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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별난 Oct 24. 2024

20화 짠

술잔도 부딪혀야 소리가 난다


원강이는 종신이의 눈치가 보여서 안 나오는 건지, 내게 기분이 나쁜 건지 따라 나오지 않았다. 나는 당구장 앞의 삼겹살집에서 호식이와 그간의 이야기를 나누며 술자리를 가졌다.


“형, 너무 예민한 것 같은데 무슨 일 있어요? 당구장에서 처음 봤을 때부터 안색이 안 좋아 보였거든."


“그래? 오늘 일이 좀 바빠서 그런가. 별일 없어. 만나니 좋다.”


한 잔 하자! 


“그동안 뭐 했어?”


“누나가 가게를 확장해서 거의 거기서 살았어요. 이제 가게도 자리 잡혀서 숨 돌릴 틈 생기네요. 형, 기분 전환할 겸 언제 시간 되면 카지노 바람 쐬러 다녀올래요?”


“됐어.”


“진짜 아무 일 없는 거죠?”


“그럼. 그런데 카지노는 왜?”


“카지노 쪽박걸이라고 들어봤어요? 예전에 갔다가 우연히 데려온 여자가 일을 기막히게 잘하더라고. 지금 누나 가게 에이스잖아. 그전부터도 답답할 때 가끔 바람 쐬러 다녔는데, 그때부터 이제 정기적으로 일처럼 다니잖아. 누나가 기름값도 넉넉히 챙겨주잖아. 하하하. 게임도 소소하게 즐기고, 바람도 쐬고, 느낌 있는 여자 있으면 스카우트해 오는 거지. 내가 사람 보는 촉이 좀 남다르잖아. 하하하. 그런데 계속 허탕 치니까 누나는 그 기름값마저도 덜 주더라. 하하하”


건배!


“문신 실력은 많이 늘었고?”


“하하하. 보여줄게요. (저장한 사진들을 보여주며) 많이 늘었지?”


“와우. 너 이런 재주가 있었어? 대단한데.”


“지금은 업소 여성들이 나한테 문신하러 많이 와요. 그때 형네 집에서 잔 날 기억하죠? 쳇바퀴 도는 내 삶이 지긋지긋해서, 아무거나 해보자 하고 고른 게 문신이었거든. 연습 삼아 취미로 하면서 무료로 해줬는데, 이제 소문났는지 돈 받는데도 찾아오더라고. 초창기 때 누나가 반강제로 받게 한 애들은 내 연습 도화지였지. 하하하. 그 애들한테 미안해서 무료로 덮어씌워 주고 있는데, 마음에 들어 하더라고. 누나는 내 수입에 자기 지분이 있다고, 이제 그걸 또 나한테 자릿세를 받네. 하하. 기분이다. 형은 공짜로 해줄게. 하하.”


짠!


“(미소를 지으며) 고마워. 고기 다 탄다. 어서 먹어.”


호식이가 이렇게 많이 말하고 많이 웃는 걸 처음 봤다. 나는 이 모습이 부러웠다.


(술잔을 부딪히며) 짠! 짠! 짠! 


“형, 2차는 내가 쏠게. 누나 가게로 가자. 누나한테는 아까 전화해 놨어. 내가 제일 좋아하는 형이랑 간다고. 결혼식 때 불렀던 노래 제대로 불러줄게. 그때 하도 긴장해서 실수 많이 했잖아. 그런 분위기에서 불러봤어야 지. 그래서 내가 미안했거든. 다음은 축가가 있겠습니다. 제목은 [김동규의 10월의 어느 멋짓 날에]입니다. 아아. ♬가끔 두려워져 지난밤 꿈처럼 사라질까 기도해♬ 아, 술 먹었더니 또 안 되네. 하하하."


어렴풋이 그 멋진 날이 이 밤하늘에 그려지는 듯했다. 


"형! 도중이 형! 뭔 일인지는 모르지만 힘내! 내 인생 살 맛나게 해 준 사람이 재미없어 보이면 안 되지. 그러면 내가 속상하지. 어깨 좀 당당히 펴고! 인생 뭐 있냐!”


호식이는 술자리 내내 일부러 말을 많이 하고 많이 웃으며 내게 힘을 주려 했었다. 그의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따뜻함과 진심이 가슴에 저며왔다. 그 밤은 그렇게 깊어가고 있었다. 


"호식아, 오늘 네가 형을 몇 번 짠하게 하는지 모르겠다. 고맙다."


'술이 취하니 세상이 비틀거리고 뱅뱅 도는데, 머릿속의 물음들은 조금도 비틀거리지 않는다. 생각 그만하자. 생각만으로 그 무엇도 바뀌지 않는다. 술 잔도 부딪혀야 소리가 나. 부딪히지 않으면 그 무엇도 바뀌지 않아. 그래 직접 물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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