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1일 차. 나는 누구인가.
나는 퇴근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출근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던 어제의 나는 이제 없다. 나는 나다. 어느 회사 어느 부서의 내가 아니라, 그냥 나다. 내 소속은 나고, 나는 내 소속이다.
나는 6월 말일 부로 퇴사했다.
아주 오랜 기간 고민하고 아주 오랜만에 하는 퇴사 같지만 실은 전 직장은 6개월밖에 다니지 않았다.
내 퇴사의 역사를 말하려면 지난해 퇴사한 전 직장 이야기를 해야 한다.
음향기기를 유통하는 전 직장에 입사한 것은 2016년 초. 직무는 홍보마케팅 파트. 홍보와 마케팅을 반반 믹스한 직무명에서 미뤄 짐작 가능한 바 대로, 나는 그곳에서 참 다양한 일들을 했다. 보도기사도 쓰고, SNS 관리도 하고, 제품 소개글도 쓰고, 제품 매뉴얼 윤문도 하고, 영상 기획도 하고, 영상편집도 하고, 홈페이지에 제품이나 회사를 소개하는 글도 썼다. 그러다 2019년 초반, 회사와 회사의 제품을 홍보하는 문화예술인 인터뷰 전문 매거진 사업이 시작되면서 난 에디터로 직무를 옮기고 싶다고 적극적으로 회사에 어필했다.
한때 나는 기자로 일을 하고 싶었다. 세상의 수많은 이야기들을 수집하고, 끊임없이 사유하고, 지식을 견고하게 다져가며 평생 자기계발을 하고 , 누군가 눈으로 보고 입으로 말하는 것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호소력 있는 문장들로 담아내며 늙어간다니 얼마나 매력적인 인생인가. 한때는 그런 생각으로 지역신문이나 일간지 매체에서 일하려고도 알아봤었다. 작은 언론사에 면접을 보고 합격을 하기도 했었지만, 나의 스펙으로는 사실상 기자보다는 영업사원에 가까운 일들을 해내야 하는 회사나, 알맹이 없는 텍스트를 기계처럼 건조하게 뽑아내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것을 알아차린 후로는 적극적으로 그 업계에 발을 들일 생각을 안하게 됐다. 그래서 입사 3년차 무렵에 홍보담당자로 이직을 하기 위해 이력서를 준비하고 면접도 보고 그러던 도중 찾아온 매거진 사업부 에디터라는 직무는 내게 마치 신의 계시와도 같았다. 하고 싶었던 기자에 가까운 일을 할 수 있었고, 영업에 대한 압박이나 텍스트를 기계처럼 뽑아내는 권태도 없을 법했다. 어쩌면 저널리즘과 에디터쉽을 겸비한 지성인으로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될수도 있었다. 그래, 이건 내 자리구나 싶었다.
예상대로 처음 하는 것 치고 그 일은 굉장히 나와 잘 맞았다. 나는 사람들을 만나 인터뷰를 하고, 내면의 이야기를 소상하게 듣고, 텍스트를 만지고 보도기사와 책자를 살피며 끊임없이 그들의 삶의 궤적을 좇아 원고를 준비했다. 퇴근 후 집에 돌아와서는 인터뷰이의 SNS, 발매 서적, 발매 음반, 작품 등을 전부 리스트업 해놓고 보고 들었다. 혹은 인터뷰하고 싶은 분들을 찾아서 인스타그램으로 DM을 보내 섭외를 하기도 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늘 갖고 있는 책 중 아무거나 하나 집어 들어 한 문단씩 읽어내려가며 하루를 시작했고, 방금 읽은 글의 문맥이나 분위기와 어울릴만한 인터뷰이를 상상해보기도 했다. 주말에 미술관에 가서도 작품을 감상한 후, 미술관 담당자에게 내 명함을 건네어 전시에 참여했던 작가를 섭외해 인터뷰를 요청하거나, 큐레이터들이 정갈하게 써둔 작품 소개글 중 맘에 드는 문구를 사진으로 찍어 집에 돌아온 후 그것을 나의 톤으로 바꿔서 인터뷰이의 상황에 맞게 써보는 연습을 했다. 그때 난 정말로 하루 종일 일을 하거나 일을 생각했던 것 같다. 마감 때는 밤늦게, 어떨 때는 새벽까지 원고를 다듬었고, 주말이면 기획기사나 새로운 형태의 컨텐츠를 구상하거나 녹취록을 풀었다. 녹취록을 다 풀어두면 평일에 더 집중해서 원고 작업을 할 수 있을 테니까. 그렇게 일하면서 어떠한 보상도 없는 회사에 대해서는 아무런 불만도 없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었고, 나는 그 일을 하는 것 자체가 참 즐거웠고,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 내기 위한 이 정도의 노력은 당연한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러는 동안 좋은 피드백도 많이 받았다. 당시 캡처해두고 동기부여용으로 쓰던 것 중 몇 개의 이미지를 공유해본다. 스스로를 자랑하는 것 같아 민망하지만 좋은 말들을 많이 들었다. 때로 정기적으로 매거진을 구독하며 글이 좋다고 칭찬을 보내는 구독자들도 있었고, 사내에서도 잘 읽고 있다며 격려해주는 직원들도 있었다. 그럴 때면 참 뿌듯했고, 내가 그 일을 하고 있다는 게 너무 좋았다. 더 잘하고 싶어서 책을 한 줄이라도 더 읽고, 새로운 문장을 한 줄이라도 더 써보려 했다. 열정적으로 사는 동안 시간이 석 달이고 넉 달이고 1년이고 2년… 참 빠르게 흘러갔다. 나는 매달 마감 때마다 나 스스로를 기꺼이 글 속에 갈아 넣었다. 힘들지만 행복했다. 거기까지는 좋았다. 그래. 딱 거기까지였다.
세상엔 알면 독이 되는, 차라리 모르는 것이 나은 비밀들이 있다. 그 비밀을 알고 나면, 결코 예전의 삶으로는 돌아갈 수 없게 되는 치명적인 어떤 것들. 퇴사 직전 두세 달 동안, 회사에 몇 가지 이슈들이 있었다. 대표가 개인 사정으로 잠시 자리를 비우며 그동안 쌓였던 경영 전반의 허술한 체계의 민낯이 드러나기 시작했던 것. 예를 들면 사내정치, 사내 언어폭력, 몇몇 중간관리자 급 사람들의 월권 행사, 갑질 등등… 나도 알고 있었지만 모른 척하고 지냈다. 알고 싶지 않았고, 내가 하는 일과는 무관하다고 생각했었고, 그냥 나는 내 일을 열심히 즐겁게 해내면서 좋은 포트폴리오를 만들고 자기계발을 해나가면 그만이지 싶었다. 문제는 그다음인데… 경영 이슈가 불거지며 누구는 저렇게 일하는데 얼마를 받는다. 누구는 저런 짓을 했는데도 얼마를 받는다면서 직원들의 연봉이 하나 둘 공개되기 시작했다. 사실 5년 차인데 난 직급이 대리였다. 그리고 나보다 한 달 일찍 입사한 다른 부서 직원은 과장을 달고 있었다. 근데 그 사람이 사내 성희롱과 언어폭력 등으로 부하직원으로부터 노동청에 진정을 당한 전력을 생각하면 진작에 그 회사를 그만둬야 했었나 싶기도 한데… 어쨌든 내 연봉은 당시 2900만 원이 되지를 않았다. 최저시급을 겨우 넘기는 수준이었다. 그리고 뒤늦게 알고보니, 나보다 늦게 입사한 사람들, 심지어 신입들 가운데 일부도 최소 3000만 원 이상의 연봉을 다 받고 있었던 거다. (퇴사한 본인들이 그렇게 이야기를 했으니 사실이다.) 간혹 나와 연봉이 똑같은 사람들도 있었는데 그들은 심지어 나보다 1년, 2년을 늦게 들어온 사람들이었다. 목소리 큰 사람은 3백을 더 받고, 이거 줄 바엔 퇴사하겠다고 우기는 사람은 5백을 더 받았다. 혹은 대표에게 아주 열심히 정성껏 아부를 떤 사람은 7백을… 나는 연봉협상자리에서 회사가 어렵다는 대표의 말에, 이 많은 직원들 책임지느라 얼마나 힘드시겠어요. 괜찮아요 다 이해해요. 저 열심히 할 테니까 다음에 회사 많이 크면 그때는 꼭 연봉 많이 올려주시는 거예요. 이딴 멍청한 소리나 하고 3분만에 나오고 그랬는데… 세상에. 수수께끼가 전부 풀렸다. 사내 운영 문제, 인력 문제, 사내 정치 같은 노이즈가 계속 발생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바로 그, 해도 해도 너무한 연봉 차별 때문이었던 것이다. 그동안 나는 정말 일만 하느라 아무것도 몰랐던 거고.
비밀을 알게 된 날, 나는 내가 트루먼쇼의 주인공같았다. 간혹 내가 일을 잘한다고 대표로부터 단톡방에 대놓고 칭찬을 받았던 전력이 있어, 사내에서는 내가 연봉을 많이 받는 걸로 착각하고 나를 질투하며 욕하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도 뒤늦게 알았다. 그걸 말해준 퇴사한 직원이 그랬다. 분명 본인이 본 나는 그들이 욕할만한 사람이 아닌데, 왜 나를 욕하는지 모르겠다고 속상하다며 앞으로도 가끔 내게 이렇게 연락을 해도 되겠냐고 말이다.
그날 나는 밤새도록, 먹지도 못하는 맥주를 연거푸 들이켰다. 나 왜 그렇게 열심히 일했지. 앞으로는 대충 일할까. 아니야. 그럼 나를 믿고 인터뷰에 참여해준 인터뷰이 분들은 뭐가 돼… 그럼 이걸 다 알고도 열심히 일하면 나는 뭐가 돼? 지금의 나는 뭐지? 머리속이 매우 혼란스러웠다. 그들이 나에게 잘못을 했으니 내가 대충 일을 한다면 나는 그들과 똑같은 사람이 될 것이었다. 나는 그런 식으로 살고 싶지 않았고, 그럴 바에는 깨끗하게 정리하는 게 낫겠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퇴사하기 전에 대표와 이야기를 한번 터놓고 해보고 싶었다. 무슨 이야기를 들려줄지, 내가 뭔가 잘못 안건 아닌지 궁금했다. 한숨도 못 자고 초췌한 몰골로 출근한 나는 곧장 대표의 개인비서(그 작은 회사에 개인비서를 고용한 것도 이제와 생각하니 좀 우습다.)를 통해 여러 번 대표와의 면담을 요청했지만 매번 거부당했다. 내게 줄 연봉을 깎아서 본인을 모셔다 줄 개인비서를 고용해 출퇴근을 하고, 억소리 나는 외제차를 타고, 건물도 사고, 본인에게 알랑거리거나 굽실댄, 또는 연봉협상 자리에서 난리를 치는 직원들의 월급에 내게서 빼앗은 돈을 얹어주고 있었을 대표를 생각하니 뒷골이 당기고 소름이 돋았다. 내게 아낀다느니, 너를 참 좋아한다느니 했던 말도 ‘네가 돈이 가장 적게 들어가서 너를 참 좋아해’ 정도의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월급이 문제가 아니라, 그런 마음으로 난 도저히 근무를 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남은 마감까지는 모두 끝내고 가는 게 맞다고 생각해 나는 11월 말까지 하고 마감을 모두 끝내고 퇴사하겠다는 의사를 전하며 11월 중순에 사직서를 냈다.
그게 전 회사와의 마지막이었다. 회사를 그만두고는 곧장 다음날부터, 그동안 하고 싶었지만 바빠서 못했던 소설 쓰기에 매진했다. 의식의 흐름을 따라 이백여 페이지를 가득 채우는 동안 짬짬이 구직사이트를 뒤적거렸다. 그러다 퇴사한 지 한 달 만에 또 취직을 했다.
어제 퇴사한, 그러니까 올해 1월에 입사한 회사는 내가 에디터 일을 그만두고 일주일쯤 되었을 때 구인공고를 보고 지원한 회사다. 나는 그 전 직장에서 연봉 대우를 제대로 못 받았다는 것에 대한 스트레스가 커서 무조건 연봉을 많이 주고, 글을 쓸 수 있는 회사에 가야곘다는 생각을 했었다. 아무튼 에디터 일이 정말 잘 맞았기 때문에 계속 그쪽 일을 해야겠다 싶었다. 그 회사에서 올린 채용공고의 업무 속성은 내가 바라던 것과는 조금 다른 듯했다. 한편으로 전 직장에서 했었던 제품 매뉴얼 번역본의 윤문과 비슷한 일 같았는데, 생소한 일이지만 한번 부딪혀 보자는 생각으로 매거진을 하며 썼던 기사 몇 개를 포트폴리오로 첨부하여 이력서를 제출했다.
그리고 다음 날인가 전화가 왔다. 나에게 전화를 건 사람은 까다로운 느낌의 중년 남성이었다. 말미에 시종일관 묻어나는 프로페셔널함에 나는 잔뜩 긴장을 했고, 그래서 일을 시작하기도 전에 아, 이 분 보통은 아니겠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분이 대뜸 그 까칠한 말투와 목소리로는 결코 할 것 같지 않았던 상냥한 이야기를 했다. 내 포트폴리오가 좋다고 말이다.
어… 그러니까, 이 프로페셔널하고 세련된 느낌의 중년 남성(아마도 이 회사에서 중요한 일을 하고 있을 것 같은)이 구직자에게 그런 말을 굳이 한다는 건 그 말이 진심이라는 건데. 내 포트폴리오, 그러니까 내가 쓴 글이 좋다고. 순간 말문이 막혀 아무 말도 안 하고 있는데 듣고 있냐고 물어보는 거다. 울컥했던 마음을 잠시 가다듬고 차분하게 이야기를 들었다. 포트폴리오는 맘에 드는데 이력서는 좀 헐겁다… 결론은 면접을 보겠냐는 내용이었다. 순간 나는 다짐을 했다. 만약에 면접을 보게 되어 이곳에 입사한다면 정말 열심히 일을 해야겠다고 말이다.
면접은 당시 코로나가 극성이라 줌으로 진행했다. 스피커가 먹통이라 모니터를 바라보며 스피커폰을 켜놓고 면접을 봤다. 처음 내게 전화를 걸고, 그날 면접을 봤던 그분은 일생동안 여러 가지 글쓰기의 경험을 통해 평생 글을 쓰고 깁고 살아온 그 회사의 편집장이었다. 섬세하고 까칠하고 까다로웠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정말 편집장 같은 사람이었다. 편집장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연상되는 어떤 이미지의 파편들을 그러모은 것 같은 그런 사람. 아무튼 조금은 부담스러운 면접이었지만, 그래도 내 글을 진중하게 읽었다는 것에 대한 감사함으로 호감과 충성심(입사 전인데 심지어..)을 갖고 난 성실하게 답변했다. 다음 면접은 대표 면접. 그때는 회사에 직접 갔다. 이런저런 과정을 거쳐서 결과는 합격. 나는 1월부터 출근을 하게 되었고, 여러 업무조율과 협의를 통해 채용공고에 올라온 것과는 다른 일을 하게 되었다. 회사에서 좀 더 나의 역량에 맞는 일을 찾아준 것이다. 나는 회사에서 위탁받아 만드는 책자의 편집자 겸 집필자로 일을 하게 되었다.
일의 속성은 비슷할지언정, 업무 프로세스는 놀랍게도 전 직장에서 취하던 방식과는 정말 정 반대였다. 나는 매거진 일을 하며 누가 알려준 적 없었지만 직접 서점에 가서 잡지와 책을 읽고 분석하며 어떻게든 무엇이든지 홀로 해결을 했는데, 새로 온 직장에서는 편집장님이 촘촘하고 구체적인 계획과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며 세심하게 내 업무를 지도했다. 매거진은 내가 하루 종일 고민한 언어와 문장들로 누군가의 세계를 구축하는 일이었다면, 편집장님과 하는 일은 상식과 지식과 경험이 풍부한 누군가에게 기초부터 배워나가며 베테랑이 되기까지 숙련하는 과정에 가까운 것이었다고 할까. 내가 의지만 있다면 원 없이 배울 수 있었고, 언론사와 매거진과 출판 경력 등등 글과 관련한 다양한 분야에서 끊임없이 연구하고 체득하며 일궈낸 편집장님의 연륜이라면 내게 가르쳐 줄 수 있는 것들이 아주 많은, 정말로 괜찮은 포지션이었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내게는 그 방식이 잘 맞지 않았다. 나는 정글북의 모글리처럼 살아왔다. 일을 할 때는 정말 내 마음대로 다 했다. 단, 그에 대한 리스크와 책임도 전부 내가 짊어졌다. 부담스럽고 힘들었지만 그렇게 하는 데에 너무나 익숙해져 있었다. 게다가 나는 성향상 답이 없는 일을 좋아한다. 답이 없는 일에 대해 충분히 고민하여 스스로 만족할만한 걸 만들어내고 누군가에게도 좋은 기억과 반짝이는 문장들을 선물해주는 게 좋아서 매거진 에디터로 즐겁게 일했던 거니까. 물론 아마도, 분명 편집장님과 함께 일하면서 나는 시간이 지나 언젠가 연륜이 쌓이면 그렇게 할 수 있었을 것이었다. 하지만 정글의 모글리에게는 혼자 일을 감당하고 짊어지며 생긴 관성이 있었다. 그 관성이 좋은 것이건 나쁜 것이건 이미 내 일부나 다름없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묘한 권태감을 느꼈던 나였다. 그 포지션은 나에게 주어진 기회였다. 머리로는 그걸 알았지만, 머리로 아는 것을 마음으로 받아들이기란 어려웠다.
고민끝에 나는 일을 그만둔다고 말했다. 내가 회사에서 한 일은 자서전 한 권의 에디팅, 금융과 관련한 일을 하는 모 기관에서 발행하는 사례 책자 한 권의 인터뷰와 집필, 그리고 현재 착수하고 있는 취약지역 개조사업 사례집. 이렇게 세 개의 프로젝트다. 아무튼 지금은 내가 할 일이 남았으므로, 남은 집필기간은 그럼 프로젝트 단위의 계약을 해서 마무리 짓는 게 어떻겠냐는 이사님의 제안을 나는 반갑게 수락했다. 그리고 어쩌면 앞으로도 이런 방식으로 회사와 또다른 일을 계속 하게 될는지도 모른다. 뭐, 내가 이번 프로젝트의 취재와 원고를 잘 마무리한다면 말이다.
며칠 전에 내 개인명함이 배송되었다. 당장 이것을 마구 뿌리며 영업을 할 생각은 없다. 그럴 의도로 만든 것은 아니다. 그동안 열심히 일을 한 것 같으니, 당분간은 난 흐르는 강물처럼 지내보려고 한다. 그렇게 지내다 자연스레 만나는 누군가에게 자기소개 정도로 건넬 용도다. 그러니 당장 굶어 죽지 않을 정도의 여유자금은 있지만 앞으로 좀 더 절약해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만약 지금 일을 주고 있는 회사의 일이 계속 이어지거나 지인들로부터 프로젝트 제안이 들어온다면 그것을 할지도 모르고, 공백기가 온다면 그 기간 동안 올해 12월에 써 내려갔던 소설의 초고를 탈고할 것이다. 나는 그것을 이왕이면 통영에서 하고 싶다. 또, 통영에 간다면 통영의 지역 언론사에 내가 왜 굳이 서울에서 버스로만 4시간 30분이 걸리는 통영을 그렇게도 자주 가는지, 통영에 대한 사랑의 마음을 소상히 써서 필름 카메라로 담은 통영의 풍경과 함께 투고하고 싶다.
나는 통영을 좋아한다. 잔잔한 바다가 좋고, 밤마다 물빛에 반짝반짝 빛을 흩뿌리는 오징어잡이 배를 바라보는 것도 좋다. 자전거를 타고 해안길 한 바퀴를 빙 돌 때의 예쁜 산책길도 좋아한다. 그래서 통영에 가서 꿀빵 판매 알바를 하면서 소설도 쓰고, 통영에 거주하시는 분들을 만나서 새로 뽑은 명함 드리면서 통영에 대한 인터뷰를 해서 브런치에 연재해볼까. 뭐 이런 생각들을 하고 있었는데, 지금의 회사에서 나를 믿고 중요한 프로젝트를 맡겨주는 것도 너무 감사하고, 일도 내가 재미있게 해낼 수 있는 것으로 보이니 이런 프로젝트가 계속해서 이어져 서울에 체류하는 기간이 길어져도 좋을 것이다. 아무렴 어때.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다. 당분간은 말이다.
내가 명함을 만든 것은 나 스스로 작가라는 타이틀에 부끄럽지 않을 만큼의 작업물을 만들고, 거기에 어울리는 삶을 살자는 다짐이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나는 인터뷰 전문 작가가 되고 싶다. 그러니 앞으로도 계속해서 인터뷰 전문 작가로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봐야겠다. 내가 일을 하는 곳은 통영이 될 수도 있고, 대전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으로, 조금은 낯선 Writer라는 단어가 적힌 명함을 꺼내어 만지작거려본다. 나는 내가 자랑스러웠으면 좋겠고, 나를 자랑스러워 할만한 일들을 많이 많이 해내며 살아갈 계획이다. 그래서 앞으로 꾸준히 브런치를 업데이트하고, 소설을 탈고해 투고를 끝내고, 매일매일 책을 읽기로 했다. 또, 당분간은 집필이나 편집 작업은 저녁때 하더라도 오전에는 필라테스와 수영을 하며 체력과 몸매를 관리할 계획이다. 그동안 살이 너무 쪘거든…
올해는 꼭 통영 스테이를 하고 싶다. 키우는 거북이를 통영에 데리고 가서, 해풍을 맞고 자란 싱그러운 풀잎들을 거북이가 마음대로 뜯어먹을 수 있게 풀어줘야겠다. 이제부터는 일 년 후의 내가 아닌 지금의 나를 위한 삶을 살기로 했다. 이렇게 마음먹은 것, 내 본성이 이끄는 방향대로 가보기로 또 한번 다짐하며 퇴사 1일차 내면의 소리를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