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 위 조명에 비친 빨간빛
"다음 선생님은 유치원 창의력 특강수업을 맡게 되실 OOO선생님입니다."
드디어 내 차례이다. 원장님의 소개를 받았다. 옷매무새를 다듬고 중앙으로 걸어갔다. 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나에게 집중되고 있었다. '난 183cm에 외모도 그래 이 정도면 중간은 할 수 있잖아. 이제 실력도 제법 늘었잖아. 준비도 많이 했잖아. 그래! 가보자!' 정신을 가다듬고 자기 최면을 걸며 무대에 섰다.
"안녕하세요. OO유치원 창의력 특강수업을 이끌어갈 OO교육 OOO이라고 합니다."
가벼운 인사를 하며 청중을 살펴보았다. 행사의 끝부분이라 그런지 지쳐있는 모습들이 역력했고 빨리 끝나길 바라는 듯한 분위기가 흐르고 있었다. '이 청중들을 사로잡아야 한다. 그래 킬링파트를 앞에 두길 잘했다. 무대연출의 킬링파트를 부르기에 안성맞춤이다. 심혈을 기울여 연습했다. 지쳐서 집중력이 저하된 어머님들마저 솔깃할 킬링파트다. 그래! 가보자!'
"빠바바밤 빠바밤 빠바 빠빠빠빠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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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짧은 노래를 느닷없이 했다. 노래를 잘 끝냈다. 끝났는데 순간 장내에 또 다른 노래가 음소거를 뚫고 메아리치는 듯했다. 즐겁게 춤을 추다가 그대로 멈춰라~♬ 지국에서 선생님들 앞에서 시연 발표를 하고 조언을 받을 때는 반응이 나쁘지 않았었는데 실전은 달랐다. 젠장. 집중은 받았지만 이건 내가 그리던 그림이 아니다. 청중들의 반응과 함께 내 본성도 반응했다. 젠장. 얼굴은 빨개졌고 중력은 내 고개를 잡아끌었다. 숨고 싶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날 숨기려 하면 할수록 부자연스러움이라는 근거의 그림자는 무대 위 조명에 더욱더 짙게 드러난다. 숨고 싶고 회피하고 싶을 때일수록 고개를 추켜올려야 한다고 지냈던 때다. 젠장할. 예정된 수순대로 흘러간다. 다 나를 보고 있다. 새빨간 얼굴빛과 부끄러워하는 표정에 고개를 추켜올리는 모습이 전혀 다른 의미의 킬링파트가 되어버렸던 것인가. 어머님들은 안쓰러운 마음으로 봤을 수도 있다. 뭐야! 실력이 너무 없는 거 아냐 하면서 봤을 수도 있다. 아니면 혹시 오호! 그래 아이들 옆엔 저렇게 순수(?)한 사람도 괜찮지 라면서 봤을 수도 있다. 아니면 별 관심 없을 수도 있다. 난 그들의 생각을 알 수가 없다. 다만 어떤 이유에서였는지 집중받게 되었다. 매끄럽게 진행된 건 아니었지만 발표내용을 이어가 마무리하고 내려오니 동료가 기다리고 있었다. 부족했던 자신에 대해 반성하는 나. 더 당당하고 자신감 없던 나. 더 준비하지 못했고 더 유동적이지 못했던 나와 만나 축 쳐지는 기분을 맞이해야 했다. 이런 나를 만나지 않으려면 일단 노래를 건너뛰기했으면 됐지만 발상을 살짝 전환하면 그건 건너뛰지 않은 덕분에 이런 나를 만날 수 있었다는 말이기도 하다. 발표 끝무리 순서기도 했고 전시했던 교구를 정리하고 가야 했기에 행사가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 설명회는 끝났고 쳐지는 기분을 달래며 교구를 정리하고 있는데 기분이 좋아지는 경험은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다가왔다.
귀퉁이에 비친 조명의 밝기
어머님들 몇 분이 다가왔다. 미리 나눠드린 안내문을 들고 다가와 이런저런 질문들을 하였다. 홈방문 1:1 수업에 대한 문의였다. 발표 때 무대중앙은 원장님 이하 다른 선생님들도 섰던 공동무대였다면 지금 이 자리-한쪽 귀퉁이-가 이 날 내가 단독으로 섰던 무대였다. 나만의 진행을 시작했고 그 자리에서 홈방문 상담일정을 잡았다. 훗날 그중 5세 여자아이와 1:1 수업을 오래 하게 되었다. 유치원 단체 속에서 만나고 홈에서 개인적으로 만나면서 아이에 대하여 더 알게 되었고 더 많은 부분을 어머니와 상담할 수 있게 되었다. 홈방문 수업 첫 시간 때 인형극을 하며 함께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즐거웠던 기억이 난다. 때론 내가 어디에 있는지가 아니라 서있는 곳이 어디든 무대의 주인공일 수 있다. 귀퉁이에 비친 조명이 더 밝을 때가 있다.
귀퉁이 조명을 밝혀 빨간빛을 비춘다
맥가이버 칼: 만능 칼로 불리며 여러 기능을 할 수 있다.이 칼 써보셨어요?
빠바바밤 빠바밤 빠바 빠빠빠빠빠~♬
오늘 이 노래를 다시 부른다. 글에 음을 표현하지 못하는 게 아쉽다. 1980년대 방영된 미국드라마 맥가이버라고 있었다. 맨손의 마법사라는 별칭을 갖고 있는 이 인물은 그 어떤 위기 상황에서도 닥친 문제를 해결해 낸다. 얼마나 재미있게 봤던지 아직도 인트로 음악을 흥얼거릴 수 있다. 생각지도 못한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해 가는 이야기가 흥미진진했다. 그 해 유치원 학기 초 교육설명회 발표 원고의 소재였던 맥가이버였다.
우리 가슴속에도 만능 맥가이버 칼이 있지 않을까. 남들보다 조금은 무딜 수도 있고 기능이 조금은 적을 수도 있지만 자신의 칼에 숨겨진 기능은 그 누구도 못 갖는다. 그건 자신의 경험이다. 그 경험들을 값지게 여기고 숨겨진 기능을 잘 찾아 활용하며 미래를 재단하면 나름 자신만의 제법 근사한 레드카펫을 깔 수 있을지도 모른다. 보잘것없어 보이는 경험이라도 그 귀퉁이를 밝힌 조명이 레드카펫에 빨간빛을 비출지도 모른다.
조립
똑똑똑 두드렸던 아이들의 창문을 창의의 문이라 부른다.
그 너머에서 가장 많이 함께한 활동은 조립이었다.
찰칵! 짝짝!
수많은 블록들을 연결하여 만들 수 있는 모양이 몇 개일까
여러 가지 방법으로 연결해 보며 생각을 조립해 나간다
이런 상황에서 이렇게 하면 안 되는 방법 하나 알고
또 다른 방법으로 시도하니 안 되는 방법 두울 알고
그렇게 안 되는 방법들을 알아가며 조립을 완성한다
세상 소중한 너의 생각 담으려 찰칵! 잘했다고 짝짝!
요철(凹凸)
움푹 파이고 툭 튀어나온 한자 자체가 레고블록모양 같다.
흔히 이 요철을 인생의 굴곡진 길에 비유하기도 한다.
낭떠러지 같고 높은 산 같은 순간 가고 오고
걸어가다가 발이 빠지고 돌부리에 넘어지고
걸어오다가 맘이 파이고 상처들이 솟구친다
조금만 더 평탄한 길
걸을 수는 없었을까
메우고 깎아내고 싶던 그 길
나 다시 갈 수 없네
지나간 과거는 돌이킬 수 없지만
관점과 발상은 돌이킬 수 있으니
요철 같은 과거 집어 남은 인생 조립하자
요철 같아 잘도 맞아 무대 연결 단단하다
무대 위를 가고 오며 킬링 파트 노래하자
빠바바밤 빠바밤 빠바 빠빠빠빠빠~♬
3초의 여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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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기회?
모르는데 어떻게 알았을 때처럼 할 수 있겠어. 누구나 실수는 할 수밖에 없어. 많이 아는 사람도 실수해. 미래는 누구도 100% 알기 어려워. 실수 자체는 괜찮아. 중요한 건 이번 실수로 안 되는 방법 하나를 알면 돼. 그래서 실수를 했다는 건 안 되는 방법을 알게 되는 좋은 기회야. 그 좋은 기회를 네가 만든 거고 지금 이 순간 네가 꽉 잡으면 돼. 괜찮아. 울지 마.
거울을 바라보며 실수를 기회로 생각할 3초의 여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