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도 '일'의 '일부'라서

온몸으로 비명을 지르며 깨어나던 아침

by Kyum


살려줘.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스마트폰 다이어리를 열고 가장 먼저 쓰던 말이다. 나는 날마다 출근하기 위해 몸을 일으키기가 그렇게 괴로웠다. 스트레스 때문인지 뼈마디가 욱신거렸고, 피부가 따가웠고, 심장은 쿵쿵쿵 난동을 부렸다. 정말, 정말이지 출근이 너무너무 싫었다.


퇴근 후 집에 도착하면 여덟 시쯤 되었다. 난 나가서 운동을 하고 돌아와 씻고 뭘 좀 먹고 열 한시쯤 누워 넷플릭스나 유튜브를 켜놓고 보다가 새벽 한 시쯤에 잠들곤 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일곱 시면 또다시 스마트폰 메모장을 열고 뭉크가 그린 절규처럼 온몸으로 소리 없는 비명을 내지르며 무거운 몸을 일으켰다. 어떤 아침엔 매일 그런 짓을 반복하는 내가 우스워서 실실 웃다가 긴장이 풀려 잠이 들었다. 눈을 뜨니 7시 30분. 원래 일어나야 하는 시간보다 30분이나 지나 있었고, 욕실로 달려가 10분 만에 대충 씻고 머리에 물을 뚝뚝 흘리며 핸드폰과 지갑만 겨우 챙겨 지각을 면하기 위해 헐레벌떡 뛰어나갔다. 머리에서 떨어진 물 때문에 눅눅해진 티셔츠에선 종일 덜 마른빨래의 퀴퀴한 냄새가 났다.


난 본래 아침잠이 많고, 무슨 일을 하건 밤에 효율이 높은 저녁형 인간이다. 중고등학교 때도 등교하는 게 너무 힘들었지만, 체력이라도 좋아 버텼다. 선택형 수업으로 오후 3시 이후의 수업만 골라 듣던 대학생활까지만 해도 좋았는데... 졸업하고 공기관 인턴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순간부터 나는 또다시 아침형 인간들에 맞춰 내 수명을 축내며 출근을 했다. 지하철에 올라타 한 시간 가까이 소금에 절인 중국산 싸구려 배추가 된 기분으로 견디는 축축한 출근길에, 난 늘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되는 상상을 했다. 상상 속의 나는 아이유가 되었다가, 유관순이 되었다가, 버락 오바마가 되었다. 그러다 덜컹, 지하철이 멈추고 문이 열리자마자 출근하기 위해 뛰어나가는 거대한 인파로부터 여러 번 어깨를 치이고 발을 밟히다 보면 문득 깨닫게 되는 것이었다. 나는 아이유도 유관순도 버락 오바마도 아닌, 겨우 내 생활이나 연명하며 살아가는 자본주의의 노예라는 현실을.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난 무려 10년이나 회사생활을 했다. 그때의 난 어떻게 버틸 수 있었을까. 확실한 건, 월급이 유일한 동력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내겐 일 자체에 대한 나름의 애정이 있었다. 정확히는, 일을 하는 과정과 결과로 인한 성취와 보람을 사랑했다. 또, 사람들과 팀 단위로 함께 어려운 일을 해내며 타인을 이해하거나 혹은 나 자신에 대해 좀 더 알게 되는 순간들도 사랑했다. 그리고 그 경험들은 출근의 고통과 자본주의의 노예가 가진 절망감으로부터 무뎌질 수 있는 나름대로 근사한 처방이었다. 물론 약효는 잠깐이었다. 말이 통하지 않는 팀원, 사내정치 등으로 피로가 누적되어 시간이 갈수록 출근의 고통이 점점 더 무거워지곤 했으니.


지금은 어떤가. 정규직 일을 그만둔 후, 나는 현재 프리랜서 형태로 프로젝트 단위의 일을 진행하고 있다. 정확히 시간을 측정해본 것은 아니지만 체감하기론 회사에 다닐 때보다 조금 더 오래, 더 많이 일하는 듯하다. 하지만 일을 하다 잘 풀리지 않을 때는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잠시 멈추고 영화를 보거나 책을 읽기도 하고, 낮잠을 자다가 저녁때 일어나 일에 집중하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인간관계에서 오는 미묘한 기류도 굳이 신경 쓸 일이 없다. 물론 이 안에도 클라이언트로 인한 고충은 있지만, 마감까지 꾸준히 페이스를 잃지 않고 마라톤 하듯 달리다 보면 난 결국 이 일을 완만히 잘 끝내고 돈을 받게 될 것이다. 그거면 충분하다. 고정수입이 주는 안정감은 없지만, 하루하루가 편안하고 충만하며 일에 대한 집중도도 훨씬 높은 요즘이다.


지금의 내가, 앞으로 출근이라는 행위를 다시 할 수 있을까. 일에 대한 애정이, 사람들과의 관계의 즐거움이 출근의 고통을 압도할 수 있을까. 코로나로 어디 취직하기도 어려운 요즘 같은 시대에 배부른 소리 인지 모르겠으나, 앞으로 내 시간의 70퍼센트 이상을 통제받는 직장 생활은 이제 그만하고 싶다. 나는 통제받는 생활을 하지 않기 위해 아마도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일을 할 것이다. 출근이라는 일을 피하기 위해 출근하지 않는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이다. '일'의 '일부'를 피하기 위한 '일'이라고 하면 맞는 표현일까. 그러고 보니 궁금하다. 직장을 다니는 사람들 중 과연 몇 퍼센트나 출근이라는 행위를 좋아하고 있을지 말이다. 단언컨대, 백 명 중 구십 오명은 출근을 싫어할 것이다!


Tip. 저는 체력이 좋지 않고 스트레스에 취약한 편입니다. 하루에 잠을 아홉 시간은 자야 피로가 풀리고, 사람을 만나고 나면 집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가져야 에너지가 충전됩니다. MBTI 검사를 하면 늘 ENTP유형으로 나오는데요, 테스트 결과가 맞다 하더라도 저는 E형중 가장 I에 가깝고, T형중 가장 F에 가까운 듯해요. 한때는 이런 저 자신이 창피하고 부끄러웠어요. 그런데 "부끄러워할 필요가 있나? 어차피 사람은 다 죽는데. 한번 살다 가는 인생, 이러면 어떻고 저러면 또 어때!"라는 생각에 그냥 솔직한 모습으로 살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보시다시피 이런 글을 쓰게 됐어요. 나 자신을 인정하니 마음도 편하고 현실적이고 새로운 솔루션에 도달할 수 있었는데요. 만약 제가 다음번에 취직을 한다면 스트레스를 덜 받고 집에서 가깝게 갈 수 있어 체력 소모가 덜한 곳에서 일을 해야겠다는 결론입니다! 당연한 이야기 같지만, 그동안 나 자신을 속이고 살았던 탓에 저는 이런 결론을 내는데 참 오래 걸렸어요. 주어진 현실에 완전히 만족할 수는 없더라도 적어도 현실을 '인정'은 할 수 있어야 그다음 단계로 나갈 수 있다는 것을 한참만에 깨닫게 된 거죠. 만약 지금 인생의 갈피를 잡지 못해 방황 중이라면, 먼저 나 자신을 인정하고 포용하는 것부터 시작하여 정말 내가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를 꼭 살펴보시길 바랄게요. 여러분의 앞날에 축복이 가득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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