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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ssaytowin May 31. 2019

중학교 방과후학교에서 (1/5)

독서영화 논술반

방과후학교에서 논술 수업을 한 것은 굉장히 인상적인 시간이었다. 왜냐하면 내가 철학적 해석학을 수업에 접목하고 성과를 낸 첫 번째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 시간을 기점으로 철학적 해석학을 점점 단단하고 탄력적으로 바꾸기 위해서 적용하는 시간을 보내게 되는데, 여기에서는 "중학교 방과후학교에서"라는 제목의 글을 쓸 예정이다. 방과후학교에 대한 이야기를 기술한 다음에는 '철학적 해석학'에 대해서 글을 쓰려고 한다.



방과후학교에서 수업을 맡기까지

2009년에는 내가 대학원을 수료하고(나는 석사과정을 수료했고, 졸업은 하지 못했다), 새로운 직장을 구해야 하는 때였다. 대학원을 다니면서 2년 동안 학과 조교로 근무했다. 대학원 과정을 마치면서 조교도 그만두어야 했는데, 끝나고 나서 다시 일자리를 찾아야 했다.


나는 교회에서 중등부 간사도 맡고 있었는데, 그때 중등부 부장 선생님이 서초구에 소재한 중학교에 교장 선생님으로 근무하고 계셨다. 부장 선생님께서는 내가 대학원 조교가 계약이 만료되어서 그만두어야 된다는 것을 알고 계셨던 것 같다. 그래서 대학원 조교 근무가 만료되면, 중학교에서 근무하는 것은 어떻겠냐고 이야기를 하셨다. 나는 일자리를 제안받아서 너무 좋았다. 급여나 다른 것들은 여쭈어보지 않았다. 그냥 좋았다.


중학교에서 하게 된 일은 방과후학교의 행정적인 업무를 돕는 일이었다. 나의 직책은 방과후학교 조교였다. 내가 일하게 된 중학교는 교육청에서 '방과후학교 시범학교'로 지정이 되어서 꽤 많은 수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나의 기억으로는 100여 개 강좌가 열렸던 것 같은데, 학교 선생님과 외부 강사님들이 강좌를 맡아서 다양한 과목을 가르치셨다.


방과후학교는 4학기로 진행이 되었는데, 매 학기마다 어려운 점들이 있었다. 과목이 개설되어 있어도 인원이 채워지지 않아서 폐강하는 과목도 종종 있었고, 강사 선생님이 섭외가 되지 않아서 과목이 개설되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방과후학교 3학기가 진행되는 동안에는 4학기 교육과정을 준비 때문에 매우 분주했다. 100여 과목이 넘는데, 그 많은 과목의 강사들을 섭외하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내가 논술반을 맡게 된 것은 그때였다. 마침 논술반을 담당하고 계시던 강사님이 대학교에 출강하는 것 때문에 방과후학교 4기에는 반을 맡을 수 없다고 이야기를 하셨다(예전이나 지금이나 논술 강사는 구하기가 어려운 것 같다). 방과후학교 부장님은 강사를 섭외하는 데에 애를 많이 쓰셨지만, 4기가 시작하는 시간이 임박해도 강사를 구할 수가 없었다. 4기 안내 책자가 나갔지만, 강사를 구하지 못해서 폐강을 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4기가 시작되기 한 주 전이었던 것 같다. 벌써 11년 전이라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는데, 한 주 전이나 두 주 전이었던 것 같다. 방과후학교 부장님이 나에게 이렇게 물으셨다.


"철학과 나왔죠? 혹시 논술 가르칠 수 있어요?"

"네. 그럼요."


당시에는 내가 인사이트 라이터스 클럽(이하 IWC)을 교회에서 동아리로 꾸리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 있었다. 그렇지만 자신 있게 대답하지 못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왜냐하면 가르칠 수 있냐는 말에 내가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나 경험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방과후부장님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 굉장히 떨렸는데, 혹시라도 수업을 맡기실까봐 하는 마음 때문에 몹시도 흥분되었다. 수업을 맡고 싶었기 때문에. 그러고 나서 부장님은 나에게 이렇게 물으셨다.


"근데, 학교 어디 나왔죠?"

"숭실대학교입니다."


방과후학교 부장님의 표정이 매우 불편해지신 것을 봤다. 내 글을 읽는 분들은 잘 알고 계실 거라 믿는다. 그 표정에는 내게 수업을 맡기기에는 매우 곤란하다는 마음이 담겨 있었다. 그러니까 내가 근무한 중학교는 서초구에 있는 중학교이기 때문에 나 같은 사람은 강의를 할 수 없었다. 교육열도 대단한 곳이었고, 학생들의 부모님들은 전문직에서 종사하시는 분이 많은 학교였다. 내가 갖춘 학력이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나의 대답을 들으신 부장님은 알겠다고 하셨다. 나는 동아리를 꾸리고 있기 때문에 잘할 수 있다고 이야기하고 싶었지만, 그렇게 이야기하지 못했다. 교회에서 하는 독서토론 동아리가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그때에는 그냥 잠자코 있어야 하는 게 미덕이라고 여겼다.


며칠이 지났던 것 같다. 4기가 시작되기 며칠 전이었던 것 같은데, 부장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강사 섭외를 못했습니다. 두 반이 있는데, 내가 들어가는 수업에서 논술반 광고를 해 줄 테니까 수업을 진행해 보세요."



열등감을 극복했던 기억

숭실대학교. 지하철에서 고등학생들이 "아무것도 없는데, 서울에 있어서 점수만 높은 학교"라고 말하는 곳. 내가 예비 3차 16번으로 입학한 곳. 진짜 진짜 턱걸이로 들어간 학교. 그렇지만 졸업할 때에는 앞에서 두 번째로 나온 학교. 전액 장학금으로 대학원 공부를 시켜준 곳. 조교로 근무하면서 경제적인 여유로움도 안겨준 곳. 형이 입학 원서를 써 준 곳. 나의 아버지와 동문인 곳. 그리고 나의 열등감을 극복시켜 주고, 나의 지성을 다듬어 준 곳. 사랑할 수밖에 없는 나의 시간을 담은 학문의 요람.


숭실대학교의 입학은 기적과 같았다. 그러니까 예비 3차에 16번으로 입학을 했는데(17번인지 잘 모르겠다. 예비 16번인가 17번으로 들어온 동기가 있었는데, 내가 그 친구를 "17번"으로 불렀다. 16번으로 불렀던 것 같기도 하고. 그렇지만 16번으로 기억하고 싶다. 17번보다는 16번이 훨씬 나으니까), 첫 학기를 마치고 나는 전액 장학금을 받기 시작했다. 수업에도 꽤 열심이었고, 고등학교 때에는 학과 공부는 안 하고 철학 고전만 읽어서 대학교에서 공부를 하는 게 정말 재미있었다. 나는 철학 수업을 고등학교 때에 고전을 읽으면서 선행학습을 했던 터라, 철학 전문가 교수님들께 철학 고전을 직접 배우고 질문을 하는 시간이 정말 기가 막히게 좋았다. 행복했다.



철학과에서는 2학년부터 철학사를 배우기 시작한다. 나는 군 복무를 마치고 고대 그리스 철학 과목을 듣게 되었는데, 강사 선생님은 서울대학교에서 박사 과정을 마쳤던 분이 강의를 하셨다(이름도 생생히 기억나고 주고받은 이메일도 잘 보관하고 있다). 수업 시간에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의 앞부분을 다루고 있었는데, 수업 시간 중에 내가 이런 질문을 했다.


"교수님, 책 제목이 윤리학인데, 왜 1장에서 행복에 대해서 다루나요?"


나는 순수한 동기로 이야기를 했다. 진심이다. 알고자 하는 순수한 동기에서 물었다. 진심이다. 정말로. 그런데 그 시간 이후로 나는 완전히 찍혔다. 왜냐하면 교수님이 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장황하게 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나는 교수님을 곤란하게 만들었던 거다. 나중에 나는 2009년에 출간된 을 서점에서 우연히 보게 되는데, 그 책에는 대학원 박사과정을 마칠 때까지는 잠자코 있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나는 사실 잠자코 있어야 했다.


기말시험이 끝나고 나는 B+를 받았는데, 철학 과목에서 B는 나에게 굉장한 치욕을 안겨줬다. 나는 바로 교수님에게 메일을 보냈다. 내 점수가 왜 이렇게 나왔는지 알고 싶다고. 그랬더니 기말 답안이 부족했다고 메일이 왔다. 그래서 다시 메일을 보내서, 나는 문제에 맞추어서 답안을 성실히 작성했는데 어떤 점이 문제냐고 물었다. 답메일이 왔다. 답안이 유니크하지 않아서 그랬다고 했다. 나는 다시 메일을 보냈다. 기말 시험 문제에 독창적으로 작성하라는 얘기가 한 마디도 없었는데, 어떻게 독창적으로 답안을 작성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답메일이 왔다. 자신은 할 얘기를 다했고, "충분히 논의가 되었으니까" 더 이상 메일에 답을 하지 않겠다고 했다.


나는 그 일이 나를 어떤 사람으로 바꾸게 될지는 그 당시에는 전혀 알 수 없었지만, 그 사건이 나를 바꾼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나는 철학을 좋아하는 철학과 동기에게 물었다(지금은 독일에서 철학 공부를 하고 있는). 『니코마코스 윤리학』에 왜 첫 번째 논의가 행복이냐고. 그 친구가 내 질문에 답을 해 주었다.


"윤리적인 삶이 행복한 삶이라고 여긴 거지. 행복한 삶이 윤리적인 삶이고."


나는 너무나도 놀랐는데, 그 답이 너무나도 명쾌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정말 많이 놀랐다. 그리고 그때부터 어떻게 하면 정확하게 텍스트를 읽을 수 있을 것인지 고민하게 되었다. 같은 영화를 보고도, 같은 책을 보고도 이야기가 많이 달라지게 되는데, 그럼 누구의 이야기가 옳은 것인지. 만약에 옳고 그름의 영역에서 벗어나야 한다면, 어떤 사람의 이야기가 더 설득력 있는 것으로 평가할 수 있는지. 나는 정말 궁금했다.


그 일은 학력에 대한 나의 열등감이 완전히 사라지게 했다. 그 이유는 배움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좋은 대학에 소속되어 있다는 것보다 얼마나 더 많은 고전을, 얼마나 더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는가에 달려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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