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가는 길에 초록한 봄빛이 비치길...
"그런데 넌 이름이 뭐야?"
(빨간 나뭇잎과 노란 나뭇잎에 달린 나무젓가락을 흔들며)
"내 이름은 엽록소라고 해. 다음에 또 봐."
(초록 나뭇잎을 흔들다가 퇴장시키며)
빨강이, 노랑이, 초록이라고 이름 붙인 나뭇잎에 나무젓가락을 붙여서 인형극을 하고 있었다.
"아, 가버렸네. 노랑아 너 초록이 이름 기억해?"
"아, 인사도 제대로 못했는데. 아니, 기억이 안 나. 우리 똑똑한 친구들에게 물어보자."
(빨강이와 노랑이가 떠난 초록이를 아쉬워하면서, 서로 대화를 하다가 아이들을 바라보며)
"얘들아, 얘들아, 혹시 초록이가 자기 이름 뭐라고 말했는지 들었어?"
이 녀석들 초집중 상태이다. 이런 아이들을 보고 있자니 너무 귀엽고 사랑스럽다. 아쉽지만 이 행복한 시간을 가질 틈이 없다. 그러면 너도 나도 '저요! 저요!' 하며 소란스러워진다. 나는 재빨리 말을 이어갔다.
"우리 친구들~ 초록이가 자기 이름 말하는 거 들었어요? 엽... 록... 뭐라고 했던 거 같기도 했는데..."
난 아이들에게 내 목소리를 내며 능청맞게 물어보았다.
"선생님! 저 알아요. 엽록소요!"
생각보다 많은 아이들이 '저요! 저요!' 라며 자신의 존재를 세상에 알린다. 지금 이 순간이야말로 모두가 이 땅 위에 서있는 기분을 느끼는 시간이다.
"그럼 우리 빨강이와 노랑이가 들을 수 있도록 초록이 이름인 엽! 록! 소! 를 크게 말해줄까?(빨강이, 노랑이를 바라보며) 빨강아, 노랑아, 우리 친구들이 초록이 이름을 알고 있어. 하나, 둘, 셋 하면 친구들이 말해줄 거야. 그 이름은 뭐냐면.. 하나! 둘! 셋!"
"엽! 록! 소!"
"오늘 다들 너무 잘했고, 오랜만에 만나서 너무 반가웠어. 앞으로 초록이처럼 힘내는 하루 보내기. 자~인사하고 마치도록 할게요."
"준비됐나요?~♬"
"네, 네, 선생님. 준비됐어요~♬"
오랜만에 인형극을 하며 원맨쇼를 신나게 했다. 담당 선생님이 아프셔서 내가 5세 반 수업을 대신하기 위해 어린이집에 출강 왔다. 오랜만에 아이들과 보낸 40분은 예나 지금이나 세상에서 제일 빨리 가는 시간이었다.
"지국장님, 커피 한 잔 하고 가요."
"네, 원장님."
수업이 끝나고 원장님이 커피를 한 잔 대접해 주셨다. 지난 8년 동안 부족한 나를 한결같이 바라봐주신 분이었다.
"원장님, 저 신입 때 수업 진짜 엉망이었는데 그걸 보시면서도 어떻게 계속 맡기셨어요?"
"그때 진짜 어설프긴 했지. 그런데 도중 국장님은 늘겠더라고. 특히, 자칫 신경 덜 쓸 수도 있는 아이 한 명도 놓치지 않으려던 모습, 그 초보가 진땀 빼면서 진심을 다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어. 그때 생각했어. '이 남자선생님이 품은 수업에 대한 열정과 아이들에 대한 진심의 씨앗은 언젠가 꽃으로 피겠네.'라고. 그런 모습 잃지 않으면, 언제 피는지는 시간문제인 거지. 한 달이냐, 수년이냐, 그 문제일 뿐이지. 그리고 그런 국장님한테 배워서 그런가? 이번 선생님도 새 학기 시작과 함께 산수유꽃처럼 필 게 보여. 1년 동안 지켜봤는데 참 열심히 하네."
"아이고, 너무 과찬이세요. 감사합니다."
아이들에게 엽록소를 수업하며 희망을 주고 행복을 받았다. 원장님께도 너무 감사한 이야기를 들었다. '내가 뭐라고?' 수업 내내 아이들은 내 손 끝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그 눈빛들은 일제히 나를 환하게 비춰주었다.
또다시 산수유 열매가 땅으로 떨어지고 있다. 이렇게 해마다 3월은 어김없이 찾아온다. 1년 후 봄은 다시금 올 것이다.
42화에 계속...
봄이 오고 있었는데...
이 초록한 땅 위에
서있던
많은 생명들의
가는 길에
이 초록한 땅 위에
서있는
이들의
가는 길 위에
초록한 봄의 빛이
비치길....
봄이 돌고 돌아오듯,
희망의 새싹이
새로이
돋아날 수 있기를…
봄의 빛이
초록하게
비추기를...
산불이 남긴
검은 재에
한 줄기 빛이 닿기를...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소설과 현실, 소설과 시, 과거와 현재
나와 세상은 모두 연결되어 있다.
분리된 듯 연결된 많은 것들 사이의
시공간을 넘나들며
만나는 수많은 나와 수많은 이들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