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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ssie Jan 25. 2024

선택의 여지

인생을 살다 보면


ⓒ my facebook

10여 년 전 끄적임이 오늘도 자연스러운 것은

여전히 철들지 않았다는 것일까?


페이스북에 이 글을 적게 되었던 일이 생각난다.


"야, 우리 집에 와서 미역국 좀 끓여주라~"


못 들은 체하던 나에게


"나도 미역국 끓여주라, 응?  미역국 좋아하는데."


수화기 너머로 그렇게 이야기하던 목소리가 있었다.


매주 O요일 같은 시간이면 어김없이 걸려오던 전화.

그때 상대에게만 휴대폰이 있어서 내가 집에 있어야

전화를 받을 수 있다 보니 확실히 있는 시간을 확인한

그 애 꼭 시간에 전화를 걸어오곤 했다.


사귄 적도 없고 약속하지도 않았지만

반복될수록 서로 그 시간을 기다렸고

밖에 있었어도 그 시간에는 일부러

반드시 오는 전화를 받으러 들어왔다.


지금은 무얼 하고 있냐는 질문에,

"미역국을 끓인다"고 했더니

자기도 미역국이 먹고 싶다며, 와서

끓여달라는 말도 안 되는 말을 해왔다.


나는 매우 엄격하고 냉철하게 그 아이를 대했다.

나 같은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 있었냐 묻는다면,

그때만 하더라도 자신이 그런 사람인 줄 알았다.

거절도 칼같이, 뒤도 안 돌아보고 봐주지 않는 사람.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절대 뜻을 굽히지 않는 사람.

1년에 한두 번 먼저 전화할 정도로 절제력 강한 사람.


그런데 알고 보니 나는

오직 그 아이에게만 그럴 수 있었던 것이었다.

왜였을까.


"야, 나한테도  사근사근하게 해봐라."


그 아이에게만큼은 불공평했던 것일까.


"네가 웬일이야, 나한테 전화를 다 걸고? 어쩐 일이야

 네가 나한테 전화도 하네.."


혹여 방해가 될까 봐 먼저 전화를 걸지 않았고

막을 틈 없이 찾아올까 봐 집도 알려주지 않았고

평생친구를 잃을까 봐 끝까지 남녀로 사귀지 않고

마음을 지키기 위해 마음 가는 만큼 맞섰던 것일까.




10년, 아니 그 이상의 세월이 흐르고 남은 어느 날,

외국친구(mutual friend)를 통해 새로운 인물

연결되어 잠시 도울일이 있었고 언어 때문에라도

챙겨주어야 했는데 다음날이 생일임을 알게 됐다.


알게 된 이상 모르는 척할 수 없고 그렇다고 파티를

해줄 만큼 오지랖이 넓진 않아 조촐하게 내 책상에

밥 한 공기, 어설픈 미역국 한 그릇을 차리고 앉혔다.

이 인물은 지금 이 나라에 아는 한국인이 나뿐이라

마치 최소한의 성의처럼. 그러다 그때 생각이 났다.


"나도 미역국 좋아하는데! 나도 미역국 먹고 싶은데"


오래전 그 아이의 목소리가 생각난 것이다.


내가 밥상을 차려준 이 인물과 그 아이가

차라리 모르는 사이라면 조금은 나았을텐데.

어쩌면 나의 인생은 우스울 정도로 덧없었다.


이렇게 안 지 얼마 안 된 에게도 해주면서

그 애에게는 뭐가 그리도 어렵고 매정했을까.


미역국을 원하던 사람은 먹지 못하

생각도 않던 사람은 얼떨결에 먹는 게 인생이던가.


그 아이와는 한 번도 함께 타보지 못한 지하철을

이 인물과는 여기저기 타고 돌아다니고

그 아이와 그토록 한 번만 가고 싶던 한인교회에

이 인물과는 너무 자연스럽게 방문했던

그 시기에 이 일기를 적은 기억이 난다.


무책임하게도

그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고

자신을 설득한 것일는지 모른다.


그렇게 우리는 가장 소중했던 이에게

"나쁜 ㄴ" 또는 "ㄱㅅㄲ"가 되고

다른 이에게는 "괜찮은 사람"으로

남을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것일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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