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악행을 눈감아주는 아들과 저에게는 비밀이 있습니다. 부끄럽고 무서워서 남편조차도 모르는 치부, 그 일은 아이가 10살 때였습니다.
엄마가 수학 머리가 없어서 그런지 아이들도 유독 수학을 힘들어하고 싫어했습니다. 학원은 보내지 않겠다고 다짐했으니 유대관계도 형성할 겸 아이들과 수학 익힘책에 나오는 문제들을 풀기로 했습니다. 항상 첫출발은 좋습니다. 온화하고 평온한 목소리로 아이들에게 최대한 쉽게 도구까지 사용해가며 알려주고 틀려도 괜찮다고 다독여 가며 순조롭게 흘러갑니다. 그런데 무한 반복으로 설명하다 보면 점점 무언가 꿈틀거리기 시작하면서 목소리는 격앙되고 손은 등짝 스매싱을 날리기 시작합니다.
그날도 똑같은 짓을 반복하다 제 성질에 못 이겨 책상 달력을 들고 내 앞에서 내리쳤는데 그게 도대체 어떻게 된 건지 아이 눈두덩이가 부어오르기 시작하더니 퍼렇게 변해가고 있었습니다. 눈에 잘못 맞았다면, 지금 생각해도 너무 섬뜩하고 무섭습니다. 아이를 부둥켜안고 얼마나 울었는지, 엄마가 잘못했다고 얼마나 빌었는지 모릅니다. 그런다고 아이 상처가 말끔히 사라지지도 않을 텐데 빌고 또 빌었습니다. 이런 미친 어미는 세상 어디에도 없을 겁니다. 차라리 학원을 보내는 게 나을뻔했습니다. 너그러운 어미인 척, 자비로운 어미인 척 흉내만 냈던 것뿐입니다.
만행을 저지르고 미친년처럼 서점으로 달려갔습니다. 읽고 줄 치고 모서리를 접고 띠지를 붙여가며 닥치는 대로 읽었습니다. 그렇게 읽다 보니 아이들이 문제가 아니라 엄마의 내면이 썩어 문드러져 있다는 것을, 엄마가 마음이 너무 아프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괜찮다고만 했지 상처를 치유하지 못했습니다. '분가만 하면 나아질 거야, 어머니 아버지 연세도 많으시니깐 사시면 얼마나 사시겠어, 형님이 있으니깐' 이따위로 나를 외면했습니다. 몸무게가 37kg가 되고 눈은 툭 튀어나오고 피골이 상접해서 거지꼴이 되어도 모른 척 외면했습니다. 종이에 살짝 베도 아리고 쓰린데 말이지요.
내가 먼저여야 했습니다. 엄마이기 전에 나도 한 인간이기에 나를 먼저 챙겨야 했습니다. 아프면 아프다고 말하고 힘들면 힘들다고 말해야 했는데 독이 오를 대로 오른 독사처럼 물어뜯으려고만 했습니다. 생각을 바꾸고 나를 돌아보니 마음이 따뜻해졌습니다. 우리는 모든 걸 내려놓고 때로는 자유로운 방랑자처럼, 때로는 한가로이 풀을 뜯는 젖소떼마냥 여유 있고 행복한 날들을 보냈습니다. 논두렁 밭두렁 쫓아다니며 아이들은 조금씩 엄마가 준 상처를 잊어가는 듯했습니다. 시시때때로 아이들에게는 끊임없이 사과하고 또 사과했습니다. 엄마가 너무 아파서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을 해서 미안하다고 하면 아이들이 되레 토닥여 줍니다. 아이들은 놀면서 경험하고 그 경험이 몸에 배어 남다른 생각으로 오히려 엄마의 스승이 되고 깊은 아량과 배려로 엄마를 끌어 줍니다.
아이들과 같은 책을 읽고 공감하고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며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하며 지내는 요즘입니다. 가끔은 다투기도 하고 소리를 지르기도 하지만 이해의 충돌일 뿐, 악에 받친 어미의 감정은 아닙니다.
아이 스스로 삶을 개척하고 스스로 학습하고 자기에게 맞는 시간으로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저 어미는 두둑한 지갑만 열어주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인생 책 한 권을 만나고 나는 다시 태어났다.
나의 인생 멘토인 그녀의 삶을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들 순 없지만 그녀가 가는 길을 묵묵히 따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