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질이에요”라는 한마디가 마음에 남지 않았던 이유

“원래 그런 몸이야.” 그렇게 말하면, 더 깊이 들여다보지 않아도 되니까

“그건 체질이에요.”

그 말은 부드러웠다. 위로처럼 들리기도 했다.
누군가의 잘못도 아니고, 특별히 이상한 것도 아니라는 뜻이니까.


한의학과 중의학에서는 사람을 여러 체질로 나눈다.
열이 많은 사람, 냉한 사람, 기가 허한 사람, 습이 많은 사람.
같은 음식을 먹어도 누구는 소화가 잘 되고, 누구는 더부룩해진다.
누구는 고기를 먹어야 기운이 나고, 누구는 채식을 해야 편안해진다.

나는 그 말이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일정 부분 맞다고 느꼈다.

그래서 더 깊이 파고들었다.

체질 관련 책을 사서 읽었다.
사상체질, 팔체질, 중의학의 음양오행 이론까지.
우리 가족의 성향을 하나씩 대입해 보았다.
남편은 열이 많은 체질인가.
아이들은 비위가 약한 체질인가.
나는 습이 많은 사람인가.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설명은 그럴듯했다.
어느 문장에서는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래, 맞아. 이래서 이런 증상이 생겼구나.”

하지만 이상하게도,
마음 한쪽이 자꾸 비어 있었다.

체질은 설명이 되는데,
생활은 설명되지 않았다.

우리는 단순히 열이 많아서 건선이 생긴 걸까.
아이들이 냉한 체질이라서 아토피가 돌았던 걸까.

그렇다면 왜 어떤 시기에는 심해지고, 어떤 시기에는 잠잠해졌을까.

체질 이론은 방향을 제시했지만,
우리 가족의 하루를 바꾸기에는 너무 추상적이었다.

‘이 체질은 밀가루를 피하라.’
‘이 체질은 육류를 줄여라.’
‘이 체질은 따뜻한 성질의 음식을 먹어라.’

그 문장들은 맞는 말처럼 보였지만,
나는 자꾸만 다른 질문을 하게 되었다.


우리는 정말 체질 때문일까.
아니면 반복된 생활 때문일까.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고,
스트레스를 풀겠다며 밤마다 단 음식을 먹고,
움직이지 않고, 햇볕을 충분히 쬐지 않고,
배부른데도 습관처럼 무언가를 더 집어 넣는 삶.


체질이라는 말은
어쩌면 나를 조금 안심시키는 단어였는지도 모른다.
“원래 그런 몸이야.”
그렇게 말하면, 더 깊이 들여다보지 않아도 되니까.

하지만 나는 멈출 수 없었다.


간호사로 일하던 시절,
병원에는 늘 ‘원래 그런 체질’의 환자들이 가득했다.
고혈압 체질, 당뇨 체질, 암 가족력.
그 말은 설명이 되었지만,
결국 약은 늘어났고 질환은 반복되었다.


나는 우리 가족의 미래가
그 반복 위에 서 있는 그림으로 남지 않기를 바랐다.

체질을 이해하는 건 필요했다.
하지만 체질에 머무는 건 싫었다.

우리는 체질을 타고났을지 모르지만,
생활은 선택할 수 있지 않은가.


그때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내가 불편했던 이유는
체질이라는 말이 틀려서가 아니라,
그 말이 너무 빨리 이야기를 끝내버렸기 때문이라는 것을.

나는 이야기를 끝내고 싶지 않았다.


우리 가족의 몸은
아직 말하고 있었고,
나는 그 말을 끝까지 듣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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