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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ssie Jun 18. 2024

Londonderry Air

들으면 당신도 알 그 곡

 

Ivry Gitlis - Violin / F. Kreisler


나는 음악평론가도 아니고 음악애호가도 아닌

그저 작곡가이다. 작곡가 중에도 음악 지식과

연주자에 대한 정보가 빈약하고 특히나 음악을

글로 풀어 설명하기를 매우 좋아하지 않는다.


지휘자나 연주자는 어느 정도 편식이 불가하나

작곡가의 입장은 조금 다르다. 그러니 작곡을

하는 게 아니겠는가. 지 마음에 들 곡을 말이다.


남의 요리를 늘 골라먹거나 얻어먹기 싫다면

본인이 요리를 해야 한다. 나는 미슐랭 평론가

또는 레스토랑 오너가 아닌 셰프였던 것이다.


그것이 내가 지휘를 너무 하고 싶고 좋아해도

하지 않게 된 40%의 이유였다는 핑계로 있다.


고든 램지도 늘 자기 음식만 먹을 리는 없다.

나도 남의 음악을 듣는다. 자주 듣지 않기에

매우 선별하여 듣는다. 브런치북 [예지몽]

읽은 분은 예상하셨을 것이다. 그렇다. 내가

골라 듣는 음악은 악한영들과는 관계가 없다.


사람이 음악은 듣고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나누려 한다. 내가 가끔 듣는 음악들.

클래식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오늘은 그 경계선에 선 '들으면 누구나 아는'

그 곡을 나누어 본다. 편곡은 크라이슬러이다.


아래는 TMI


바이올리니스트 Ivry Gitlis는 드문 인물이다.

이렇게 연주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 많지 않다.


개인적으로 젊은 연주자 중 인상 깊었던 사람은

임윤찬 뿐이었던 것 같다. 다섯 번 들어봤으니.

보통의 경우에는 한 번을 듣지 못할 때가 많다.


다수가 완벽한 듯 잘들 하는데 내 마음은 왠지

쉽게 감동하지 않더라. 나도 음악영재학교에

다녔다. 절대음감은 자연스러운 것으로 인식,

초등학생들이 대곡 협주곡을 쳐도 안 놀랍고,

손가락을 미친 듯이 굴리며 자작곡을 치는 애가

널렸다 보니 주눅이나 들지 않으면 다행이었다.


친구들이 세계적인 콩쿨에 밥 먹듯 드나들고

다들 난다 긴다 하니 감탄해 봤자 얼마나 할까.

나에게는 감동이 필요하지, 감탄은 사절이었다.


콩쿨은 '나'를 입증하는 수단이고

무대도 '나'를 보여주는 장소이다.


나, 나, 나.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나 좀 보라고 하는

그 '자아도취' 연주에 나는 질린 사람일까?

가장 싫어하는 연주가 바로 그런 연주이다.


그러나 자신보다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

그리고 자아보다 절대자를 향한 겸손함을

지닌 연주자들이 있다. 내가 감히 누구라고

카테고리화하겠냐만은, 적어도 그간 들으며

내 가슴을 흔들거나 움직인 적 있는 사람들,

두 번 이상 들을 수 있던 연주나 음악이라면

당신에게도 추천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은 것.


가끔 내 음악이 들어갈 수도 있겠지만

나의 곡은 열지 않은 서랍 속에 많으니

당분간 다른 셰프의 맛집을 추천해 보겠다.


이브리 기틀리스는 노년에 많이 외로웠다.

자살까지 생각했다고 말했다. 한때 음악계

전설이던 그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난 사실

잘 모른다. 그러나 그렇게 고지에 올라섰던

사람도 결국 혼자 남으면 슬플 뿐이었구나

하는 생각, 그의 연주를 들으며 '이 정도의

감성과 음악성을 가지고 살았으니 이 사람도

참 힘들었겠다'는 생각, 오랜만에 다시 듣는

4여 분간, 내 마음을 저미거나 쥐다 펴거나

흔들거나 들었다 놓는 소리에 "아..!" 몇 번

소리를 내고는, '그래서 내가 자주 안 듣지'.


추신 : 크라이슬러의 '이 편곡'은 개인적으로

전혀 내 스타일이 아니지만 연주자들이 워낙

완벽하게 소화해 입 닫고 박수만 치면 되었다.

솔직히 말해 이 곡은 나에게 감동과 감탄 중

후자에 조금 더 가깝기는 하다. 음악적으로.

하지만 건전하기 때문에 얼마든지 추천한다.



나를 너무 흔들어도 조금 멀어지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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