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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ssie Jun 05. 2024

Mercy Me

첼로 & 피아노

10시 전 테스트
10시
12시

3년 전 지었던 곡을 얼마 전 처음, 밖에서 연주했다.


성향별 차이가 있겠지만 나의 경우 음악을 지을 때

어떤 디테일한 문구와 장면을 떠올리며 표현하려

애쓰지 않는 편이다. 그런 적 없는 것 같을 정도로.


정식으로 현대음악 작곡을 의뢰한 연주자에게,

프로그램북에 실을 설명을 보내주어야 할 때마다

내심 난감했다. 음악을 지어 보낼 때에는 괜찮은데

음악을 글로 설명하라면 전혀 다른 심정이 된다.


작곡가라면 그런 것을 잘하는 것 아닌가 싶은데

왜 그럴까. 아마도 나는, 음악은 음악 그 자체로만

받아들이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음악을 글로 자세히 길게 풀어 설명할 수 있다면

작문이지 왜 음악이란 말인가, 그런 생각도 했다.


음악은 음악일 뿐이다.

물론 주제, 내용, 자세한 장면이 있을 수 있으나

모든 음악이 그래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이 곡을 지을 때를 떠올려보자면, 평소와 같았다.

내가 작곡할 때에는 신과의 관계가 원활할 때이다.

그가 들려주는 소리를 내면에서 듣고, dictation

 - 받아 적는다. 적기 귀찮으면 외워버리고.


그러나 연주자에게는 반드시 악보가 필요하기에

가끔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했다.

'내 머릿속에 있는 이 음악을 듣고 그대로 연주

 해주면 좋겠다. 나는 악보 없이 칠 수 있는데

 남에게 알려주기 위해 악보를 만드는 것, 특히

 연주 방법 표기는 어쩔 땐 너무 귀찮다.'


본업을 귀찮아하다니.. 한심하나 악보라는 게 그렇다.

정확히 자세히 표기하지 않으면, 내 마음을 완벽하게

알아주는 연주자 만나기는 하늘의 별따기이므로

직접 연주가 아니라면 원하는 내용을 최대한 제대로

전달하기 위해 음악용 언어를 사용해야만 한다.


그래서일지도 모른다.

나는 악보에 다 이야기했는데

무슨 말이 더 필요하단 말인가.


그만큼 썼으면 됐지,

장황한 문장지 원한단 말인가.

내가 못 써서 대는 핑계일 수도 있다.


아무튼 이 곡을 쓸 때 그럴싸한 구절에 꽂혔다거나

어떤 장면을 표현했다거나 하지 않았다.

마음이 긍휼을 구했고, 구한 나에게 긍휼을 주시는

분으로부터 오는 영감을 소리로 표현했을 뿐이었다.


그래서 제목만은 확실히 알았다.


Mercy Me.


원래 Mercy on Me이겠으나, 고어체로 하고 싶었다.


그런데 이 곡을 교회에서 해보자니, 익숙하지 않고

전혀 모르는 곡을 듣는 교인들을 생각해서라도 뭔가

보내줘야 하는 입장이 되었다. 역시 잘 못 써 보내자

교회가 마무리해 자막에 띄워주었는데, 뒤늦게 보니

약간 애매하다. 맞다면 맞고 틀리다면 틀린...

기도의 마음이 담긴 곡이라는 문장은 정확하지 않다.


이 곡은 기도 그 자체이다. 기도란 무엇인가.

신에게 이야기하는 것이 기도이다. 무릎 꿇고 두 손

모으지 않아도, 기도는 애초에 영으로 하는 것이다.

Bach나 수많은 작곡가들의 곡과 같이, 어디에서든

연주하고 누구든 들을 수 있는 곡의 용도로 지었다.

예를 들어, 'Ave Maria'를 성당에서만 할 리 없듯이.


늘어놓은 장황함의 결론은 무어냐,

이 곡은 제목대로 Mercy Me 딱 그뿐이라는 사실.

제목이 곧 내용이고, 내용이 곧 제목이라는 것이다.


긍휼.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음향팀이 더 잘해주시려고 12시 직전 첼로 마이크 위치를 옮긴 후 테스트 없이 예배가 시작되었더니, 첼로 소리에 노이즈 울림이 생겨버렸다. 10시에는 노이즈가 없었지만 연주는 12시가 나았다. 우리 둘이 하는 연주가 처음이기도 하고, 나는 피아노를 매일 치지도 않거니와.. 한 번 맞춰보고 이 날 만나서 했으니 아쉬운 점이야 당연히 많다. 그러나 10년 전과 분명 달라진 나는 크게 괴로워하지 않은 채, 녹음이야 나중을 기약하면 되고, 이 날 우리가 즐겁고 들은 이들 중 감동받은 사람이 있고 신에게 닿았다면 충분히 감사하다. 심지어 이곳에 나눌 수도 있게 된 내가 발전한 것인지 후퇴한 것인지 조금은 헷갈리지만. 가슴에 손을 얹은 채 표정으로 다 말씀하시던 어떤 분의 '정말 아름답다'는 표현에 위로받은 날이기도 했다.

피아노를 치는 내 얼굴은 제발 클로즈업 안 해주면 좋겠는데 온갖 표정이 난무한 채.. 결국 어쩔 수 없지-로 강제포기 모드이기도 하다. 사실 부탁해 봤는데 안 먹힌 듯... 연습을 잘하면 멀쩡한 표정으로 할 수 있을까? 원하는 만큼 연주를 못 하니 표정이 더욱 애달파지는 것 같기도. 그래서 후지더라도 멀리 찍힌 리허설 영상을 일단 선호한다. 나의 표정에 관계없이 영상팀은 매우 훌륭하다.

마침, 고맙게도 받게 된 10시 직전 마이크 테스트 영상과, 생각지도 못했던 10시 영상, 그리고 송출영상의 일부만 나누고 잠자리에 들기로 한다. 에피소드 기록은 지금처럼 얼마든지 괜찮지만, 곡을 해석하거나 분석하는 - 음악 자체에 대한, 특히 이론적 설명은 남이 해줘도 좋을 듯. 누군가는 브런치에 일기를 쓰지 말라고 하지만, 아무래도 나는 모든 글이 일종의 일기에 불과하지 싶다. 글을 적는 이 순간에도 나의 속에서는, "Mercy Me"가 들려온다.




Good n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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