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으로, 학원 강사로, 전문 강사로
대치동 학원 강사 면접
학원 강사를 시작한 것은 서일중학교 방과후학교에서 좋은 성과를 낸 이후였다. 난 대치동에 들어가서 본격적인 학원 강사를 시작하고 싶었다. 학원에서는 이사장님과 직접 면접을 보게 되는데, 면접을 보기 전에 대입 논술 문제를 하나 풀게 했다. 솔직히 말하면 그때에 나는 원고지 교정법도 몰랐다(마침표를 찍고 나서 한 칸을 띄우는 것인지, 아니면 마침표가 한 칸만 자리하는 것인지도 몰랐다. 방과후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때에 원고지로 지도하지 않았다). 학원에서 시험을 볼 때에는 꽤 당황했었는데, 그 이유는 내가 논술과 에세이를 구별하지 못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배우지 않았는데 어떻게 달라질 수 있었겠는가? 그냥 내 인생의 시간만 지나가고 달라진 것은 없는 사람이었다.
면접에서 합격하고, 두 달 동안 인턴 과정을 거치고 학원에서 수업을 하기 시작할 그때 즈음이었다. 이사장님은 나와 같이 학원으로 들어온 3명에게 논술이 무엇인지 강의를 해 주셨는데, 그때 메모한 것이 있다.
“사회문화 교과서가 중요함. 통합교과에서 중요한 것. 고등학교 사회탐구를 공부함. 논술 주제에 맞추어서 구성주의를 토대로 만든 주제가 필요함.”
구성주의 교육학에 기반한 논술 학원
인턴 기간 동안에는 여러 권을 책을 읽고 리포트를 제출했다. 그때 읽었던 책의 대부분은 구성주의 교육학에 대한 책이었다. 나는 폴 리쾨르의 철학적 해석학이 근거가 탄탄하다고 믿고 있었고 그것을 강화시키기 위해서 애를 쓰고 있었던 터라, 구성주의 교육학 책이 그다지 설득력 있게 다가오지 않았다. 어떻게 학습자가 습득한 지식이 학습자에 의해서 주관적으로 구성될 수 있는가? 그렇다면 객관적인 지식이란 존재하지 않게 되는가? 구조주의에서는 “text를 완결된 것이 아닌 열린 체계로 보고 지식의 구조를 파악하기 때문에 구성주의와 상통하게 된다."고 말한다. 결국 구조주의와 구성주의는 부르는 말도 비슷한데, 조금만 논의를 하다 보면 그놈이 그 놈이라는 느낌을 들게 한다. 구조주의는 언어를 바탕으로 한다. 폴 리쾨르에 의하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구조주의 지성이 펼쳐놓은 모순을 끝까지 쫓아가는 데 있다.” 소쉬르는 언어를 과학이라고 여겼지만, 텍스트가 활자로 고정되는 순간 완전히 다른 것으로 변한다. 텍스트는 독특한 영역에 속하는 것으로 분석과 종합을 통해서 평가될 수 있는 영역에서 벗어나게 된다. 리쾨르는 『해석의 갈등』에서 “분석과 종합 사이를 갔다가 돌아오는 운동에서, 돌아올 때는 갈 때와 다르다. 돌아오면서 요소로부터 텍스트나 시로 올라오면서, 문장과 낱말을 전환점으로 삼아 새로운 문제가 발생한다. 구조 분석에서는 배제했던 문제이다. 말의 수준에서 생기는 그 문제는 말함의 문제이다.” 언어의 사용에서 발생하는 개방성이 텍스트를 독특한 영역으로 끌어올린다.
앞 단락 이야기는 조금 어려운 얘기였다. 나도 이러려고 한 게 아닌데, 쓰다 보면 쓸데없이 허세가 올라온다. 간단하게 정리하면, 철학적 해석학이 있어야 텍스트에 대해서 다룰 수 있다는 말을 하고 싶다. 좀 어렵게 얘기하면 있어 보인다는 그런 나쁜 생각에서 나는 언제쯤이나 벗어날 수 있을까?
학원은 꽤 규모가 큰 곳이었다. 이사장님 말씀으로는 전국에 가맹점이 100여 곳이 넘는다고 하셨다. 아마 더 많다고 얘기하고 싶으신지 모르겠다. 암튼 그때는 그렇게 말씀하셨다. 단순히 학원으로 입시를 지도하는 것만 하는 곳이 아니라 출판도 담당하는 곳이었다. 학원은 출판사를 운영했고, 출판사는 학원 강사들이 토론하고 준비한 것을 교재로 만들었다. 그리고 그 교재로 수업을 진행했다.
대입 논술을 준비하는 고등부 파트에서는 해답을 만들어야 했다. 내가 그토록 증오했던 작업. ‘아니 그걸 도대체 왜 하는 거야? 대학교에서 문제도 공개하고 분석한 것도 공개하는데?’ 암튼 나는 죽기보다 싫은 그 작업을 했다. 이사장님은 기출문제에 대한 모범답안을 강사들이 작성해서 제출해야 한다고 이야기하셨고, 우리는 그것을 만들었다.
논술 강사는 논술 시험을 보는 사람이 아니다. 훌륭한 테니스 선수가 훌륭한 코치가 될 수 있지만 그것은 다른 영역이다. 훌륭한 테니스 코치가 코치를 하면서 현역 선수로 높은 랭킹에 올라서는 것도 무리다. 다시 말하면 그것은 다른 영역이다. 그러니까 논술 강사는 논술에 대해서 잘 가르치면 되는 것이고, 논술 시험에서 좋은 결과를 내는 데에 돕는 사람이어야 한다. 강사는 기출문제를 분석하고 학원으로 오는 학생들에게 시간을 아낄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논술이 어떤 시험인지 정말 잘 알고 있었을까?
학생들은 수능을 준비하느라 바쁘고, 내신을 준비하느라 바쁘다. 그런데 학원 교재에는 기출문제에 대해서 다루지 않고, 구성주의 교육학에 입각해서 학생들에게 새로운 지식을 융합하라고 주문한다. 근데 대입 논술에서는 주어진 텍스트로 새로운 지식을 만들어내라고 묻지 않는다. 뭔가 이상하지 않는가? 학원에서는 도대체 뭘 하는 거지? 배경지식을 많이 품어야 하는 건 도대체 뭔 뚱딴지같은 얘기인가? 아직도 논술과 에세이가 어떻게 다른지 알지 못하는 거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