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쇼니 Nov 28. 2024

프롤로그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우리의 지금 이 시간

우리 엄마의 별명은 나무늘보다.

여러 스킬을 보유하고 있는데 사안의 경중과 상관없이 결정을 망설이기, 나무 위에 늘어진 나무늘보처럼 소파에 누워있기 등이 있다. 하지만 가장 대표적인 스킬은 하기 싫은 일을 열심히 미루는 것이다. 예를 들면 설거지, 주방 청소 등이 있겠다. 그런데 평생을 전업 주부로 살아왔는데 집안일을 열심히 미루시니 어이가 없을 때도 있으나 그럼에도 항상 가정의 따뜻함을 유지하시니 더욱 놀라운 스킬이 아닐 수 없다.


오래전부터 엄마의 건강을 위해 운동을 적극 권유하였지만 우리의 나무늘보는 노련한 스킬로 여러 차례 거부권을 행사해 왔었다. "나이 들면 목이고 허리고 다 아픈 게 정상이야~", "무슨 운동하는 게 수십 만 원을 내, 그 돈이면~" 진짜 한국 엄마들한테 "그 돈이면~"이란 말 자체를 금지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가치환산법이 전 국민 효자효녀들의 발작버튼인데 말이다. 하여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만큼은 엄마의 핑계를 무장해제시킬 수 있는 준비가 되었기에 성공 가능성이 높다는 확신이 들었다. 마지막 히든카드가 있었기 때문이다.


엄마 나 지금 잠시 직장 쉬고 있잖아. 이 시간 엄마랑 추억 많이 쌓고 싶어.
알잖아, 우리한테 이제 이런 시간 다시 오지 않을 거란 거.



30대에 접어들면서 엄마와 나의 시간은 반대로 흘러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날개를 펼치고 성큼성큼 사회에 발을 딛고 걸어가는데 우리 엄마는 조금씩 작아지고 연약해지는 것만 같았다. 어떻게든 시간을 붙잡고 싶지만 그건 인간이 할 수 없는 영역이기에 나는 각자의 시간에서 서로를 붙잡아보기로 했다. 각 팀의 운동선수들이 마주 보고 선 채 반대로 걸어가며 하이파이브하는 것처럼.


그제야 나무늘보는 무겁고 느린 첫 발걸음을 옮기게 되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