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시선으로
엄마의 별명인 나무늘보에 어울리지 않게 그녀의 아침은 바쁘게 흘러간다.
매일 아침 같은 동네에 사시는 할아버지댁에 찾아가 아침 밥상을 차려드리고 약을 챙겨드린 후 빠른 걸음으로 돌아와 우리 집안의 막내인 댕댕이를 산책시킨다. 최근에 직장을 쉬게 되면서 종종 내가 산책을 대신하곤 하지만 몇 년째 이 일상을 꾸준히 지속하는 엄마가 참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동시에 할아버지를 섬기는 엄마의 모습을 보며 자식의 도리를 넘어서 부모를 진정 사랑하는 마음이 내게도 전해진다.
지난 금요일은 아빠가 휴가라서 댕댕이 오전 산책을 대신해 주셨다. 덕분에 필라테스 수업을 가기 전 조금의 시간 여유가 생겨 엄마와 차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었다. 이리저리 편안하게 생각을 말하다 뜻하지 않게 서로의 감정 선을 건들게 되었고 목소리에 팽팽하게 날이 선 것이 느껴졌다. 엄마와 나는 각자가 가진 눈치, 절제, 예의 등의 기술을 십분 활용하며 이 상황을 부드럽게 마무리할 수 있도록 애를 썼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의 노력은 온데간데없이 그 결실을 맺지 못했고 결국 서로의 기분을 상하게 하였다. 수업 시간이 되어 우리는 길을 나섰고 필라테스 수업을 가는 차 안에는 적막만 흘렀다.
태연하게 적당히 쾌활한 표정을 지으며 수업에 들어갔다. 머메이드라는 새로운 동작을 배웠는데 곡선 형태의 기구 위에 모로 누워 마치 인어공주와 같은 자세를 취하는 것이다. 이마에 송골공골 땀이 맺히기 시작했을 때쯤 엄마의 뒷모습이 내 시선을 사로잡았고 그 즉시 웃음이 터져 나올 뻔했다. 엄마가 소파에 누워 한쪽 팔로 머리를 받치는, 아주 나태하고 게으른 자의 실루엣으로 텔레비전을 보는 모습과 흡사했기 때문이다. 가끔은 상체 앞에 간식 바구니를 두고 나머지 한 손으로 간식을 입에 넣곤 하는데 세상사에는 관심 없는 로마의 귀부인이 환생한 것은 아닐까 싶다.
수업 전 투닥거림이 깔끔히 봉합된 것은 아니기에 힘든 동작을 탓하며 근엄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엉덩이와 허벅지에 힘주는 것만으로도 버거운 나는 편하게 웃어버리기로 했다. 그렇게 우아한 고문 시간이 끝나고 집에 돌아가는 길 엄마랑 나는 서로 아무 일이 없던 것처럼 재잘거렸다. 서로 감정을 상하게 한 것을 무작정 덮어두거나 두루뭉술 넘긴 것이 아니었다. 그냥 봄눈 녹듯이 기억에서 없어진 것만 같았다. 필라테스가 뭉친 근육뿐 아니라 뭉친 마음도 풀어준 것은 아닐까.
나이가 들수록 부모님을 한층 이해하게 되면서도 동시에 더 날카롭게 판단하게 된다는 것이 아이러니하다. 마치 두 개의 렌즈로 대상을 바라보는 것처럼 동기화되지 않은 나의 내면을 발견한다. 아마도 이것은 내가 성인이 되어 부모님과 동등한 위치에서 대화하고 싶은 욕구가 반영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욕구가 과도할 때면 순간을 이기지 못해 차가운 말을 내뱉곤 하는데 이후의 후회는 마치 대기하고 있었던 것처럼 삽시간에 내 마음을 채워버린다. 그 죄스럽고 무거운 마음... 더 자세히 말하지 않아도 모두 알 것이다.
귀한 애정으로 할아버지를 챙겨드리는 엄마처럼 나도 따뜻한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보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