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이러지 않습니다만...
그날도 아무 일 없었다.
아이들은 잠들어 있었고,
남편은 거실에서 TV를 보고 있었고,
나는 그 옆에서 드라마를 이어 보고 있었다.
“한 편만 더.”
그 말은 늘 거짓말이 되었다.
시계를 보니 새벽 1시가 넘었다.
내일도 평일인데, 또 이렇게 늦었다.
리모컨을 내려놓고 일어나려는데
남편이 휴지를 찾았다.
“또 코피네.”
대수롭지 않은 말투였다.
원래 잘 나는 체질이니까.
어릴 때부터 그랬다고 했으니까.
화장실에서 코를 막고 있는 그의 뒷모습을 보는데,
이상하게 그 장면이 낯설게 느껴졌다.
체질이라고 넘겨왔던 그 일이
왜 하필 늘 늦은 밤에 반복되는 걸까.
우리는 그날도 야식을 먹었다.
특별한 메뉴는 아니었지만
배가 고프지 않았는데도 무언가를 입에 넣었다.
달고 짠 것들.
일과 육아에서 힘들었던 하루를 보상받는 느낌으로.
아이들은 이미 자고 있었지만
저녁은 늘 늦었고,
잠드는 시간도 일정하지 않았다.
주말이면 더 흐트러졌다.
그날 밤,
나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몸을 쉬게 할 시간을
한 번도 제대로 준 적이 있었나.
남편의 코피는 체질일 수 있다.
하지만 밤 1시의 코피는
정말 체질일까.
몸이 쉬어야 할 시간에
우리는 빛을 보고, 자극을 보고,
웃고, 먹고, 각성하고 있었다.
피부에 아무 증상이 없어도
겉으로 멀쩡해 보여도
몸 안에서는 무엇이 반복되고 있었을까.
나는 거실 불을 끄고 창밖을 잠시 봤다.
이 시간에 깨어 있는 집이 몇이나 될까.
이상하게도 그날은
질환이라는 단어보다
‘리듬’이라는 단어가 먼저 떠올랐다.
우리 집은 리듬이 없었다.
아침은 급했고,
저녁은 늦었고,
밤은 길었다.
아무도 심하게 아프지는 않았는데
어딘가 건강하지 않은 느낌.
그날 처음으로
나는 병이 아니라
우리 집의 하루를 떠올렸다.
어쩌면 병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는 게 아니라,
이렇게 조용히 리듬이 무너진 자리 위에
천천히 올라오는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드라마를 끊지 못했지만,
너무 늦은건 아닌지 시계를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게
나에게는 작은 균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