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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ssie Jul 31. 2024

반지 사건

나는 무려 몇 명에게 반지를 주었나

- 반지 꼈네?
- 응
- 금반지네? 진짜 금이야?
- 응
- 누가 줬는데?
- 엄마가. 유학올 때 사 줬어.
- 잘 어울리네~ 나도 한 번 껴보고 싶다.
- (반지를 좋아하나..?)
- 나 한 번 껴봐도 돼?
- 반지 좋아해?
- 어. 나 반지 좋아해. 나도 끼고 싶다~
- 여깄어, 껴 봐.
- 내 새끼손가락에 들어가네. 어울려?
- .. 음.. 응.
- 이 반지는 다음번 만날 때 줄게.

플러팅일 뿐이었지만, 순수하고 진지했던 고딩은

다시 친구를 만날 때 다른 금반지를 가지고 나갔다.


- 이거 너 가져.
- 엇, 이거.. 금이야?
- 응
- 반지.. 나한테 줘도 돼?
- 이거 남는 거야. 저번에 너도 끼고 싶다고
했잖아. 나는 엄마가 준 거 끼는데, 이건 교회
언니가 자기 남는다고 나 준 거거든. 18k야.
어차피 좀 큰데 너한테는 맞을 것 같아. 가져.
- 그래, 고마워, 잘 낄게~

수한 마음으로, 남는 반지를 나누어 줬다.

상대의 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나'

남들도 나와 같을 줄 알았다.


미안한데...


- 저기..
- 응?
- 저기 있잖아...
- 왜?
- 정말.. 미안한데....

그 애는 내가 준 금반지를 손에 들고 있었다.



네가 버려


- 아쉽게도 반지 낄 수 없을 것 같아.
- 갖고 싶어하길래 남는 것 준 건데.
- ...... (난감한 표정의 상대 모습)
- 네가 자꾸 반지 갖고 싶다길래, 마침
헐렁해서 안 끼는 거 있으니 준 거거든.
아무 의미도 없어.
- 어.. 아는데.. 그래도 일단 돌려줄게..
- 이미 준 걸 내가 왜 받아. 그리고
 그 반지에 정말 어떤 의미도 없거든.
 그러니까 네가 버려.


노란 장미를 싫어하는 이유



친구 된 지 얼마 안 되어 벌어진 일이었다.


말주변 좋던 그 친구가 별 말을 못 하고 있자

그 엄마가 노란 장미를 골라 아들 손에 주며

나에게 주라는 눈치 주시는 것을 보게 됐다.


애라기 보다, 그 엄마가 주신 것과 같아서

참고 받았지만 실은 휴지통에 버리고 싶었다.


불쾌했다.

반지 갖고 싶다고 한 두 번 말한 게 아니었다.

받을 땐 언제고, 금세 이런 식으로 나오다니.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 장소에서 빠져나왔다.


이튿날, 우연인지 의도된 것인지 다른 친구가

나에게 전화해 그 친구의 자초지종을 전했다.

- 집에서 아주 난리가 났었대요.

- 왜?

- 손에 금반지 끼고 있으니까,
 너 그거 무슨 반지냐고..

- 남아서 준 거야. 갖고 싶어 하길래.

- 그 오빠 부모님이 난리 나가지고,
무슨 사이인데 금반지를 주고받냐,
어떻게 반지를 덥석 받냐, 당장 가서
돌려주고 와라, 발칵 뒤집어졌대요.


배꼽 텔레파시


비록 고딩이었지만 그때도 아기가 태어나는

정확한 과정조차 몰라서 속으로 상상하기를,

'남자와 여자가 한 침대에 나란히 눕게 되면

 텔레파시처럼 뭔가 배꼽에서 배꼽으로 전달돼

 아기가 생겨지게 되는 것인가 보다' 생각했고,

정말로 아기가 '배꼽'에서 나오는 줄 알았다....

미안하다 아니 미안했다. 제대로 좀 알려주던가.


친구에게 호감은 있었지만 사귈 생각은 없었고

반지를 준 내 양심에 한 점 부끄럼도 없었지만

알고 보니 내가 일반적이지 않은 사람이었다.


어려운 사람


그 일 이후 반지 얘기를 꺼내지 않았으므로, 반지가

어떻게 되었는지 나도 모른다. 그 친구가 눈치 보며

연락해 오는 세월 동안, 나는 먼저 연락하지 않았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내가 어떤 사람인지 드러났는지

친구는 물론 그 부모님까지도 날 조심스러워하셨다.


아주 가끔 내가 전화 걸어 "잠시 들러도 될까요" 하면

나에 차를 보내주시겠다고 할 정도가 되어 있었다.

어쩌면 나는 애와  집에 '어려운 사람'이 되었다.



우정(도 소용없는) 반지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성별이 남자인  친구에게

금반지를 아무렇지 않게 줄 수 있었는가. 썰을 푼다.


중 1 때, 짝꿍이 나의 마음을 한 번 물어 확인하더니

'우정의 반지'를 준다 하여, 달과 별 중 별을 골랐다.

무려 순은이었다. 그 예쁜 반지를 늘 끼고 다니다가

Violinist '정경화' 선생님의 독주회에 가게 되었다.


'이럴 수가!!!!!'


압도당한 나는, 앵콜만 거의 1시간 더 연주해 주신

여제의 음악과 열정의 소리로 무아지경에 빠졌다.


- 선생님!! 여기에 싸인 해 주세요!


합창단과 오케공연으로 무대 뒤를 잘 알고 있어서

찾아 들어가, 연습장에 싸인을 받았다.


- 선생님, 저희도 바이올린 해요!


내 친구의 말에 그녀가 화답하듯 말씀하셨다.


- 그래~? 바이올린 재밌지?


- 네!!!


나는 벅차오르는 기쁨과 감동을 뭔가로 표현해야

했으나 손에 쥔 것이라고는 연습장뿐이었다.


- 선생님!

- 어머! 이게 뭐야, 반지잖아?


내가 내민 별 반지에 정경화씨의 눈이 동그래졌다.

그렇다. 미안하지만 우정은 음악 앞에서 무너졌고

이거라도 드려야만 했다.


- 이거 나한테 나 주는 거야?

- 네! 선생님 드리는 거예요!

- 네 거잖아. 내가 껴도 되겠어?

- 네! 괜찮아요! 선생님 거예요!!


이미 선생님의 것이 틀림없다는 나의 눈빛에

그녀는 지를 이리저리 끼워보시다 마침내

새끼손가락에 대략 들어간 모습을 보여주셨다.


- 아유, 고마워~ 이리 와, 뽀뽀해 줄게!


그녀의 품에 안겨 유일하게 볼 뽀뽀를 받았다.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이 행복했다. 구름 위를 걷듯

집으로 돌아와 싸인 받은 연습장을 코팅해 두었다.


나중에 아무리 보아도 이해가 가지 않는 구석의

어떤 이상한 표시에 '저건 뭘까? 뭐 묻은 건가?'

하다가 불현듯 깨달았다. '급한.. 하트였구나!'


엄마(도 비켜 간) 반지


유학 초기, 모스크바에 '사라 장'이 협연하러 왔다.

초기 1년은 내가 바이올린 전공을 하던 시기였으며

갓 러시아에 간 때였으므로, 난생처음 차이콥스키

바이올린 협주곡을 현장에서 들은 감동까지 더해져

흥분 상태에 이르렀다.


친구와 함께 무대 옆으로 찾아갔다. 정경화 선생님

찾아갔던 같은 친구가, 재밌게도 같은 멘트를 했다.


- 언니, 저희도 바이올린 해요!


더 웃긴 건, 나도 전과 같은 행동을 했다는 것이다.


- 언니-!

- 어머, 이게 뭐야. 금반지 아니야?

- 네!

- 이거.. 네 거 아니야?

- 언니 드리는 거예요!

- 정말? 내가 껴도 돼??

- 네! 언니 거예요..!!


사라 장은 감동한 나의 눈빛에 금반지를 받아 역시

새끼손가락에 끼우고 고마움을 표시했으며, 나는

아주 흡족한 마음으로 집에 돌아왔다. 그 금반지는

엄마가, 내 유학 기념(?)으로 사 주신 반지였다.


일 년 후 한국에 갔을 때, 내가 반지 줘 버린 것을

아시고 엄마가 다시 똑같은 금반지를 사주셨는데

그 반지를 나의 남사친이 잠시 탐낸(?) 것이었다.


혼인의 표시


남편이 있지만 없습니다에서 언급했듯, 러시아에서

매일 반지를 착용했다 보니, 안 끼면 손이 이상했다.

반지를 안 끼면 안전감이 덜했고(결혼한 척 못하니)

귀걸이를 안 하면 옷을 입은 듯하던 날도 있었다.


Emirates SVO-DUB구간 크석에 무려 마주 앉아

5시간을 고문처럼 함께 한 역대급 이상형을 봤을 때

본능적으로 손가락을 보게 되던 자신을 발견하기도.


만일 내가 예수를 믿지 않았더라면, 두바이에 내린 후

한국행 비행기를 타지 않고 그 남자를 따라갈 것이다

라고 생각할 만큼 전무후무했던. (윙크에 괴로웠지)


반지의 의미


- 야, 너는 의미도 없는 반지를 왜 끼고 다니냐?
- 내가 뭘.
- 의미도 없는 반지를 뭐 하러 끼냐고.
- 엄마가 준 건데?
- 그러니까.

생각해 보니, 그 애는 꾸준히 내 반지에 딴지를

걸곤 했었다. 금색보다 은색이 좋아 화이트골드

특이한 디자인 반지를 엄마가 새로 사 주셨는데

그게 무슨 의미가 있냐며 불만을 표시하곤 했다.


- 나한텐 엄마가 준 게 가장 의미 있거든.

가장 친한 친구가 되었지만, 그때 반지 사건은

우리 중 누구도 다시 꺼내지 않는 흑역사 같았다.


금반지는 분실, 화이트골드는 지금도 가지고 있다.

나에게는 많은 반지가 필요하지 않다. 마음에 드는

반지 하나만 있으면 되고, 큐빅이 박혔든 다이아가

박혔든 중요하지 않다. 누가 주었는지가 중요하다.


이유


엄마는 신혼 초 결혼반지를 전당포에 팔고 못 받았다.

아버지 사업이 망했을 때 반지도 가져가셨다고 했다.


이 글을 쓰며 깨달은 것인데, 내가 유학을 떠나기 전

엄마가 나에게 반지를 사 주신 심리가 혹시 어쩌면,

본인의 삶에는 결국 반지가 없었기 때문이었을까...


엄마를 닮았는지 액세서리 소장 욕심은 딱히 없지만

엄마가 준 반지가 소중했던 건 엄마가 소중해서이고,

어쩌면, 아마도, 내 인생의 마지막 반지이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하는 합리적인 상상을 해 보며 그럼 안녕.



내 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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