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석 게임 34_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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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송이가 점점 작아진다. 빨리 봄이 왔으면 좋겠다. 동산에 올라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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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이 화장실 열쇠를 찾다가 똥을 쌌다. 하하하. 지가 잘못하고 엄마에게 엄청 화를 냈다. 이제 화장실 문을 잠그지 않기로 했다. 형 덕분에 봄까지 안 기다려도 된다. 이제 더 이상 동산은 필요 없다. 결석할 새로운 방법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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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문을 나간다.
2. 화장실에 숨어있는다.
3. 옆집 식구들이 다 나갈 때까지 기다린다.
4. 옆집 부엌 뒷문의 작은 틈에 준비된 칼을 끼워 넣는다. 안쪽 걸쇠를 들어 올린다.
5. 부엌을 통해 옆집 안방에 들어가 숨어있는다.
6. 출근하는 엄마를 확인한다.
7. 옆집 안방 문을 열고 나온다.
8. 다시 대문 앞에 선다.
9. 기쁨을 만끽한다. 이제 집안에는 나 혼자다. 하하하.
1에서 9까지 따라가며 대문에서 대문까지 원을 그리며 한 바퀴 돌면 된다.
드디어 내일이다.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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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오늘 뭐 좋은 일 있냐? 기분 좋아 보인다."
"어.. 형, 아니야."
차마 고맙다는 얘기는 못했다. 이 모든 것이 형이 똥을 싸서, 화장실 문을 안 잠근 덕분이라는 걸. 훗.
● 첫 시도인데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두근대는 이 느낌이 너무 좋다.
결석 전날은 일기장을 펴고
침투작전 1부터 9까지 외우고 있었다.
몇 번의 눈이 더 내리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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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치고,
아이는 어른이 되었다.
그리고 어느 날부터
난 세상의 하루를 결석하면서
하루 종일 1에서 9까지만 셈하기 시작했다.
0을 철저히 버리면,
원처럼 돌고 도는
지긋지긋한 삶의 반복을 멈출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때를 회상할 때마다
손목시계를 바라보곤 한다.
그 시기에 구입해서
족쇄처럼 차고 다녔던 아날로그시계의 바늘이
그렇게 하루도 빠짐없이 나와 함께 돌고 있었다.
어느 순간 시곗바늘을 뽑아버려서
시간을 알 수 없는 채로 차고 다닌 지도 여러 해가 지났다.
이 시계를 보고 있으면
세상을 바라본 내 눈이 그려져 있어 나를 보게 된다.
네모난 시계줄은 계절이 돌고 돌듯
눈이 내리고, 그치고 있는 것 같다.
비록 지금 시곗바늘은 없지만,
시간의 소리는 여전히 나고 있다.
'째깍, 째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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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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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째깍, 째깍'
이 소리가 달팽이관을 타고 돌면
의식은 또 원, 점에 도착한다.
난 이곳을 내려다본다.
누군가 다가온다. 그리고 빠르게 돌리기 시작한다.
'세우라고! 그만하라고!'
안에 타고 있는 남자가 있다.
아무리 크게 외쳐도
그 소리는 빠져나가지 못하고 안에서 맴돌 뿐이다.
더 이상 무언가라도 붙잡고 있을 힘이 빠지는 순간
고개를 들며 감고 있던 눈을 뜨는데
시점이 변해 나 역시 그가 보는 것을 보게 된다.
시간이 잠시 정지된 듯한 찰나
밖에 서있는 누군가와 눈이 마주친다.
그때 알았다.
잘못된 행동으로 세상을 빠르게 돌리고,
회피와 도망을 꼭 움켜잡으며,
하루를 돌린 것도,
하루에 타고 있던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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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나였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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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순간
하늘에서 눈이 내리기 시작하는데,
난 그대로 쓰러져 눈을 감는다.
그날이 내가 눈을 감고
나와 마주한 나의 첫눈이었다.
그날을 생각하며 눈 사람 하나를 그려본다.
그렇게 버리면서까지 벗어나려던
원의 반복을 두 개 이어 본다.