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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ssie Aug 31. 2024

기차에서 적는 글

열차처럼 달려가는 글 주의

오랜만에 기차를 탔다. 창 밖으로 풍경을 보는데 기분이 좋아졌다. 운전할 때에는 전방과 사이드미러, 신호, 계기판, 내비게이션을 보느라 풍경을 잘 보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모스크바에는 산이 없고 숲만 있다. 추운 기온에서 잘 사는 건지 자작나무가 대표적이고, 시베리아 같은 곳에서 채취되는 차가버섯이나 꿀은 품질이 알려진 것 이상으로 우수하다. 예로, 시베리아 알타이 꿀이 훌륭한 이유는, 벌들이 더 혹독한 추위가 닥치기 전 '급히' 일해서 모아야 하기 때문에 그 지역 꿀은 다른 곳의 꿀보다 영양성분과 효과가 뛰어나다는 것이다. 먹어보니, 국내 꿀과 알타이 꿀은 마치 물 탄 홍삼액과, 홍삼 엑기스의 차이 같았다. (국내에서는 한살림에서 가장 비싼 꿀만 먹어봤다. 엄마의 건강 때문에 알아보고 구매하는 것들이 고품질이다 보니, 옆에서 한 번씩 맛보게 되었다)


시베리아산 알타이 꿀은 종류가 많은데 나는 꿀 매니아가 아니지만 각기 종류마다 내는 맛에 대한 차이를 알아보는 것을 즐거워하는 편이다. 전에는 치즈나 우유의 맛 차이를 잘 알았고, 밥에 어떤 종류의 잡곡과 물을 얼마큼 넣는지에 따라 달라지는 밥의 식감에 대한 차이에도 감각이 있는 것 같다. 그렇다고 미식가는 결코 아니다. 냄새에 민감하지 않기 때문에 그 부분에서 조금 부족할 것이다. (고든 램지는 식감을 판단하는 감각과 함께 후각도 남들보다 발달되어 요리를 하거나 평하는 데에 더 훌륭하다)


러시아와 독일 등지에서는 '오존 요법' 치료가 합법이며, 발달되어 있다. 한국에서 정해진 굴레 안에서만 살아온 사람들은 오존이 몸에 해롭다는 것 외에 별 생각을  하지 않으나, 오존 요법으로 심각한 암과 질병에서 자유하게 된 사례는 역사적으로 굉장히 많고, 지금도 미국에서 소수가 그 기적을 경험하고 있다. 나는 엄마를 위해 나름 열심히 알아보고 미국에서 직구로 고가의 오존 기기까지 구매했으나, 가장 원하는 치료법은 시도할 수 없었다. 자신의 혈액을 뽑아 오존으로 정화하여 다시 넣는 이 요법은 전문가의 도움 없이 결코 할 수 없기에 알아보니 일본에서는 가능했다. 더 알아보니, 모스크바에서는 내가 살던 1905년 동네에도 걷는 거리에 오존 전문 클리닉이 있었고, 알아본 중 가장 저렴한 곳이 러시아였다. 생각했다. 나는 왜 엄마가 모스크바에 올 때마다 일만 하게 두면서 이런 특권을 누리게 하지 못했을까. 그때부터 이걸 했다면 엄마가 암에 걸리지 않았을 확률이 높았을 텐데. 피에 생명이 있다는 것은 성경에도 나와 있고 의학적으로도 사실이다. 혈액이 깨끗하면 병에 걸리기 어렵다.


그제야 나는 왜 그때 그 아이가 "누나, 우리 엄마가 만일 한국에서 치료받지 않고 모스크바에서 계속 치료받았으면 아마 살았을 거야."라고 한 말의 뜻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분이 초기에 다닌 곳은 모스크바 동네 병원이 아니었다. 그 집안은 러시아 정권 등에 관련하여 엄청난 인맥의 소유자였고 후에는 푸틴과도 직접 대면한 정도였기 때문에, 보통 병원을 다녔을 리 없었으나, 곧 한국에 들어와 일원동의 S병원에서 성공적으로 수술을 마친 후 완치 판정을 받은 5여 년 뒤 재발, 손을 쓸 수 없었다. 내 주위에는 딱 이런 경우가 많다. 병원의 성공적 수술, 완치 아닌 완치, 수년 후 재발, 재수술 또는 사망.


독일 유명 오존 센터의 가장 조용한 손님들로는 영국 왕족, 미국 국회의원 등이 있고, 대부분 막강한 소수 권력층이다.


러시아는 미국 제약 산업처럼 악하게 발달되어 있지는 않기 때문에, 국민들이 피해를 덜 보는 국가적 환경이 주어진다.


이런 이야기를 처음 들어 본 사람이라면 대체 무슨 이야기인가 하겠지만 그냥 넘어간다. 관심을 가지고 찾는 수고를 하면 스스로도 조금씩 알아갈 수 있다. 물론 진실을 잘 알고 있는 사람도 많지만 비율적으로는 여전히 적다. 소수 권력층이 국민을 개돼지로 보는 것은 안타깝지만 사실이다.


이것은 마치 북한에서 평생 수령님을 모시며

미제의 탄압에 굶주리고 억압받는 남조선 동지들을

구원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세뇌당한 줄도 모르는

찐 북한 사람에게 현실을 깨닫게 하는 과정과 같아서

이런 글 하나 안에 그 평생의 것을 다 담기는 무리다.


하나씩, 조금씩 알려주고 싶어 나누어 본 적이 있는데

확률적으로 대부분 사람들은, 알고 싶어 하지 않으며,

알려하지 않는다. 북한에서의 삶이 행복하다 믿는다.

탈북은 배신자들이나 하는 것이라고 믿어온 이에게

현실을 깨달으며 인정하는 것은 마치 그동안 자신이

살아온 삶을 부정당하는 것 같기에 그럴 수 있다.


한국에서는 전 하버드 내과 전문의이자 현 천연치유 엔젤 녹즙기를 만든 회사쪽의 김병재 박사님 세미나에 참석하거나 엄마를 모시고 따로 상담을 받은 적 있다. 입소를 시킬까 하였으나 그렇게 되지는 않았다. 여담인데, 좋은 사람이다. 모든 것에 100% 동의한다고 확언할 수는 없으나 대부분 동의할뿐더러, 신뢰할만한 인품과 실력을 지녔다. (그러나 왜인지 나는 그쪽에 몇 년 발길이 끊겨있다)


엄마가 아픈 뒤 나는 정말 많이 바뀌고 변했다.

특히 음식에 대한 태도가 완전히 바뀌었다.


도서관에 7시간씩 앉아 양방, 한방, 천연치유, 가리지 않고 온갖 종류의 서적을 읽었고, 엄마가 아프기 5년 전부터 희한하게도 미국의 흑백 다큐들을 보았다. 암 산업과 Big Pharma, FDA와 AMA, CDC, NIH 등의 만행과 관련된 근 몇십여 년부터 최근까지의 자료를 볼 때에는, 그 재판과 결과가 실제였는지 남아있는 증거 자료를 검색해 확인해 본 적도 있다.(전부 사실이었다)


언젠가 지인을 만나러 일원동 S서울병원에 갔을 때, 지인에게 90도 또는 95도로 굽혀 인사하던 양복차림의 남성을 보고 물었다.


"누구예요?"

"응~ 제약회사 직원~"

"아..."


빅 파마와 병원, 의사들과의 관계는 왼손과 오른손, 쿠션과 퍼프, 갓난아기와 엄마, 그리고 지금 내가 타고 있는 기차와 선로의 사이와도 같다.


언젠가 풀 보따리 짐이 많아서, 오늘은 장황하게 적어 내려가는 것 같다.


부산은 네 번째이다.

처음은 친구 연주회, 그다음은 친구, 몇 년 전에는 행사 초대로, 그리고 오늘.


솔직히 세 번째 부산에 갔을 때 멋도 모르고 엄마와 차를 끌고 갔다가 문화 충격을 경험하고 돌아왔다. (엄마에게 카레이서 기질이 있어서 참 다행이었다.....)


부산은 나에게 외국 같은 도시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좀 더 편할 것 같다. ㅎㅎㅎㅎㅎ 절친이 없었다면 부산은 정말, 일종의 외국이었을지도.


아직 못 가본 지역이 많다.

전주에도 가 보고 싶었는데 한 번도 못 가봤다. 같이 한옥마을에 가기로 했지만 엄마가 아파 미루어졌다.


한국 산은 아담하다. 우리나라 사람을 보는 것 같다.

키를 말하기보다, 느낌을 말하는 것이다. 착한 느낌.


다수가 동경하는 스위스의 산은 나에게 보통이었다. 멋있지만, 내 타입은 아니다. 난 오스트리아가 좋다. 스위스에 욕심이 하나도 없는데 엄마께 보여드리려 일정에 넣었던 나라였다. 엄마가 어릴 때 누가 사 온 달력 속 사진 배경이 스위스였던 모양이다. 그 풍경을 보며 '저런 곳에 사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외국 여자아이 모습은 '인형 같다' 생각했다고.


고생만 하는 엄마에게 꼭 보여주기 위해, 한 번도 안 가봐도 하나도 섭섭하지 않은 스위스에 들렀지만, 역시 가깝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스위스에 살던 친구들이 여럿 있는데 내가 보기에 엄청날 건 없다. 그중 한 명은 에비앙 회사에서 물 퍼가는 호수에 죽으러 들어갔다가 너무 추워서 다시 나왔다고 했다. ㅎㅎ(물론 살아있다)


스위스 공기가 좋은 것은 사실이지만, 옆에서 스멀스멀 피어나는 독한 담배 냄새에 코를 막고 달린 적도 있다. 돈이 많다면 스위스에서도 편하게 지내기는 하겠지만 난 좀 불편했다. 만일 같은 돈이라면 나는 스위스를 택하지 않을 것이다.


담배는 러시아도 둘째가라면 서럽게 많다. 드럽..게 많..  한 손에는 유모차를, 한 손에는 담배를 든 여성을 봐도 놀라지 않는다면 러시아에 잘 적응이 된 것이다. 러시아 최대의 단점이다. 내 모든 옷에 담배 냄새가 배어있었다. 후각이 뛰어난 엄마가 맡고 경악하셨다.


말이 나와서 말인데 러시아 남자들은 대개 순하다.

그 지역은 여자가 세다는 게 사실인가 싶기도 하다.

솔직히 매너는 러시아가 압승이다. 여성을 대하는

남성의 에티켓. 다만 생각해 보면 내가 주로 보던

남성들은 국립음악원 교수를 비롯한 사람들이라는

함정은 있다. 그래도 기본적 차이가 있기는 하다.


지인이, 일본 여성과 결혼한 서울대 의대 동기를

만난 이야기를 해준 적 있는데, 깜짝 놀랐다고 했다.

한국보다 훨씬 더 권위적인 모습이었던 모양이다.


그래서인지 러시아에 유학 온 일본 여자들은, 상당수 러시아인과 결혼했다. 많이 봤다. 공통점으로는 그녀들이 택한 남자 실력이 탑급이었다는 점 정도..


그런 러시아 남자를 만나면, 같이 일본에 돌아와도 편하게 살 수 있다. 재정도 편하고, 가정도 편하고. 러시아 남성이 그만큼 여성에게 매너가 좋기는 하다. 문화적인 것 같다. 평균적인 것을 말할 뿐이다.


아까 대전을 지났다.

애틋한 감정이 있다. 외할머니 돌아가신 뒤로는 갈 일이 없다. 대전은 나에게, 따뜻하고 조용한 곳이다.


이제 다시, 창 밖을 봐야겠다.

이렇게 두서없이 써 내려가는 장황한 글은 사실,

나답다.



뜬금없지만 당신에게,

햇살처럼 밝고 아름다운 주말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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