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장님의 토마토

토마토를 좋아하는 건 아닙니다만

by Kyum


올여름, 나는 전국 각지의 오지마을 열 군데를 다니며 마을 이장님들을 취재했다. 국가 복지사업을 통해 진행한 해당 지역 생활 인프라 개선사업 결과에 대한 사례집 제작을 위해서였다. 내가 다닌 마을들은 보통 지역 중심지 번화가에서 차로 한 시간 이상이 소요되는 산골짜기에 있었고, 대부분의 마을 주택과 담장들이 1960년대에 지어진 후 거의 수리를 하지 않아 상태가 몹시 좋지 않았다. 심지어 어떤 마을은 사업 전에는 비가 올 때마다 일부 지역이 수시로 물에 잠기는 등 위험한 환경에 노출되어 있었다. 나는 그 일을 하며 복지사업을 통해 주민들의 생활안전이 개선되고, 마을이 예전보다 좋은 환경으로 변한 것에 안도감을 느끼게 되었다.


내가 가야 할 곳들은 대중교통으로는 갈 엄두도 낼 수가 없었다. 나는 사업 위탁업체 직원인 김무명 씨가 운전하는 법인차량을 탔고 그 사업에서 나는 취재와 집필을, 김무명 씨는 운전과 사진 촬영을 담당했다. 우리는 사례집 제작 일정 등 몇 가지 이유로 2주 안에 열개 마을의 취재를 전부 마쳐야 했는데, 하루에 한 군데만 가기도 버거운 일정을 어떤 날은 하루에 두 군데씩 가기도 했다. 그렇게 두 군데를 가게 되면 오전 여섯 시에 집에서 나갔다가 오전 영시에서 한시가 다 되어서 집에 들어올 때도 있었다. 나와 김무명 씨는 상큼하게 출발하는 아침과는 달리 돌아오는 길에는 둘 다 녹초가 되어 거의 말을 안 했다. 그래도 우리의 출장에는 가는 길에 차 안에서 수다를 떨거나 휴게소에 들러 호두과자와 커피를 사 먹고, 취재를 마친 후 서울로 복귀하기 전에 지역 맛집(예를 들면 담양 떡갈비 등)에 들러 저녁식사를 하는 등 소소한 즐거움이 있었다. 7월의 시골마을에는 땡볕이 살벌하게 쏟아졌지만 보통 산자락을 끼고 있어 바람이 시원하게 불었고, 회사 법인차량이 독특하게도 뚜껑이 열리는 벤츠여서 간혹 맑은 날 산길을 달릴 땐 뚜껑을 오픈하고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산바람을 맞으며 출장을 갔다.


2주간의 일정을 마무리하고 두 개 마을을 마지막으로 취재가 끝나던 그날, 나는 오전 여섯 시에 집에서 나와 김무명 씨가 나를 픽업하기로 한 장소에 오전 일곱 시 반에 도착했으며, 목적지 도착까지는 차를 타고 다섯 시간가량이 소요될 예정이었다. 우리는 두시에 마을 이장님을 만나기로 했는데 그날따라 서울에서 지방으로 빠지는 구간에서 교통체증이 있었고, 중간에 휴게소에 들러 점심을 먹을 시간이 사십 분 정도 있었다. 열한 시 반쯤 휴게소에 도착해 햄버거를 주문했는데, 하필 햄버거가 주문이 밀려 30분 만에 나와 버렸다. 먹는 속도가 빠른 김무명 씨와는 달리 밥 한 끼 제대로 먹는데 한 시간이 걸리는 나는 햄버거를 세 입 정도 먹고 감자 몇 개를 집어 입에 욱여넣고는 콜라만 손에 쥐고 다시 차에 탔다. 취재하러 가는 길에 나는 콜라를 마시며 해당 지역 담당 공무원으로부터 받은 사전 자료를 검토했다. 그 마을 주민들은 대부분 농사를 짓는데, 특히 토마토 농사가 잘되며 토마토는 그 지역의 특산품이었다. 나는 토마토를 좋아하지 않는데, 그래도 건강을 위해 먹어야 한다는 생각을 늘 한다. 물론 생각만 한다. 실은 토마토를 갈았을 때의 비주얼과 시큼한 향이 끔찍한 뭔가를 자꾸 생각나게 하기 때문에(그게 뭔지는 차마 못 쓰겠다. 토마토 주스를 좋아하는 분들께는 죄송합니다.) 난 토마토를 좋아하지 않는다. 나에게 토마토란, 몸에 좋으니 꾸준히 먹어야 한다는 부채감을 안겨주는 부담스러운 채소인 것이다.


점심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부지런히 달려간 덕분에 우리는 토마토의 마을에 늦지 않게, 아니 예상보다 일찍 도착할 수 있었다. 시간은 오후 한 시 반이었고, 10분 정도만 더 가면 약속 장소인 마을회관이었다. 나는 이장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혹시 좀 일찍 와주실 수 있는지 물어보려고. 그런데 신호음이 여섯 번 이어지도록 이장님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화장실에 가셨나 싶어 오 분 후 다시 전화를 걸었다. 그러는 동안 우리의 차는 약속 장소인 마을회관 앞 주차장에 도착했고, 이장님은 나의 두 번째 전화도 받지 않았다. 나가기 전에 씻고 계신가 싶어 나는 문자 메시지를 남겼다. 이장님 안녕하세요. 오늘 만나기로 한 인터뷰 작가입니다. 저희 도착했습니다. 메시지 보시면 전화 부탁드립니다.라고. 그러고는 김무명 씨가 주차를 하는 동안, 나는 한번 더 이장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이장님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시간은 이제 우리가 만남을 약속한 오후 두 시였다. 두 시에 마을회관 앞으로 이장님이 나타나실까 싶어 문 앞에서 십오 분 동안 서있었다. 하지만 회관은 굳게 잠겨 있었고, 사람은커녕 비둘기 한 마리도 나타나지를 않았다.(그러고 보니 시골에는 비둘기가 없다. 비둘기는 도심에만 사는 동물일까.) 김무명 씨는 혹시 회관으로 올지 모를 이장님을 회관 앞에서 기다리기로 하고, 나는 회관에서 걸어서 3분 거리에 있는 주민자치센터로 갔다. 그곳에는 직원이 두 명 앉아 있었는데, 마음이 급했던 난 다짜고짜 그들 중 한 분에게 명함을 건네며 이 마을 이장님과 두시에 인터뷰를 하기로 한 작가인데 연락이 되지 않는다고, 혹시 연락할 방법이 있겠느냐고 물었다.


- 아... 이장님 원래 전화 잘 안 받으셔요. 제가 이장님 댁으로 전화 걸어볼게요. 잠시만요.


내 명함을 받고 자초지종을 들은 직원 한분이 이장님 댁으로 전화를 걸었고, 이장님은 집전화도 안 받는 듯했다. 나는 서울에서 다섯 시간 걸려 이곳에 왔다고, 지난주에 약속했고 어제도 메시지를 보냈으니 오늘 인터뷰를 꼭 해야 한다고, 이장님의 집주소를 알려달라고 했다.


나는 이장님의 집주소가 적힌 종이쪽지를 손에 쥐고 마을회관 앞으로 걸어가 김무명 씨를 만나 다시 뚜껑이 열리는 벤츠에 탔다. 내비게이션으로 검색해보니 마을회관에서 이장님 댁까지는 차로 15분 남짓 소요되는 20km 정도 떨어진 거리로, 생각보다 멀어서 혹시나 이장님이 우리에게 오는 도중 우리가 이장님 댁으로 가게 되어 길이 엇갈리지는 않을까 싶어 출발하기 전에 차 안에서 세 번 더 전화를 했다. 하지만 이장님은 받지 않았다. 그렇게 총 열 통의 부재중 전화를 남긴 후, 나와 김무명 씨는 구불구불하고 좁은 산길을 따라 이장님 댁으로 갔고 출발할 때 시간은 오후 두 시 사십 분이었다. 나는 우선 전화로 그날의 다음 인터뷰 일정을 한 시간 미루고 창밖을 보며, 삼림을 이루고 있는 울창하고 빽빽한 나무들 사이에서 별안간 불쑥 나타나는 이장님의 모습을 상상했다. 혹은 우리가 목적지에 도착해 문 밖에서 벨을 다섯 번 눌렀을 때, 부스스하고 희끗한 머리로 흰색 러닝셔츠에 회색 바람막이를 걸치고 문을 열어줄 초로의 이장님을 상상했다. 전자를 상상하니 무서웠고, 후자를 상상하니 무섭진 않았지만 조금 짜증이 났다. 무슨 사정이 있으시겠지. 라며 마음을 가라앉히자, 이번에는 일면식도 없는 이장님의 안위가 걱정되는 거였다. 만약 이장님이 혹시라도 독거노인이라면...


- 에이 설마, 가족들이랑 연락하고 지내겠죠. 그런 건 아닐 거예요.


김무명 씨가 말했다. 그렇지. 가족이 있으시겠지. 옛날 사람들(우리 부모님 세대나 그보다 조금 윗세대)은 대부분 신기하게도 결혼을 했고 더욱 신기하게도 다들 아이를 둘, 셋씩 낳고 사셨으니. 그리고 그날까지 내가 취재차 만난 다른 모든 이장님들은 결혼을 하고 자녀도 있었으니 이번에 만나는 이장님도 그렇겠지 싶었다. 한편으로 나는 어쩌면 결혼을 하지 않을 수도 있으니 내게 무슨 일이 생겼을 때를 대비해 돈도 잘 모아 두고 비상시의 대응책을 마련해 둬야겠어.라는 생각을 하는 동안 우리의 뚜껑 열리는 벤츠는 주민자치센터 직원으로부터 건네받은 주소지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린 뒤 우리는 정말 여긴가? 여기가 맞나? 싶어 한참을 두리번거렸다. 그곳에는 집이라고 부를만한 주거용 건축물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수십 개의 비닐하우스와 창고 하나가 전부였다. 혹시 이사가신건가 싶어 정신이 아득해질 무렵, 분홍색 스웨터를 입은 허리가 구부정한 할머니 한분이 유유히 근처를 지나가시기에 나는 얼른 뛰어가 할머니께 물었다. 어르신 안녕하세요. 이장님 뵈러 왔는데, 혹시 이장님 댁 어딘지 아세요? 여기 근처라던데. 그분은 검지 손가락으로 비닐하우스 저 너머의 어딘가를 가리켰다. 나는 할머니가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며 아. 이쪽 좁은 길로 쭉 들어가면 이장님 댁이 나오는군요?라고 말하다 고개를 돌렸는데 할머니는 나를 지나쳐서 저만치 앞으로 걸어가고 계셨고, 나와 김무명 씨는 비닐하우스가 일렬종대로 줄지어있는 그곳에 난 작은 길로 들어섰다.


한여름인 데다 비닐하우스로 인한 온실효과 때문에 너무 덥고 습해 금방 온몸이 끈적거렸다. 나는 입고 간 리넨 재킷을 벗어 팔에 걸치고 두리번대며 이장님을 불렀다. 이장님. 계세요? 세요? 여기 아무도 없나요? 나요? 누군가의 대답 대신 비닐하우스 안쪽 깊숙한 곳까지 들어갔다가 반사되어 메아리를 만드는 내 목소리만 허무하게 요동쳤다. 나는 머릿속으로 이장님이 이곳에 계시지 않을 경우의 대책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인터뷰는 전화로 진행을 하자. 사진은 어떡하지. 아니면 아까 방문했던 주민자치센터 직원분들에게 인터뷰를 부탁해볼까. 아 아까 그 할머니 붙잡고 인터뷰할걸 그랬나... 그러면서 입으로는 이장님을 애타게 부르는 동안, 김무명 씨가 비닐하우스 안에서 커다란 농업용 가위를 들고 초록색 토마토 나무 곁에서 토마토의 성장을 방해하는 잔가지와 이파리들을 정성스레 제거 중인 누군가를 찾았다.


- 혹시 박땡땡 이장님 맞으세요?

- 에. 누구?

- 저희 오늘 인터뷰 진행하기로 한...

- 아. 그거. 오늘인가?


이장님이 돌보는 토마토들은 이제 막 열매를 맺기 시작한듯했다. 크기는 작아도 굵고 씨알이 좋은 열매임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단단하고 매끈매끈한 초록색 토마토, 그런 토마토를 돌보는 이장님의 섬세한 손길, 비닐하우스의 하얗고 투명한 비닐과 햇볕의 조합이 만든 이장님 어깨너머의 백색 후광까지. 내 눈앞에 펼쳐진 그 광경은 믿을 수 없을 만큼 평온하고 목가적이었다. 이장님은 초록색의 작은 씨알이 빨갛고 커다란 열매로 자랄 때까지 묵묵히 그것을 바라보고 돌볼 수 있는 여유롭고 느긋한 성품을 가진, 그러니까 무르익은 열매가 아름다운 결실과 수확을 맺기까지의 인고를 자신의 삶 속에서 몸소 깨우쳐 실천하며 살아가시는 분은 무슨... 하. 시계를 봤다. 이제 시간은 세시였다. 약속 시간보다 한 시간이 지난 후였다. 그래, 어제 메시지를 보낼 게 아니라, 전화를 해야 했어. 이건 전화를 하지 않은 내 책임도 있어. 하고 나는 쿨하게(?) 넘어가기로 했다. 어쨌든 일어난 일이니까. 어쩌겠는가. 더구나 이장님을 무사히 만나지 않았는가. 나에게 그날 가장 중요한 일은 이장님을 만나는 거였고, 이장님에게 그날 가장 중요한 일은 비닐하우스에서 성글게 피어난 토마토 열매를 돌보는 것이었다. 그 결과로 우리는 토마토 열매 앞에서 만나게 된 것이다.


- 이장님, 왜 전화 안 받으셨어요.

- 아. 내가 폰을 집에다 두고 나와서... 이런. 허허. 미안합니다. 그런데 어쩌나. 시원한 음료도 없고.


시원한 음료를 주신다는 걸로 듣고 목이 말랐던 나는 저는 물 한잔만 부탁...이라고 대답하려다 비닐하우스 근처에 냉장고가 없음을 확인하고 괜찮습니다. 그럼 바로 인터뷰 시작할까요.라고 말했다. 이장님은 비닐하우스 맞은편에 있던 셔터가 활짝 열려있는 창고 안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비닐하우스와 몇 발자국 떨어져 있을 뿐인데도 창고 안은 그늘이 져서 시원했고 습하지도 않았다. 벌레들도 사람처럼 시원한 곳을 좋아하는지 창고 안에는 파리며 모기며 온갖 알록달록한 벌레들이 화려한 비행을 하고 있었고, 나는 제발 다른 곳으로 가주기를 바라며 그들을 향해 몇 번 손을 휘저었다. 그러자 손바닥에 벌레들이 툭툭 부딪히면서 손에 까만 뭔가가 묻었고, 그걸 본 나는 소름이 돋았다. 이장님은 빨간색 플라스틱 의자 두 개를 창고 안 깊숙한 곳에서 꺼내왔는데, 의자에는 먼지가 하얗게 앉아있었고 휴지가 없었던 난 오른손으로 의자 위에 묻은 먼지를 대강 털어냈다. 그러자 날이 더워 땀으로 끈적해진 손바닥에 까끌한 먼지가 쩍쩍 달라붙었고, 오른손을 왼손으로 털어냈더니 이번에는 먼지가 왼손바닥과 오른손바닥 전체에 묻어버렸다. 녹음 기능을 켜기 위해 가방에 있던 스마트폰을 꺼내자 먼지는 가방에도, 스마트폰에도 달라붙어 번지며 내 검정색 스마트폰 케이스와 선물받은 후 고이 모셔두고 소중히 여기던 검정색 가방의 일부를 회색으로 만들어 버렸다. 나는 작게 한숨을 쉬고, 일을 차질 없이 끝내고 싶어 일부러 입꼬리를 올렸다. 기분이 좋지 않을 때 입꼬리를 올려 웃는 얼굴을 하며 마음을 가라앉히는 건 내가 사회생활을 하며 오랫동안 요긴하게 사용해온 일시적인 감정 컨트롤 기술이다.


- 이장님. 어떤 일 하고 계세요?

- 농사꾼이죠. 시골에서는 다 농사지어요. 지금은 토마토.


이장님은 학창 시절부터 환갑이 넘을 때까지 줄곧 그 마을에서 살아왔고 오랫동안 농사를 지었다. 인터뷰가 진행되는 한 시간 동안 이장님은 나의 질문 외에도 농사일의 기쁨과 슬픔에 대해 솔직하고 담백하게 여러 이야기들을 해주셨다.


- 내가. 거. 이십 대 때는 우리나라 농업 괜찮지 않을까 했는데 막상 해보니 그때나 지금이나 살기 힘든 거는 똑같아요. 변한 거 하나 없고. 마을도 그대로지. 사람도 그대로지.

- 마을복지 사업하면서 경관도 개선되고 주택도 개조하고 여러모로 좋아졌잖아요. 그 후엔 어땠어요? 마을 분위기도 좋아졌을 것 같은데.

- 많이 나아지긴 했지. 근데 마을이 바뀌려면 사람들이 달라져야죠. 서너 명만 열심히 할 게 아니라 전부 다 같이 으쌰 으쌰 해야 되는데 그게 안되면 그냥 사는 건 똑같아요. 힘들어요.


나는 이장님으로부터 시골에 관한 긍정적인 이야기를 끌어내려고 계속 질문을 던졌다.


- 시골 인심이라는 게 있잖아요. 도심에 사는 저는 가끔 마을 사람들이 공동체 만들고 다 같이 모여서 뭔가 해내는 모습 보면 참 좋...

- 어휴. 시골 인심도 다 옛말이고, 외지인들이 시골 인심 기대하고 귀농했다가 실망하고 서로 불신하고 알력 다툼하고... 그런 것 보는 것도 힘들어요.


나의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다. 그래도 어쨌든 복지사업을 하면서 마을의 경관을 비롯해 많은 부분이 개선된 점이 명확했기에 그 부분에 대한 질의응답은 완만하게 진행되었다. 인터뷰를 무사히 마친 후 사진을 찍었는데, 나와 김무명 씨의 그날 소원은 이장님이 카메라를 보며 활짝 웃는 거였다. 비닐하우스 토마토 나무들을 배경으로 활짝 웃으며 카메라를 바라보는 이장님의 모습을 인터뷰 메인사진으로 하고 싶었으니까. 하지만 이장님은 웃으며 사진 찍는 것을 어려워하셨고, 세명이서 모두 노력함에도 이장님의 표정은 내내 어색했다. 그러는 사이 내게 전화 한 통이 걸려왔는데, 내가 전화를 받는 동안 이장님과 김무명 씨가 뭔가를 얘기하며 소리 내서 껄껄 웃고 있는 게 아닌가. 이장님은 활짝 웃으며 카메라를 바라보고 있었고, 그 틈에 김무명 씨는 연달아 사진을 찍어냄으로써 우리의 그날 업무는 종료되었다. 이어 곧장 다음 장소로 이동해 두 번째 인터뷰까지 모두 마친 우리는 녹초가 되어 저녁이고 뭐고 일단 서울로 가자며 차에 탑승했다. 한참을 말없이 서울을 향해 가던 중, 나는 김무명 씨에게 물었다.


- 무명 씨, 아까 토마토 밭에서 이장님한테 무슨 얘기 한 거예요?

- 네?

- 무명 씨가 뭐라고 하니까 이장님이 웃던데요. 사진 찍을 때.

- 아. 최근에 있었던 가장 행복한 일을 떠올려보시라고 했죠. 근데 없다고, 사는 거 다 똑같지.라고 하시더라고요.

- 행복한 일 떠올려보라는 거 무명 씨가 다른 데서 인터뷰 사진 찍을 때 늘 하던 말이잖아요. 그래서요?

- 그러고 별말 안 하길래 다른 사진 찍으려고 토마토를 사랑스럽게 바라봐달라고 했더니 그때부터 웃으셨어요. 그래서 저도 웃었죠. 그렇게 같이 웃다가 이장님 보고 카메라 봐달라 하고 그 틈에 정면 사진 찍었고.


그날 이장님을 웃게 한 건 열매를 맺은 토마토였을까. 아니면 최근에 있었던 가장 행복한 일이었을까. 그것도 아니면 최근에 있었던 가장 행복한 일을 떠올리다가 문득 뭔가가 어이없어진 걸까. 나는 어이없을 때 웃음이 나오는데 이장님도 그런 게 아니었을까. 뭐, 근거는 없지만.


- 무명 씨, 토마토 좋아해요?

- 아뇨. 저 야채는 그닥.

- 이장님이 키우는 토마토 맛있을까요? 나 주문해서 먹어볼까 하는데요.

- 아까 맛있다고 했어요. 우리 가기 전에. 못 들었구나.

- 네. 근데 자기가 심고 키운 토마토 맛없다고 말하는 농부도 있어요?

- 그렇지만 저분은 거짓말을 할 것 같진 않아서.

- 그런가.


이장님이 거짓말을 할지 안 할지 까지는 알 수 없지만, 비닐하우스의 깔끔한 모양새와 생글한 토마토 나무들과 토마토를 세상 소중하게 바라보던 이장님 눈빛과 그날의 목가적인 풍경으로 짐작하건대 아마 토마토 맛이 좋다는 이장님의 말은 사실일 것이다. 그래서 집에서 엄마가 늘 사다 놓고 갈아먹는 토마토가 다 떨어지면 이장님께 토마토를 주문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엄마는 내가 주문할 틈도 없이 토마토가 떨어지자마자 새로운 토마토를 자꾸자꾸 주문하는 바람에 몇 달째 이장님께 전화를 못 드리고 있다. 엄마. 토마토 그만 사. 내가 살게.라고 말해도 엄마는 한번 살 때 대량으로 한 박스를 주문해놓고 어머나. 깜빡했어.라고 해버리니, 이거 참. 나는 언제쯤 온화한 이장님의 비닐하우스에서 자란 토마토를 맛볼 수 있을까.


그리고 우리의 차는 무사히 서울에 도착했다. 중간에 휴게소에 들러서 저녁도 먹고 호두과자도 샀다. 첫 번째 일정이 한 시간 지연되었지만, 일을 마치고 집에 도착한 시간은 이틀 전과 다름없는 새벽 한 시였다.

IMG_8589.JPG 2021.7. 이장님의 토마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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