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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ssie May 06. 2024

남편이 없지만 있습니다

있지만 없고요 feat. 거짓말 대잔치

나는 거짓말을 싫어한다.
누가 거짓말하기 좋아하겠냐만은
진실함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 터라
작은 거짓말도 하지 않으려 노력해 왔다.
- 지금 어딘데~? 집?
- 어? 어.

왜 그랬을까. 얼결에 한 긍정 뒤 얼버무려졌고,
상황상 곧 통화가 종료되어 끊고 나니 기분이
묘했다. 내가 어디이든 그녀에게 상관없었다.
하지만 점점 견딜 수 없는 것만 같아져 버렸다.

- 나, 할 말 있어.
- 응? 뭔데~~?

5분 지났을까. 갈등 끝에 전화를 걸어 자백했다.

- 사실 아까 버스였거든. 집이냐고 물어봤을 때
  순간 나도 모르게 그렇다고...
- 아유, 그게 무슨 상관이야~
- 그래도 너한테 거짓말한 게 되잖아, 미안해.
- 야, 잠깐만, 너 울어..???

내가 생각해도 웃기지만 순간 울컥했다.
친구는 엄청 웃어댔고 우리는 여전히 친하다.

그래서 나는 거짓말을 거의 안 한 줄 알았다.
나 정도면 적어도 진실성 탑이라 생각했는데
오랜 귀국 이후 어느 날, 뇌리를 번뜩 스쳤다.


헉...!
나 완전 거짓말 그 자체였네!


거짓말 그 잡채

충격이었다. 뻔뻔하고도 아무렇지도 않게,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해왔던 장면들이 한 번에 떠올랐다.

중요한 것은, 그 오랜 세월 동안 셀 수 없이
반복한 거짓말에 대해 단 한 번도 잘못했다
라거나 양심의 가책조차 느낀 적 없었던 것.

아무리 나름의 이유가 있었어도, 하나님 앞에
거짓말에 대한 용서를 구하지 않았음에 놀라,
이것도 회개기도는 필요함을 인식하게 됐다.
자 이제부터 과거의 거짓말 대잔치가 열린다.



불쾌한 호감 표현


보통은 그런 날이 많지 않았다.

속된 말로, 난 꼬이는 남자가 별로 없었는데

이 친구와 나가기만 하면 남자들이 추근댔다.

옷장의 99%가 바지였고 화장도 안 했다.
나중에 화장을 했는데 친구들이 이건 화장이
아니라거나 차라리 하지 말라고 팩폭을 날려
다시 자연인으로 다니게 됐다. (재능이 없다)
오죽하면 남자 동생들이 나를 백화점에 직접
데려가 옷을 골라주고 싶다고 한 적도 있을까.
안타까워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난 5천 원짜리
티셔츠를 입고 거리를 활보해도 상관없었다.
옆사람들이 창피해했을 뿐... 미안합니다ㅋㅋ


나에게 라기보다는 그녀에게 먼저 시작하지만

둘이 함께 택시를 잡아 한 차에 타기 때문에

그 불편한 추근댐을 나도 겪게 되곤 하였다.

그녀는 노출 있는 옷을 입으면서도 막상 누가

추근대면 태연히 주거니 받거니 하다 사양했다.

러시아어라서 그렇지, 만일 한국말로 한다면

듣기에 더 불쾌하고 껄끄럽고 추잡스러웠다.

솔직한 것인지 뻔뻔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아이러니한 건, 그녀로부터 대응법을 배운 셈.


수줍은 호감 표현


우리나라는 문화상 감정 표현이 세지 않다.

남자라면 더욱. 대개, 문화적으로 말이다.

누군가를 좋아하거나 호감이 확 오더라도

한국 남자 중 처음 본 여성에게 스스럼없이

"솔로이세요? 우리 만나보면 어때요?"라고

물어볼 확률은 아마 희박하다고 생각된다.


위 사진은 선물 받은 케익이다. 여담이지만

누가 받았는지 모른다. 여자가 둘이었으니까.

카페 아르바이트생이 티라미수를 들고 왔다.


"어.. 저희 안 시켰는데.."

"아.. 그냥 제가 드리는.. 거예요."


놀라서 쳐다보려 했는데 얼굴 볼 새도 없이

도망치듯 사라지는 것이었다. 고마웠는데...

그렇게 가버리면 감사인사를 어떻게 하냐고.

그보다, 알바비가 얼마라고 이 케익을.. 아...

비싼 집이었는데 ㅠㅠ 큰 카페가 꽉 차있었음.


"아~~ 내 인기가 이렇다니까~~~"


더 놀라운 건 마주 앉은 언니였다.


"결혼을 했는데도 이렇게 인기가 많아요~"


어처구니는 없었지만 그녀에게 준 걸 지도

모르기 때문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던 기억.

아무튼 한국에서 이 정도면 진짜 큰 용기를

냈다 싶을 만큼, 표현에 수줍은 문화인 듯.

뭐, 나도 한국인이고. (상황, 나라별로 변함)



알라국(?) 남자


다시 말하지만, 폄하할 생각은 추호에 없다.

오랜 경험상 대부분 그랬다는 것. 러시아에

와서 택시 알바를 하던 90%는 주변국 인물.

그 90% 중 80%는 승객에게 추파를 던졌다.

돈이 목적인지 여자가 목적인지 둘 다였는지.


러시아인 중에는 정교인이 있다면

주변국 그들에게는 알라가 있었다.


두 인종의 문화에는 분명히 차이가 있었고

사람들의 성향에도 확실한 차이가 존재했다.

오래 살면 그게 극명하게 정리되어 보인다.


러시아 남자


물론 정통(?) 러시아인도 그럴 때가 있으나

대하는 태도 자체가 달랐다. 적어도 나에겐.


괜찮은 차가 태워 준다길래 택시로 탔을 때

아마도 인류애 반, 호감 반이었는지 처음엔

그냥 가다 대화 중 혹시 남친이 있냐 묻는다.


그럼 내가 하는 행동이 있다. 말도 필요 없다.

오른손을 들어 보여주기만 하면 되니까.


- 아..! 결혼했군요~!


더는 묻지 않는다. 차분히 목적지에 갈 뿐.

이것이 내가 탄 '러시아 남자'들의 택시였다.


나는 늘 약지에 반지를 끼고 다녔다.

작업 사전차단 확률을 높이고 작업을 걸어와도

증거물처럼 보여줌으로 비교적 간단히 귀찮은

상황을 종료할 수 있는 반지는 훌륭한 도구였다.


생각해 보면, 러시아 남자들은 오히려 한국의

남자들을 닮기도 했다. 일전에 레스토랑에서

매우 상냥히 메뉴를 확인하던 서빙남을 보며

앞의 남사친이 "야, 얘가 너 마음에 드나 봐"

했지만 보통보다 조금만 더 상냥할 뿐이었고,

같은 과 러시아 남학생 역시 "매력적이다"라는

말을 한 번 하고 눈치를 열심히 봤을 뿐 한국적

느낌과 비슷하게 흘러가곤 했다. 나대지 않았다.

이런 일이 많았다는 것도 결코 아니고.



거짓말의 시작


그러나 슬프게도 주변 국적 남자들은 달랐다.

반지가 아무 소용없는 경우도 허다했으며

뭐 이런 놈들이 있나 싶을 정도로 기준도 없고

내게 반한 것도 아닌데 일단 뭐든 해 보는 것.


그래서 나는 거짓말을 시작했다.


- 이거 안 보여요?

- 네? 아~ 반지네요. 결혼했어요?

- 네.

- 남편 어디에 있는데요?

- 내 남편 여기에 있죠.


나의 남편은 때론 한국에, 때로는 모스크바에서

함께 살고 있었고, 남편의 직업은 매번 달라졌다.

여기 사는 편이 나아서 모스크바로 주욱 결정했다.

아무도 없지만 남편이 나를 기다렸고, 룸메언니만

집에 있어도 우리 집에는 나의 남편이 살고 있었다.


숱한 거짓말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으면서

엄마가 사 준 반지는 그렇게 결혼반지가 되었다.


남자친구가 있다고 해도 거짓말이었지만

남친으로는 너무 약했다. 남편이 필요했다.


룸메 언니랑 같이 가다 혹시 그런 놈을 만나면

우리 둘 다 잠깐 남편이 생겼다. 참 가관이었다.


그러면 그 남자들이 무서우냐, 그렇지는 않다.

위협적으로 물어보는  아니다. 범죄의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말 그대로, 정말 물어보는 것이다.

이게 과연 순수하다고 해야 할지, 미친ㄴ이라고

해야 할지 스스로 답을 내리기는 어려울 것 같다.

아무튼 문화의 차이는 확실하다. 알라신 문화인가




그렇게 나는 남편이 없지만 있고, 있지만 없는

화려한 거짓말의 대잔치에 무감각해져 버렸고

한국에 온 뒤로부터 반지를 뺐지만, 최근 다시

찾은 모스크바 택시 안에서 나의 남편이 다시금

등장하게 되었다. 러시아에서만 남편이 생긴다.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미안합니다.

거짓말한 죄 에 대하여 사죄기도 드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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