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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ssie May 29. 2024

인사는 아무에게나 하지 않는다

인사를 왜 하는데

사든지 말든지


러시아에 간 초창기만 하더라도 가끔

공산주의의 흔적을 체감할 수 있었다.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던 길,

쓸만한 모자가 보여 망설이다 물었다.


- 이 모자.. 얼마인가요?


주인이 분명한 중년 여성은 나를 보더니


- 시간 보세요.

- 네?

- 시간을 보라고요.


의아해하자,


- 8시 거의 다 됐잖아요.

 오늘 일 그만할 거니 다음에 오세요.


매장에 발 들이자마자 다가오는 친절한 한국에서

부담 느낄 때가 있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여기처럼

안 팔 것 까지야....


 닫10분 이었지만 영 귀찮다는 표정으로

퇴근을 준비했고, 나는 모자를 살 수 없었다.


중심가 쇼핑몰 매장 직원크게 다르지 않았다.

손님이 들어오면, 들어왔나 보다~

옷을 고르면, 알아서 고르겠지~

고객이 묻지 않는 이상 근처로 지도 않았고,

막상 겪고 보니 이게 편한 것 같아 적응됐다.


그러다 러시아에서도 손님을 대하는 태도의 변화가

감지되기 시작할 무렵


'아, 이 사람들 왜 그러지?'

 

인사하며 다가와 무엇을 찾으시냐는 게 마치

죽기 전 사람 변한다는 그 느낌....


러시아의 불친절함은

개인적인 관계에서는 찾아보기 아주 어려우나

서비스업에서는 흔한 일상이었던 때가 있었다.


지금은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인사를 왜 하는데


마트 계산줄에서 내 차례가 되어 인사하면 

직원은 반응이 없다. 무표정은 덤.


< 띡. 띡. 띡. >


바코드 소리만 나고... 할 말이 있다면 그것은


- 잔돈 있습니까?


현금 시절, 만일 213루블이 303 또는 313 내고

90이나 100 받기. 즉, 거스름돈을 편히 주도록

고객이 배려하는 일종의 문화가 있었다.


나도 더는 인사 하지 않게 되었는데, 독일 친구 집에

머물 적에 모닝 빵 살 때마다 마트 직원이 활기차게


- Morgen!


듣자마자 나도 반자동적으로


- Morgen! (마음이 따뜻해져 온다....)


맞춤형 인간이던 나는, 아침마다 인사하는 문화에

스며든  모스크바에 돌아왔고, 이튿날 마트에서

도 모르게 그만 인사를 하고 말았다!



Здравствуйте!


앗... 실수.....

아차 했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 계산하던 직원은

'뭐야' 하는 눈빛으로 쓱 쳐다보고 바코드만 찍었다.


그렇다.

미국은 사람만 보면(?) 웃으며 "Hi!"를 연발해 주나

러시아인은 아무에게나 인사하지 않는다.

네가 모르고 나도  모르는데 왜 인사하느?

딱 그 삘이다. (질문은 상관없음. 인사문제인 듯)


사실 맞는 말.

왜 인사를 하지? 모르면서?

왜 안부를 묻지? 안 궁금하면서?

물론 안부 묻는 게 아닌 것 알지만 원래 그 의 뜻은

안부였잖아... How are you..... 영혼 없는 질문



무뚝뚝한 대신 진실함


모스크바에 방문한 지인 목사님이 이른 아침

조깅 러시아 사람이 지나가길래 이러셨단다.


- Hi!


깜짝 놀랐다. 맙소사, 심지어 Hi라니.


물론 러시아인은 무표정으로 쳐다보고 대답 없이

목사님을 지나갔다고. 당황 혹은 황당하셨겠지만,

사람도 알고 보면 속으로 당황했을 것이다..ㅎㅎ


친절한 듯하면서 개인주의가 강한 서양과 달리

어쩌꽤 동양적 느낌의 문화. 미국과 대조적.



주민끼리는 인사 왕


- 안녕하세요!


- 안녕하세요!


재미있는 것은, 같은 아파트 사람끼리는 꼭 인사

한다는 점. 의식 못했는데 돌아보니 거의 그랬다.

얼마큼 서로 잘 주고받냐면, 엘베에서 만났을 때

서로 알건 모르건 꼭 인사. 여기에서 끝나지 않고


- 몇 층이세요?


버튼 앞에 있는 사람이 물어보고 층 버튼을 대신

눌러주는 경우도 흔하다. 때론 내가, 때론 남이.


나만 유독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한국 엘베보다

러시아 엘베에서 주민과 훨씬 덜 어색하달까.....

러시아 아파트 엘베에서 무조건 인사하게 된 게

매번 인사받으며 생활에서 배워서였던 듯하다.


러시아는 아마 '우리 사람' 또는 '우리 주민' 이런

느낌의 일종의 유대감이나 동지애(?) 많은 듯.

우리나라의 <대~한민국!> 축구 응원에 비한다면

결코 따라올 수 없을 듯 하지만 미국보단 그럴 수도.

아, 당연한 거겠구나. 미국은 다민족 이민국가이니.



질문과 대답에는 관대


한 번은, 친화력 최고 레벨 대문자 E인 한국 친구와

여럿이 트롤리버스를 탔는데 어쩌다 보니 저 쪽에

앉은 그 애가, 앞에 앉은 러시아 할머니와 엄청나

토론 모드였다. 저 상황이 뭔가 하고 들어보니 ㅋㅋ

친구가 러시아어 숙제 중 궁금한 걸 앞의 할머니께

여쭤봤고 할머니가 대답해 주시다 급기야 버스에서

공책까지 펴 들고 둘이 얘기 아니 공부하는 것이었다.

할머니와 친구는 정류장 도착 직전까지 숙제를 했다.


나보다 러시아에서 오래 살고 있었던 대문자 I 가,

"나 살면서 저런 애 정말로 처음 봤어" 하며 고개를

푹 숙인 채 어깨를 들썩이며 웃던 모습이 생각난다.


그러고 보니, 선물 받은 작은 한국 책을 고등학생 때

버스 좌석에 앉은 채 읽다가, 슬슬 내리려 일어나자

러시아 아주머니 물어보시던 장면도 기억난다.


- 무엇에 대한 책인가요?


- 하나님에 대한 책이에요.


고개를 크게 두 번 끄덕이며 칭찬까지 해주셨다.


개인적으로 안타까웠던 것은,

내가 떠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러시아 사람들은

지하철 버스 어디에서든 책을 손에 들고 읽었는데

스마트폰이 결국 러시아의 문화도 점령했다는 점.

(당시 러시아 책은 대개 재생지로 무척 가벼웠다)


인사는 서로 알거나 필요시에만 하고 안부도 정말

물어볼만한 사이라거나 상황이어야 물어보지만,

말 걸기나 질문하기는 자연스러운 문화였던 건가.




어떻게 보면 무뚝뚝하지만, 어쩌면 그만큼 진실했던

러시아인은 의미 없는 인사나 안부를 나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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