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치 Nov 20. 2023

어쨌든 계속하게 하는 힘

재미는 없지만 어쩌면 게임? <듀오링고>

신기한 일이다. 내가 어쨌든 400일 넘게 영어 공부를 하고 있다. 녀석은 위젯에서 언제나 나를 초조하게 기다린다. 자기들의 친구들을 동원해서라도 알람을 계속 보낸다. 부엉이보다는 집 주변에서 울어대는 까마귀나 까치 같다. 때로는 알람이 귀찮아 무시할 때도 많다. 그래도 지금까지 왔다.


<듀오링고>는 모두 알다시피 영어 학습앱이다. 하지만 난 왜 이걸 게임이라고 봤을까?


1. 랭크 시스템

<듀오링고>에서는 각 리그에 따른 랭크를 보여준다. 오늘 하루 문제를 풀면 그 개수에 따라서 경험치를 제공한다. 그 경험치가 쌓여서 내 등수가 된다.

2. 게임 내 스테이지를 연상시키는 학습 진행 표시

3. 지금까지 학습을 지속해 온 날짜에 대한 가치 인식

흔히 말하는 매몰 비용이라는 개념이 여기에 들어갈 수 있겠다. 듀오링고는 100일 이상 넘어간 사람들이 지금까지 쌓아온, 지속해 온 날짜를 잃는 것에 대한 불안이 있을 거라 예상한다. 이를 기반으로 혹 학습을 못한 날이 생겨 일정 기록이 끊길 우려가 있게 되면 다이아를 통해서 이를 커버할 수 있도록 해두었다.


심지어 학습에 대한 알림을 다채롭게 주는 편인데, 안드로이드 위젯은 부엉이가 다양한 표정을 지으면서 협박 아닌 협박을 한다.

이건 완료했을 때 얼굴이다. 표정이 가증스럽다.

4. 친구 시스템

마지막으로 친구 시스템. 예전 카카오톡 기반 게임으로 하트를 구걸하던 애니팡 사태 정도는 아니다. 하지만 친구와 함께 공동 퀘스트를 진행한다. 한편으로 학습이 부진한 친구에게 알림을 보낼 수도 있다. 개인 퀘스트 성공에 대해서도 친구에게 알림이 가기 때문에 이를 축하해 줄 수도 있다.


이렇게 면면을 분석하다 보면 내 입장에서는 <듀오링고>는 게임이 아닐 수 없다. 다만 재미있는가, 없는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있을 수 있다.


나는 <듀오링고>를 통해서 내 주변에 있는 모든 것들에 대해서 게임화(Gamification:게이미피케이션)하려는  사람들의 욕구를 훔쳐본다. 회사를 운영할 때 제일 많이 들어오는 의뢰는 교구로서의 게임 개발이다. 오히려 엔터테인먼트로서의 게임은 온던히 자본과 노력으로 완수해야 하는 사업이 된다.


게임화에 대해서 게이머들은 좋게 받아들이지 않는 편이다. 일단은 재미없는 게임이라서가 제일 큰 거 같다. 재밌는 게임이라면 그런대로 넘어가는 듯 보인다. 나 역시 그렇게 판단하고는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우려스럽다.


게이머는 '게임'이라는 단어에 반응한다. 이게 '게임'이라고 지칭되었을 때는 마치 달리기 트랙에서 출발 신호를 들은 듯한 느낌을 받는다. 다시 풀어보자면 게이머는 '게임'이라는 장르에 이미 익숙해져 있는 사람들이다. 내가 마주하는 콘텐츠가 '게임'이라 지칭되면 이에 해당하는 여러 감각을 불러일으킨다.


게임이기 때문에 넘어갈 수 있는 사항들. 이건 단지 게임이며, 현실과는 유리되어 있기에 플레이어는 다양한 선택과 실패를 경험해 볼 수 있다. 하지만 이게 실제 현실에 영향을 미치는 일이라면? 게임과 비슷한 형태로 디자인된 회사 내 승진 경쟁 방식은 효과적일 수 있으나, 이게 실제 올바를 수 있는가? (점수를 통해서 랭크화 시키고, 이를 공개적으로 발표하는 방식을 상상해 본다. 게임화 방법론에서 흔히 사용하는 게임보드 방식의 변형이기도 하다)


게임은 현실 속 다양한 행동과 관계 양상을 추상화시킨다. 수치화할 수 없는 것을 게임을 위해서 수치화시킨다. 때로는 현실을 왜곡한다. 게임을 편하게 즐기기 위해 가치를 세분화하기보다는 뭉뚱그려 포함시킨다. (도시 내에서의 행복은 다양한 가치로 평가되지만, 몇몇 게임에서는 돈이 많이 들어오는 도시가 행복도가 높은 도시라 여긴다. 공공복지에 쏟을 돈이 많을 수 있다는 부분에서는 시민의 행복도에 영향을 미칠 수 있지만, 정말로 이게 그렇게 연결되는가?)


<듀오링고>처럼 학습 게임은 안 되는 걸까? 살아가는 삶 속에 게임이 더 깊숙이 들어와서는 안 되는 걸까? 그렇지는 않을 거다. 하지만 게임이 사람들을 몰입시키고, 행동을 유발하는 점에서 점점 여러 산업군에서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다. 점차 연구가 진행되면 다양한 형태와 목적을 가진 게임이 등장하리라 본다. 그럴 때 게임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나는 그전부터라도 게임을 재미로만 평가할 게 아니라 다양한 측면에서 평가하고, 토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좋아하는 게임이 나쁜 목적과 행동을 유발하기 위한, 누군가의 삶을 망칠 수 있는 메시지를 전파하는 도구가 되도록 놔둘 수 없다.

이전 11화 모든 것이 망하고 난 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