객석은 꽉 채워져 있길 바란다. 그리고 나도 종종 다른 이들의 관객석을 채워주고자 한다. 



*황금별(Gold Von Den Sternen)

뮤지컬 <모차르트> 속 넘버. 모차르트는 천재이지만 지나치게 자신을 압박하는 아버지 때문에 혼란스러워한다. 아버지는 세상은 너무나 위험한 곳이며 악이 가득한 세상이라며 모차르트를 세상에 내보기를 거부한다.
그러자 그의 후견인을 자처한 발트슈테텐 남작부인이 등장해 과거 왕자를 끔찍이 걱정해 왕자를 내보내는 걸 두려워한 한 왕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모차르트를 세상에 내보내야 하며, 모차르트에게는 아버지의 집착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라고 한다. 진정한 세상에 나가서 경험하고 느끼라고 조언하고, 그 의미와 결과를 '황금별'로 비유하는데, 여기서 나오는 넘버가 바로 황금별이다. - 나무 위키 참고


*김종욱 찾기

2006년 초연한 대한민국 창작 뮤지컬. 한국 뮤지컬 중 최초로 영화화가 이루어진 작품이다. 7년 전 인도 여행에서 만난 첫사랑 '김종욱'을 잊지 못한 여자 주인공을 위해 아버지는 '첫사랑 찾기 주식회사'에 딸을 데려간다. 이곳에서 만난 '첫사랑을 찾아주는 남자'와 여자 주인공은 김종욱을 찾는 여정에 오르는데, 실은 여주인공은 김종욱의 일기장과 신분증을 가지고 있었다. 연락하려면 얼마든지 연락할 수 있었지만 운명을 운명으로만 남겨두기 위해 회피하고 모른 척했던 것이었다. 결국 김종욱과는 이루어지지 못하고 옆에 있는 '첫사랑을 찾아주는 남자'와 새로운 사랑을 시작한다. 사랑과 운명을 마주하기 무서워하는 나와 닮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옆에 있는 사람이 아닌 환상을 쫒는 것도 나와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 나무 위키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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