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드너에게 피어오르는 마음
운동을 마치고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필라테스 해보니 어때? 생각보다 훨씬 잘하는 것 같더라!"
"진짜? 나 잘하지?! 음... 너무 뿌듯해서 좋아."
필라테스하고 나면 몸이 가볍고 맑아서 좋다는 말은 몇 번 들었는데 뿌듯하다는 말은 예상치 못했던 대답이라 조금 더 엄마의 이야기를 자세히 들어보고 싶었다.
"오 어떤 점이 뿌듯해? 우리 아직 수업 두 번밖에 안 해서 어떤 성과를 이루거나 그런 건 아니잖아."
"이런 운동이 처음이라 잘 따라 할 수 있을지... 너에게 민폐는 아닌지 걱정이 많았거든. 그런데 곧잘 따라 하는 내 모습이 뿌듯하더라고~"
엄마와 듀엣 필라테스를 시작하면서 나름의 목표는 엄마와의 추억을 쌓는 것과 엄마의 건강 회복이었다. 그런데 엄마가 스스로 성취감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 나에게도 소소한 감동이 되었다. 우리네 삶을 돌아보면 스스로 성취감을 느끼던 때가 언제였던가. 직장에서도 성취감이 동력이 되기보다는 일을 그르치지 말아야 한다는 부담과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실패에 대한 두려움으로 스스로를 채찍질했던 일이 얼마나 많았던가. 그래서 우리는 뿌듯하다는 그 감정, 그 단어를 입에 올리지 못했던 것 같다. 실존하는 단어이지만 왠지 모르게 나의 사전에는 없는 듯한 기분.
우리 엄마, 나무늘보. 그녀의 삶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대단한 성취감은 어울리지 않는다. 자신이 속한 세계의 테두리 밖은 곁눈질도 주지 않으며 주어진 것에 자족하는 삶을 살아왔기에 새로운 시도와 도전은 그녀의 법칙이 아니었다. 대신 그녀는 자신의 정원을 안온하게 가꾸며 소소한 뿌듯함을 느끼는 가드너였다. 그러나 중년기에 접어들어 갱년기를 겪으며 자신의 정원을 생기 잃은 눈으로 바라보곤 했다. 그 정원에서 무럭무럭 자란 생명들은 이제 그녀가 물을 주고 땅을 갈지 않아도 될 만큼 자생력을 갖추었기 때문이다.
가드너의 마음에 다시금 뿌듯함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이제 그녀의 정원은 자신이 좋아하고 즐거움을 느끼는 것들도 가득 채워나가는 놀이터로 변모할 것이다. 마치 오래된 정원의 토양이 식물의 뿌리를 기억하듯, 이런 작은 즐거움과 뿌듯함은 그녀의 마음 깊숙이 자리 잡아 새로운 꽃을 피워낼 것이다. 이런 소소한 기쁨들은 겉으로 크게 드러나지 않지만, 우리의 사고와 행위의 기저가 되어 나다움을 만들어낸다.
내가 갖고 있기에, 나만이 갖고 있기에, 나는 갖고 있기에 그 자체로 특별하고 아름다운. 나의 고유함을 발현시켜 나만의 정원을 꾸려가며 느끼는 뿌듯함. 그것이 행복이라 생각한다. 행복은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깨닫는 것이 아니라 여정에서 느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