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랑 한 번도 밤새우며
엄마가 살아온 이야기를 도란도란 해본 기억이 없습니다.
만약 엄마가 살아 돌아온다면, 엄마 옆에 누워 엄마 손 꼭 잡고
엄마의 양담배 시절 겪은 많은 일들을 듣고 싶습니다.
공무원의 9남매 셋째로 태어나, 일찍 시집간 언니 대신 집안의 큰 딸이 되어
외할머니의 오른팔이었던 엄마.
엄마의 13살부터 20살까지 고단한 삶을 엮어볼까 합니다.
6.25 사변이 일어났을 때, 엄마는 13살이었어요.
외할아버지는 공무원이셨는데 바람나서 첩과 살고 있었고,
외할머니와 남매들은 꼼짝없이 굶어야 할 날들이 많았어요.
그때 엄마가 할머니께 말했어요.
목에 매는 가판대 하나 만들어 달라고요.
밑에는 비밀 칸도 있는 가판대를 만들어주자,
목에 매고 13살 소녀는 담배를 팔러 나갑니다.
어린 소녀가 파는 담배는 잘 팔립니다.
아줌마들이나 소년들의 텃세도 있었지만,
13살 소녀를 일부러 기다렸다 사는 단골도 생겼습니다.
아래 비밀 칸에 들키면 무조건 경찰서 끌려가는 양담배도 숨겨놓고 팔았다고 해요.
장사 시작한 지 10달.
공무원 월급 3배쯤 되는 돈을 매달 할머니께 생활비로 드릴 만큼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렇지만 13살 소녀는 중학교에 가고 싶었습니다.
“엄마, 이제 장사 그만하고 중학교 갈래요.”
그러자 할머니가 눈물을 뚝뚝 흘리며
“동생들 학비랑 생활비 나올 데가 없다.
중학교 가는 대신 그냥 계속 담배 장사하면 안 되겠니.” 하며
엄마 손을 잡고 중학교 포기를 애원하셨대요.
소녀는 중학 교복 입고 학교 가는 대신
목판을 목에 매고 대구역 앞으로 매일 나갔어요.
그러다 전봇대에 붙여진
남산여중고 야간 모집 공고를 봤대요.
그날 목판을 집에 두고
남산여중 교장실 문을 두드리며 엄청 떨었다고 합니다.
벌써 4월이었으니까요.
선생님은 “늦어도 상관없다, 오늘 저녁부터 다녀라”
이렇게 말씀해 주셨어요.
그날로 군용 담요를 사서 교복을 대충 만들어 입고,
엄마는 낮에는 담배팔이,
저녁에는 야간 중학교 학생,
야간 고등학교 학생으로
더 열심히, 열심히 돈도 벌고 학교도 잘 다녔다고 합니다.
엄마의 소녀 시절은
엄청 많이 달리기를 한 추억밖에 없었대요.
단속이 떴다 하면
무조건 달리고 달리고 또 달렸어요.
엄마 목판에
엄마 식구들의 목숨줄이 달려 있었으니까요.
엄마가 살아서 돌아오시면,
옆에 누워 손 꼭 잡고
13살 어린아이,
식구 먹여 살리려고 기운차게 일어났던 용감한 아이한테 말해줄래요.
“순원 씨, 너무 고생 많았어요.
앞으로도 제 엄마로 고생 많으실 거지만,
그래도 65세 짧은 생,
보람되게 사실 거예요.”
어린 양담배 팔이 소녀,
우리 엄마,
사랑하고 존경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