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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dshoes Dec 28. 2020

톤레삽 호수의 석양

캄보디아

(여행시기 :  2019.2)

T가 예전 출장길에 묵었던 리조트 호텔이 굉장히 싼 가격으로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우리는 씨엠립으로 날아갔다. T는 이미 앙코르와트를 가봤지만, 나를 위해 한 번 더 가기로 한 것이다. 앙코르와트의 사원들은 소문대로 입이 떡 벌어질 만큼 대단한 유적들이었지만, 그 넓은 유적지 어디에도 에어컨 있는 건물은 물론이고 그늘도 거의 없어서, 3일 동안의 방문이 끝나자 나처럼 더위를 잘 타지 않는 사람도 햇빛에 닿는 것이 힘들 정도로 지쳐버렸다.


다음날 우리는 씨엠립 시내를 구경하다가 톤레삽 호수로 가는 일일 투어가 있는 걸 보고 신청을 했다. 호수 안의 배에서 저녁을 먹으며 해지는 것을 보고 돌아오는 코스였기에 더위를 피하기에는 안성맞춤이다 싶었고, 이왕 캄보디아에 왔으니 앙코르와트 이외의 장소에도 가보고 싶었다. 사실은 이대로 프놈펜이건 어디건 더 가보고 싶었지만, 일 때문에 한국으로 돌아가야 해서 상상에 그칠 수밖에 없었다. (그라나 모든 것을 충족시키는 여행은 어차피 불가능하기에, 이 약간의 아쉬움은 다음 여행을 꿈꾸게 하는 동력이 된다)

투어 참가자들을 태우기 위해 봉고차가 다른 호텔들에 들를 때 생각보다 씨엠립 시내에 작고 예쁜 호텔이 많이 있다는 걸 알았다. 투어 참가자들은 8명 정도? 우리 말고는 모두 서양사람들이었다.



선착장에 바로 가는 줄 알았더니 중간에 이런 마을에 들린다. 영문은 잘 모르겠지만 얼떨결에 색다른 곳을 구경했다. 연잎이 가득 찬 연못이 있었고 알록달록한 꽃들이 피어 있었다. 설명이 별로 없는 게 이 투어의 묘한 점이었다. 호수에 도착하고 나서도 별 다른 안내가 없었고, 저녁을 먹으며 노을을 감상하는 것이 전부였다. 뭔가를 열심히 배우는 자세로 여행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게으른 나는 이 한가한 반나절 여행이 마음에 들었다. 주변의 경치를 몸으로 느끼면서 그 분위기에 잠기는 여행이 나는 항상 가장 즐거웠다. 공부가 하고 싶다면 나중에 여행을 추억하는 시간에 하면 되니까.



작은 선착장에서 봉고차를 내려 통통배로 갈아탔다. 강을 따라가다 보니 어느새 톤레삽 호수가 시작되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큰 호수였다. 이미 해가 지고 있어서, 일렁이는 물결이 다양한 색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나중에 찾아보니 톤레삽 호수는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큰 호수라고 한다.


통통배는 지는 해를 한쪽에 끼고 호수를 경쾌하게 가로질러간다. 호수에는 수상마을들이 있었다. 현지 사람들을 사진에 담는 건 항상 조심스럽지만, 수상마을 사람들의 이색적인 모습은 뭔가 저절로 카메라 셔터를 누르게 만들었다. 호수의 물은 결코 깨끗하지 않았는데, 어린아이들이 물속에 풍덩 뛰어들더라. 생선을 잡는 것일까. 작은 팔로 배의 키를 잡는 아이들도 있었다. 고생스러워 보이기도 했고 어떻게 보면 즐거워 보이기도 했지만, 현지인들의 삶을 여행자가 이렇다 저렇다 판단하지 않는 게 좋으리라.



이윽고 통통배는 목적지인 큰 배에 도착했다. 모두 큰 배에 옮겨 탄다. 뷔페식으로 저녁이 차려져 있었다. 크게 맛있지는 않았지만, 지는 해를 보며 팥죽색으로 물든 호수를 바라보며 앉아 있는 것만으로 충분히 좋았다. 습기를 머금었지만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멀리 점점이 떠 있는 배들과 수상마을의 지붕들 때문인지, 커다란 호수는 광막한 자연의 느낌이 아니라 인간적인 풍경으로 다가왔다. 실제로 이곳은 캄보디아 사람들이 섭취하는 단백질의 60퍼센트를 공급한다고 한다.



돌아오는 길도 인상적이었는데, 밀항이라도 하는 것처럼 통통배가 모든 불을 끄고 캄캄한 어둠 속을 스르르 미끄러져갔기 때문이다. 이러다가 반대편 배와 부딪히는 것 아닐까 싶은 순간에 희한하게 잠시 불빛을 밝힌다. 마치 언제 배가 나타나는지 미리 알고 있는 것처럼 절묘한 타이밍이었다. 갈 때는 없었던 동네 사람들(?)이 몇 명 앞갑판에 더 타고 가는 것도 재미있었다. 낮과는 달리 인적이 없는 선착장에 내려 다시 봉고차를 타고 호텔로 돌아왔다. 반나절 인연이었지만 다들 친근하게 인사를 나누며 헤어졌다.





언젠가 인도차이나 반도 전체를 장기 여행하는 것이 나의 로망 중 하나이다. 육로로 국경을 넘으며 서로 다른 장소들의 느낌을 조금씩 체험하는 것. 항상 직장생활을 했고 늘 일이 있었기 때문에 단기 여행밖에 가능하지 않았지만, 올해 1년의 휴식시간을 얻었다. 동남아시아는 아니지만 유라시아 대륙을 그런 식으로 한 달 반 동안 여행하려던 올해의 계획은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무산되었다. 그러나 여행의 중단은 여행의 끝이 아니기에, 좌절하지는 않는다. 구글 지도에서 가고싶은 곳의 이름들을 검색해보며 이 겨울을 보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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